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 -궁극의 희망-2019.10.29.연중 제30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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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9.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로마8,18-25 루카13,18-21

 

 

하느님의 나라

-궁극의 희망-

 

 

빛을 찾듯이 희망을 찾는 인간입니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입니다. 희망이 우리를 치유하고 위로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는 이들도 부지불식간 희망을 찾습니다. 희망을 찾아 이리저리 여행하는 사람들입니다. 희망의 빛입니다. 희망의 빛을 찾아 수도원에 피정차 오는 무수한 사람들입니다. 희망이 있을 때 얼굴도 삶도 빛납니다. 희망이 있을 때 사람이지 희망을 잃으면 거칠고 사나운 괴물같은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과연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불치의 병이나 불행한 상황중에 절망하는 이들도 많고 절망하며 죽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희망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라나 사회나 가정이나 종교계나 정치계나 경제계나 교육계나 어디도 희망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절망하면 집니다.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희망해야 이깁니다. 희망의 승리입니다. 악마가 하는 일은 곳곳에 절망을, 분열을 뿌려 놓는 것입니다. 절망의 유혹에, 분열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그래도' 희망해야 합니다. 하여 참 아름다운 섬이 '그래도' 섬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도 희망입니다. 빠스카의 영성도 결국은 희망의 영성입니다. 제가 참 많이 나누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죄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희망차게 시작해야 한다.”

 

희망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모든 것을 갖추었어도 희망이 없으면 어둠의 자리 거기가 지옥입니다. 참으로 아무리 어둡고 힘들어도 희망으로 빛나는 사람이 있는 그 자리가 천국입니다. 많이 회자되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희망찬 사람은/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사람만이 희망이다”-박노해.

 

이런 희망의 사람은 주님과 하나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절망 넘어 희망의 하느님나라를 보는 사람이며,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 있습니다. 언젠가 그날에 펼쳐질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눈만 열리면 이미 오늘 지금 여기서 펼쳐지고 있는 희망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새삼 희망의 하느님 나라 역시 발견임을 깨닫습니다. 희망의 눈이 열릴 때 발견되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어느 자매의 장부가 뜻한바 있어 자발적으로 무인도와도 같은 광도라는 섬에 거주하러 갔다기에 축복과 더불어 메시지를 보내드렸습니다. 물론 가톨릭 신자 부부입니다.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섬이네요! 세상 바다에 광도같은 인생을 생각합니다. 형제님은 ‘천주교 광도 수도원 원장님이 되었네요! 늘 주님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궁극의 희망은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나라요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그 어디나 이런 주님을 모시고 함께 살 때 거기가 희망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밖으로 찾아 갈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찾아서 살아야 할 희망과 기쁨, 평화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아주 작은 일상의 사건에서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내다보는 예수님이시며 바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가 그 좋은 증거입니다. 짙은 절망의 구름 넘어 빛나는 희망의 태양을 내다 보는, 이미 절망의 어둔 구름 사이로 새어나오는 희망의 태양 빛을 보는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느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희망의 사람은 겨자씨 같은 사람, 누룩과 같은 사람입니다. 절망 중에도 겨자씨처럼 부단히 희망으로 자라나 하느님 나라를 펼치는 사람, 누룩같은 효소가 되어 희망과 기쁨 가득한 분위기의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은 삶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어떤 역경중에도 희망의 하느님 나라를 살았던 '희망의 전사'입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바로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하느님 나라인 파스카의 예수님과 늘 함께 할 때 바로 희망의 구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희망의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희망의 표징이 되어 사는 것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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