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선물이자 선택이다 -빛이냐 어둠이냐, 생명이냐 죽음이냐, 진리냐 거짓이냐-2021.4.14.부활 제2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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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14.부활 제2주간 수요일                                                             사도5,17-26 요한3,16-21

 

 

 

구원은 선물이자 선택이다

-빛이냐 어둠이냐, 생명이냐 죽음이냐, 진리냐 거짓이냐-

 

 

 

하루하루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어제는 빛과 생명이 넘치는 신록의 기쁨 가득한 참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향기롭고 신선한 공기만 호흡해도 배부른 느낌에 행복했습니다. 태령산 중턱에서 찍은 무아의 집 전경도 참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 도반과 나눴습니다.

 

“아, 그곳도 봄이 아름답네요!”

답신을 받았습니다. 봄은 요셉수도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여기 무아의 집도 아름답고 나라 곳곳이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아름다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됩니다. 바로 하느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심을 입증합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만나는 아름다운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물이자 선택입니다.

구원도 선물이자 선택입니다.

 

선물을 잘 분별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선택하면 누구나 구원이요 행복입니다. 방금 화답송 후렴 몇 구절도 선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무지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아름다운 찬미의 시편 선물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하느님 선물중의 선물이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 서두가 입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도 새삼 구원은 선물이자 선택임을 깨닫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선물이신 예수님을 믿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때는 구원이지만 마음을 닫고 믿지 않을 때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내리신 심판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닫고 믿지 않아 자초한 심판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심판이 아니라 스스로 심판을 선택한 무지한 내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분별의 지혜를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정말 무지의 어둠이, 무지의 악이 문제입니다. 동방 영성에서는 하느님을 모르고 나를 모르는 무지를 마음의 병이라 합니다. 하여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회개의 겸손과 지혜가 무지에 대한 유일한 답임을 깨닫게 됩니다. 무지의 정체는 다음 대목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무지에 병들어, 무지에 눈이 멀어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도 있듯이 악을 행하다 보면 악이 악인줄 모릅니다. 하여 말 그대로 악순환입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빛이 아닌 어둠으로,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진리가 아닌 거짓으로 나아갑니다. 

 

어찌보면 인간의 부정적 본질 같은 무지의 병, 무지의 악, 무지의 어두움은 우리의 원죄일 수 있습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도 바로 무지를 뜻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능가하는 무지의 탐욕의 바이러스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생명과 빛, 진리를 향한 원초적 영적 본능을 지닌 원래의 인간이요 이를 회복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회개의 빛’이, ‘주님의 빛’이 ‘무아無我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낼 때 비로소 빛과 생명으로 충만한 진리의 삶입니다. 더불어 두려움의 어둠도 사라집니다. 

 

사실 어둠의 비밀이 많을수록 두려움도 점점 커집니다. 하여 고백성사를 통해 회개하고 비밀의 어둠을 덜어내는 것이 영적 건강을 위해서 필수입니다. 비밀의 어둠이 사라질수록 두려움도 사라져 투명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생명으로 나아갑니다. 더욱 주님을 닮아갑니다. 바로 진리와 빛이자 생명이신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일치할수록 빛과 생명, 진리로 충만한 행복한 구원의 삶이요, 저절로 무지의 어둠과 두려움은 사라져 무지의 병은 치유됩니다. 그러니 무지에 대한 궁극의 처방은, 답은 우리 파스카의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궁극의 영적 싸움의 본질은 빛과 어두움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긴적은 없습니다. 바로 제1독서 사도행전이 그 적나라한 영적싸움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빛이신 주님께 속한 사도들과 어둠에 속한 대사제와 동조자들 사이에 대결입니다. 결과는 사도들의 승리, 빛의 승리입니다. 

 

사도들은 밤중에 주님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와 성전에서 생명의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였고, 적대자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왔으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 못했으니 결국 사도들의 승리, 빛의 승리, 주님의 승리, 민심의 승리였습니다. 흡사 빛에 포위된 어둠처럼 대사제와 동조자들의 처지가 참 초라해 보입니다.

 

구원은 선물이자 선택입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빛과 생명, 진리이신 예수님을 날마다 선택하여 믿고 사랑하여 닮아갈 수록 우리 역시 빛과 생명, 진리로 충만한 행복한 삶이요, 이는 우리 모두의 궁극의 소망이자 목표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무리 고백해도 늘 새로운 예수님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예수님, 당신의 저의 모두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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