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3.사순 제3주일 탈출20,1-17 1코린1,22-25 요한2,13-25
“어떻게 참된 신자로 살 수 있을까요?”
-성전사랑, 계명준수, 지혜추구-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시편19,8)
신자가, 수도자가, 사제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되는 일은 평생과제임을 깨닫습니다. 참된신자라면 참된사람이겠고 이또한 평생과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참사람되는 평생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을 것입니다. 89세 고령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참신자이자 참사람의 모범입니다. 하루하루 100% 삶을 사시는 분입니다. 세상에서 교황님보다 부지런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교황님이 어제 접견시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좋으실대로(please)’ 그리고 ‘감사합니다(thank you).’두 말마디입니다.”
어린이들 접견시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평범하나 친절한 말마디가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은 용기의 덕을 요구한다.”
교황청 사법의 해를 맞이하여 교황청 법조인들 알현시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교황님과 함께 광범위한 대화를 나눴음에 감사한다.”
교황님 알현후 하신 독일의 수상이자 사회민주당 정치가인 올라흐(Olaf)의 말입니다. 또 교황님은 사별가족들과의 접견중에는 이들이 기도중에 위로를 발견할 것을 격려했습니다. 오늘의 다산 어록과 공자의 말씀이 참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진심을 다할 때, 상대에 대한 진심도 흘러나온다.”-다산
‘자로가 군주를 섬기는 자세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속이지도 숨기지도 말고, 바른말을 하는 것이다.”-공자
아주 예전 변호사 사무소를 찾았을 때 벽에 걸려있던 액자 안에 ‘공선사후(私先公後)’라는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아마도 그 변호사의 좌우명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요즘 공천파동중 회자되는 말마디가 ‘선당후사(先黨後私)’입니다. 모두가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선을 우선시하는 분별의 지혜를, 참사람의 도리를 알려주는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참신자와 참사람이 분리된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며칠전 병원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던중 1회용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탔을 때 녹지 않아 웬일인가 당황했는데 무심코 찬물 꼭지를 눌렀던 것입니다. 좀 멀리서 노모와 함께 기다리던 젊은 자매가 급히 오더니 조용히 다시 다른 컵 따뜻한 물에 믹스커피를 타주고 앞서의 커피를 내다 버리고 제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사소한 일 같지만 얼마나 고맙던지 그 친절한 배려의 사랑에 제가 미혼의 젊은 사람이었다면 프로포즈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아들이 있다면 며느리로 삼고 싶을 정도로 감동했습니다. 이런 깨어 있는 친절한 배려의 사람이야말로 참사람이자 참신자의 모범이겠습니다. 무엇보다 잘 떠나는, 마지막 잘 떠나는 죽음에서 드러나는 삶의 향기입니다.
예수님은 떠나셨지만 온 인류에게 미사라는 참좋은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남기셨고 부활하시어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니 참으로 잘 떠남의 모범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처럼 잘 떠나는 참된신자로서의 삶이라면 그대로 참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참된 신자로 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첫째, “성전사랑”의 삶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성전을 사랑합니다. 성전사랑은 성전정화로 자연스럽게 표현됩니다. 공동체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성전은 주님이 삶의 중심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주님을 사랑하듯 주님의 집이자, 기도의 집, 환대의 집, 평화의 집인 성전을 사랑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은 오늘 복음에서의 성전정화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꾼들을 내쫓으시고 비둘기 파는 가난한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즉시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을 알아 챘기에 저절로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라는 성경 말씀을 연상합니다. 세상을 성화(聖化)해야할, 세상의 마지막 영적 보루인 거룩한 성전이 속화(俗化)된다면 정말 대책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겠다.”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마침내 당신 몸이 영원한 성전이 될 날을 내다보는 주님이시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성전에 머뭄으로 이미 그 혜택을 풍성히 누리고 있습니다. 건물의 성전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인 교회공동체가,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의 성전이니 성전정화의 개념은 참 넓습니다.
사순시기는 회개의 시기이자 성전정화의 시기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보이는 성전정화는 물론 공동체 성전의 정화로, 그리고 극기, 절제, 선행, 단식, 기도, 자선 활동을 통해 각자 자기 성전정화로 드러나야 함을 봅니다.
둘째, “계명준수”의 삶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사랑함과 동시의 하느님의 계명을 사랑합니다. 십계명은 물론 주님의 계명은 한결같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사랑 역시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계명준수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온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최고의 사랑 선물인 십계명을 소개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십계명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1.한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3.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4.부모에게 효도하라.
5.사람을 죽이지 마라.
6.간음하지 마라.
7.도둑질을 하지 마라.
8.거짓증언을 하지 마라.
9.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0.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예나 이제나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공동체에 적용되는 참신자는 물론 참사람이 되기 위한 삶의 기본 자세에 대한 구체적 가르침이 십계명입니다. 무엇보다 십계명을 포괄하는 사랑의 이중계명인 경천애인과 황금률, 그리고 마태복음 산상설교중 진복팔단의 실천에 까지 이른다면 말그대로 금상첨화, 사랑의 완성이자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 될 것입니다.
셋째, “지혜추구”의 삶입니다.
자비와 함께 가는 지혜입니다. 삶의 지혜, 분별의 지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무지에 대한 답이 지혜요, 지혜 또한 하느님의 참 좋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은총의 선물이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입니다. 교회학자 축일시 새벽 독서기도 성무일도시 초대송 후렴과 아침기도시 성경소구도 은혜롭습니다.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께, 어서와 조배 드리세.”
“나는 지혜를 욕심을 채우려고 배우지 않았고, 이제 그것을 아낌없이 남에게 주겠다. 나는 지혜가 주는 재물을 하나도 감추지 않는다. 지혜는 모든 사람에세 한량없는 보물이며 지혜를 얻은 사람들은 지혜의 가르침을 받은 덕택으로 천거를 받아 하느님의 벗이 된다.”(지혜7,13-14)
하느님과 우정이 깊어지면서 지혜의 사람이 됩니다.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혜가 좋아서 교회학자임임을 깨닫습니다. 지혜중의 지혜가, 지혜의 결정체가, 하느님의 지혜가 바오로 사도가 고백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역시 하느님의 지혜라 일컫는 예수님과 우정이 깊어질수록 지혜로움 삶임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참된 신자로 살 수 있을까요?”
1.한결같은 성전사랑의 삶입니다.
2.한결같은 계명준수의 삶입니다.
3.한결같은 지혜추구의 삶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참신자의 삶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의 규정은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시편19,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