2021.2.27.사순 제1주간 토요일                                                          신명26,16-19 마태5,43-48

 

 

 

평생과제, 예수님의 소원

-하느님을 닮아 성인聖人이 되는 것-

 

 

 

우리 믿는 이들의 평생과제이자 예수님의 소원은 하느님을 닮아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바로 이의 유일무일한 영원한 롤모델이 예수님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하느님과 일치의 삶을 사셨던 오직 한 분이신 예수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의 소원이자 평생과제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를 위한 가르침이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이어지는 산상설교의 가르침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느님을 닮아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소상히 가르쳐 주십니다. 이의 결정적 롤모델이 예수님이십니다. 깨달음처럼 와닿은 이런저런 예화들을 나눕니다.

 

1.“예수 평전;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예수님의 삶”

어제 선물 받은 김근수 신학자의 책이름입니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예수님의 삶’이란 말마디는 역설적으로 ‘신적인, 너무도 신적인 예수님의 삶’으로 바꿔도 될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을수록 참 사람이 된다는 것이며 이의 결정적 모범이 예수님입니다.

 

2.“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共進化,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EARTH+대표 이병한)

새벽 인터넷 글에서 소개된 참 대단한 욕심을 지닌 어느 학자의 고백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해 하느님을 닮고 싶다는 원대한 꿈에 대한 고백처럼 들립니다.

 

3.어제 주고 받은 아름다운 메시지도 소개합니다.

“예수님 발치에 엎디어 기도하다가 바위가 되어버린 사람같아 볼 때 마다 감동이네요!”

사실 은연중 제 소망을 대변하는 수도원 십자로 중앙에 위치한 예수님 발치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의 바위입니다. 이에 대한 화답 메시지가 참 아름답고 고무적이었습니다.

 

“저는 기도하다가 바위가 된 사진을 볼 때면 우리 신부님이 연상됩니다. 어린 아이의 참 순수와 고운 사랑이 넘치시는 신부님, 맛과 향의 발효인생을 사시기에 꽃에 벌이 날아들 듯 저희들은 신부님의 향기에 젖어서, 취해서 사는 복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샘솟는 청정욕淸淨慾을 느낍니다. 마침 아주 예전 써놓았던 망부석이라 짧은 시가 생각납니다.

 

“왜 떠올랐는지 모른다

망부석望夫石!

평생 임 그리워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오늘 따라 마음 저리게 와닿은 망부석”-1997.4

 

참으로 하느님을,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거룩함holiness이자 온전함wholeness이요 영어 발음도 같습니다. 바로 아버지를 닮은 ‘완전함perfection’은 그대로 ‘거룩함holiness’과 ‘온전함wholeness’과 하나로 통함을 봅니다. 지난 밤 정월 보름달처럼 원숙, 원만한 둥근 모습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닮을수록 둥근 마음, 둥근 삶이 됨을 깨닫습니다. 가을철 둥글게 익은 원숙圓熟한 열매들이, 둥근 해, 둥근 달이 이를 상징적으로 가리킵니다. 참으로 이렇게 너그럽고 지혜로운 노년의 둥근 인생이라면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울런지요!

 

기도와 사랑은 함께 갑니다. 기도는 테크닉의 기교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기도할수록 사랑하게 되고 사랑할수록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로 말하면 예수님을 능가할 자 없습니다. 늘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되어 사셨던 기도의 사람, 예수님이셨습니다. 가끔 피정신자들에게 드리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나중에 남는 얼굴은 둘 중 하나입니다. 기도한 사람인가 기도하지 않은 사람인가 둘 중 하나입니다. 바꿔 말해 ‘나중에 남는 얼굴은 사랑한 얼굴인가 사랑하지 않은 얼굴인가 둘중 하나입니다’라 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예수님 앞에 갔을 때 심판 잣대는 예수님 얼굴을 얼마나 닮았는가일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예수님을, 이웃을, 자연만물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예수님을, 하느님을 닮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 말씀 배치도 참 절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제1독서 신명기의 주인공 모세는 누구보다 하느님을 닮았고, 복음의 주인공 예수님 역시 그대로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이자 사람이라 우리는 고백합니다. 모세가 강조하는 바 ‘오늘’입니다. 주님은 오늘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명심하여 실천해야 할 평생과제를 부여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원수를 좋아하라 하지 않습니다. 원수와 사랑의 친교를 나누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현실적입니다. 그냥 사랑하고 기도하라 합니다. 서로 주고 받는, 계산적인 사랑이 아니라 밑빠진 독에 물붓듯하는 일방적 무사無私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누구에게나 똑같은 공평무사한 존중과 배려, 연민의 사랑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자랑스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진면목이요 이런 모습을 그대로 닮은 예수님이자 교회의 무수한 성인성녀들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사랑하는 것이 ‘서로 사는win-win 길’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면,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면 악순환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먼저 내가 다치고 상합니다. 참으로 원수를 사랑할 때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보존되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우리의 존엄한 품위요, 악마의 유혹인 보복의 안순환에 빠지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악인은, 박해자는 하느님께서 나를 시험하여 단련시키고자 보낸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체 이들에게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며 단 사랑으로 인격적 응답을 하는 것이요, 때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사랑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끼리끼리 사랑은 누구나 합니다. 참으로 이와 반대로 일방적 아가페 사랑이 참 고귀한 사랑입니다. 또 유념할 사실이 있습니다. 내 눈에 원수요, 박해자들이지 하느님 눈에는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원수와 박해자라 해도 그만의 피치 못할 불가항력의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탓도 아닌 이런 저런 유전적 요인에 환경 요인으로 인한, 죄나 악, 병으로 인한 상처의 아픔이 원인이 되어, 즉 사랑의 결핍으로 원수가, 박해자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원인이 있기 마련이며 알고 보면 용서하지 못할, 이해하지 못할 원수는, 박해자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의 해결解決이 아니라 해소解消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천부인권의 사람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사람이란 자체로 사랑받을 권리가, 사랑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결론은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습니다. 만병통치약이 사랑이요, 만병의 근원이 사랑 결핍입니다. 주님께서 부여해주신 평생과제를 하루하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날로 사랑의 사람, 완전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시편119,1-2). 아멘.

 

 

 

 

 

 

  • ?
    고안젤로 2021.02.27 12:32
    "사랑하는 주님, 저희가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열매에 맛을 드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저희에게 주시는
    한없는 사랑을 저희가 잘쓰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사순시기가
    되게 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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