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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욥기3,1-3.11-17.20-23 루카9,51-56

 

 

어떻게 죽어야 하나?

-귀가준비-

 

 

오늘 교회는 수호천사 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만 우리 분도회는 수도승 전례지침에 따라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하여 강론 제목도 제1독서 욥기를 묵상하던중 자연스럽게 ‘어떻게 죽어야 하나?-귀가준비-’로 정했습니다. 믿는 이들의 죽음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라 칭할 수 있고, 하여 죽음준비대신 귀가준비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강론한 적도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 약20년전 개신교 목사님과 주고 받은 문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일언지하에 대답했고 만족했습니다. 

 

-“신부님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입니다.”-

 

누구나의 소원도 궁극에는 다 똑같을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오복五福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오복은 중국 춘추시대에 쓰인 서경에서 언급된 이후 수많은 문헌과 담론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1.수壽입니다. 누구나의 소망이 오래 사는 것입니다. 2.부富입니다.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고 싶은 소망입니다. 3.강령康寧입니다. 건강하게 살고 싶은 소망입니다. 4.유호덕攸好德입니다. 이웃에 덕을 쌓고 싶은 소망입니다. 5.고종명考終命입니다. 죽음을 편안히, 깨끗이 맞고 싶은 소망입니다. 이대로라면 정말 완벽한 삶이겠습니다. 그러나 이 오복을 갖추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요? 극소수일 것입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고종명Well-dying일 것입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나? 장수시대에 주어지는 화두와 같은 물음입니다. 미리 준비해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분도성인은 물론 수도교부들의 이구동성의 말씀이 ‘죽음을 날마다 눈 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늘 깨어 죽음을 준비하며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준비에 만전을 기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은 가장 확실한 미래임에도 이에 대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여 한국인은 90% 이상이 병원에서 팔에 링거를 꽂고 산소마스크를 쓴 채 싸늘한 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고 있습니다. 하여 올 2월부터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의해 연명치료 거부로 존엄사가 가능해졌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나? 오늘 지금 여기 주어진 자리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쌓여 내공이 되고 미래가 됩니다.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는 부질없는 시간낭비입니다. 단연히 부각되는 바 관리영성입니다. 관리영성으로 깨어 존엄한 품위를 유지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하여 제가 강조하는 바, 믿음관리, 건강관리, 돈관리입니다. 참으로 늘 깨어 노력해야할 지혜로운 하루하루의 처방이 이런 관리영성입니다. 

 

오늘 제1독서 욥의 독백이 너무 리얼합니다. 내 경우처럼 마음에 와닿습니다. 생일을 저주하고 차라리 죽기를 갈망하면서 왜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는가 한탄하는 욥입니다. 모두를 잃고 마지막 건강까지 잃고 극도의 고통을 견뎌내는 욥입니다. 어제 1차 시련은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하며 끝내 믿음을 지켰습니다만 오늘의 고통은 어제와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욥기 앞에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부인과 주고 받은 문답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려요.”(욥2,9)

 

이런 상황이라면 하느님을 저주하고 자살하고 싶은 유혹의 충동도 능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믿음의 응답이 감동적입니다.

 

-“당신은 미련한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야 하지 않겠소?”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욥2,10).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애오라지 하느님 앞에서처럼 처신하는 욥의 깊고 깊은 하느님 경외의 믿음입니다. 평소의 내공을 짐작하게 합니다. 오늘 극한의 시련중에도 욥의 고백은 저에겐 흡사 독백의 기도처럼 들립니다. 면밀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불행에 대한 한탄은 있지만 하느님께 대한 노골적인 거부나 원망이나 저주는 없습니다. 저역시 30년 이상 요셉수도원에 정주해왔지만 하느님께 감사, 감동, 감탄한 적은 있어도 원망, 절망, 실망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답답하고 막막할 때는 하느님을 바라보듯 하늘과 불암산을 바라 봤습니다.

 

마지막 존엄한 품위의 근거인 하느님께 대한 욥의 신뢰와 사랑은 여전합니다. 바로 이게 욥의 놀라운 점입니다. 마지막 넋두리 또한 질문투로 은연중 하느님을 탓하는 듯 하지만 예모바르고 점잖습니다. 악의적인 면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메건만 오지 않는구나. 그들이 무덤을 환호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련만.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욥3,20-23).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믿음은 불가능합니다. 평소 욥의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신뢰의 내공 덕분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찬미와 감사의 삶과 기도로 영적 내공을 쌓는 충실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욥의 모습이 흡사 복음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예표처럼 보입니다. 복음 서두 십자가의 도상에서 예수님의 준비된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시련과 죽음의 십자가의 길 넘어 승천과 부활을 내다보는 예수님이십니다. 하여 주님은 냉대하는 사마리아인들을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불살라 버리자는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을 통해 예루살렘으로의 발길을 재촉하십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의 승천과 부활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은 우리 믿는 이들 모두가 통과해야 할 길입니다. 어찌보면 욥의 처절한 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앞당겨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욥과 달리 우리는 어떤 십자가 도상의 시련중에도 파스카의 예수님이 늘 함께 계시니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 함께 각자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에게 존엄한 품위의 고종명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은 단하나 십자가의 길뿐임을 깨닫습니다. 끝으로 성공적 귀가준비를 위해 제 좌우명 자작 애송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마지막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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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로 2018.10.02 08:10
    매일 주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충실한 삶을 살게 하시여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준비를 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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