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인내와 겸손이 답이다-2023.7.17.연중 제15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7,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3.7.17.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탈출1,8-14.22 마태10,34-11,1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인내와 겸손이 답이다-

 

 

“항상 그 자리에 계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부님의 지혜가 담긴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새벽에 일어나 읽어보는 지난 밤에 받은 카톡메시지입니다. 90년대초 30대 초반의 나이였던 자매인데 30년이 지난 지금은 60대 초반에 접어든, 수도원과 오랫동안 계속 관계를 맺어온 분입니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힘차게 온힘을 다해 불렀던 잠자리에 들기전 끝기도 ‘찬미가 둘째 연’과 ‘시메온의 노래 후렴’ 그리고 ‘본기도’ ‘강복’ 내용이 새삼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잠을 자도 주님과 함께

 꿈에도 당신만을 뵙게 하소서

 언제나 한결같이 당신 영광을

 새는날 밝아올제 찬미하리다.”

 

이래서 하루중 가장 기다려지는 행복한 시간은 온전히 주님과 함께 하는 잠들기 전과 잠깬후의 시간입니다. 이어지는 시메온의 노래 후렴과 강복, 본기도도 좋습니다.

 

“낮동안 우리를 활기있게 하신 주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니, 자는 동안도 자켜주시어 편히 쉬게 하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이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주여, 오늘 우리가 주님의 부활신비를 경축하였사오니, 겸손되이 비는 우리 목소리를 들으시어, 거칠 것 없는 당신의 평화속에 쉬게 하시고, 내일도 당신께 찬미드릴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잠깨게 하소서.”

 

알렐루야 찬미로 시작하여 아멘 감사로 끝나는 하루입니다. 문득 생각나는 23년전 5월 요셉상 배경의 흐드러지게 폈던 연산홍꽃 장면을 보며 써놨던 시가 생각납니다.

 

-말없이

고요해도

가슴은

타오르는 불이다

 

요셉상 옆

붉게 타오르는

연산홍!-2000.5.10.

 

주님을 닮아 경거망동, 부화뇌동,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결같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정주의 내적 삶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강론 제목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인내와 겸손이 답이다-”로 정했습니다. 어제 새벽 산책중 무수히 피어나는 무궁화꽃에 감동하여 저절로 흘러나온 제 고백같은 시입니다. “무궁화꽃나무의 고백”이라 했지만 실은 제 소망이 담긴 고백입니다.

 

-일년내내 아니 평생을

날마다 위로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며

사랑을 배웠습니다.

날마다 아래로 땅 어머니를 바라보며

흙의 겸손을 배웠습니다.

 

“사랑합니다!”

때되어 하늘 사랑 고백하며 환하게 

송이송이

무수히 환대의 사랑으로 피어나는

무궁화꽃들

깊고 깊은 하늘 사랑 찬미의 고백은 끝이없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을 사랑의 찬미,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삶입니다. 이런 마음을 바탕으로 오늘 말씀을 묵상하니 그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제1독서의 변화가 가벼운 충격입니다. 창세기의 별같이 찬란히 빛나던 성조들의 이야기는 요셉으로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출애굽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의 시련과 고난을 보여줍니다. 

 

아, 이게 인생입니다. 늘 순탄대로의 인생이 아니라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삶의 리듬처럼 반복되면서 전개되는 파란만장한 세상의 삶입니다. 다시 이런 시련과 고난이 시작되는데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가 물을 수 있습니다. 아,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의 수난은 계속됩니다. 하느님만큼 걱정많고 고생많은 분도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마음에 정통했던 하느님께 위로와 힘이 됐던 분들이 바로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면 묵묵히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과 함께 끝까지 견녀내고 버텨낼 것입니다. 내적 평화와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미소를 머금고 말입니다. 고통과 시련중에도 기쁨과 평화, 찬미와 감사를 잃지 않았던 믿음의 성인들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순교적 삶에 항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배우는 평화, 사랑, 십자가, 환대입니다. 주님은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말씀하십니다. 충격적 표현에 놀라지 마십시오. 값싼 평화는 없습니다. 성 베네딕도는 “거짓평화를 주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앞에 드러나는 거짓이요, 빛앞에 드러나는 어둠이요, 정의앞에 드러나는 불의입니다. 주님은 참평화를 주러 오셨지 결코 거짓 평화, 값싼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면 이처럼 칼로 나누듯 선명한 분리로 분열이요 불화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참평화의 과정일뿐입니다. 이런 창조적 정화과정후의 평화가 값비싼 진짜 참평화입니다. 바로 저희 수도자들의 오랜 정주생활후의 베네딕도의 평화가 이런 평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힘차게 고백합니다.

 

다음은 사랑입니다. 사랑에도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워선 안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을 우리는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모두 사랑하되 주님께 대한 열렬하고 항구한 사랑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앞서의 무궁화꽃나무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이래야 모두에 대한 집착없는 초연한 무사한 사랑,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주는 사랑 깨끗한 사랑, 아가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십자가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결코 값싼 십자가가, 악세사리, 장식품 십자가가 아니라, 끝까지 죽기까지 온힘을 다해 지고 주님을 따라 가야할 내 십자가입니다. 구체적으로 아모르 파티 내 책임의 십자가, 내 운명의 십자가를 뜨겁게 사랑하여 어깨에 메고 하루하루 날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래야 항구한 정주의 삶이요 존엄한 품위의 참삶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은 우리 모두 십자가를 질 힘을 주십니다.

 

다음은 환대입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내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들이요, 잠시 이 세상에 온 손님들이요 나그네 길손들이라 생각하면 불쌍한 마음에 연민의 사랑이 넘칠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하나라도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을, 궁극에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고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주님의 단호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네딕도 성인은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을 섬기듯 그런 환대의 사랑으로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우리의 궁극의 갈망이요 소망이 주님께 합당한 사람, 참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평화의 사람이, 주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제 십자가를 지고 항구히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그리고 모두를 주님처럼 맞이하는 환대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靜水流深’정수유심),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深水無聲;심수무성). 아멘.

 


Articles

8 9 10 11 12 13 14 15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