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여정 -천국天國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2022.2.15.연중 제6주간 화요일 -제주도 성지 순례 여정 피정 2일차- 야고1,12-18 마르8,14-21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5,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2.2.15.연중 제6주간 화요일

-제주도 성지 순례 여정 피정 2일차-

야고1,12-18 마르8,14-21

 

 

깨달음의 여정

-천국天國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강론쓰는 시간은 새벽 2시, 장소는 제주도 강정 마을 평화 센터 숙소 3층 구럼비 3번 방입니다. 참 오랜만에 수도원의 도반道伴 형제들과 단기간의 순례 여정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 또한 은총의 선물입니다. 주방장 형제의 “오랜만에 움직인거죠?” 물음에 “예, 불암산이 움직였습니다.” 화답했습니다.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은 제 정주의 스승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산같은 정주의 삶을 살다가 설레는 기쁨으로 떠남의 순례 여정에 오르니 새삼 죽음의 떠남이 연상되었습니다. ‘아,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지상 천국의 삶을 살아야 설레는 기쁨으로 하느님의 나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같은 설레는 기쁨의 선종을 맞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영감처럼 순간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지상 천국의 기쁨을 사는 것이 최상, 최고의 죽음 준비임을 깨닫습니다.

 

오랜만에 불암산을 떠나니 황당한 일에 잠시 시끄러웠습니다. 떠나기 전날 으레 있으려니 했던 지갑속에 주민등록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여권으로 대체 가능한가 찾아보니 이미 시효가 만료된지 2년이 지났습니다. 주민등록증도 필요없어 거의 잊고 지내다 보니 종적 묘연한 사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어 혹시나 몇분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도 답이 못되어 공동체 형제들에게 공론화하고 저녁도 거른 채 또 주민등록증을 찾았습니다.

 

“찾았습니다! 주민등록증! 책상 서랍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잊었던 은전을 찾은 여자처럼 환호하며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은총에 감사하여 즉시 분실을 알렸던 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전에 원장수사는 텔레그램으로 찍어 놨던 주민등록증 사본을 보냈고 이어 끝기도 끝난후에는 출력한 주민증 사본을 들고 왔고 저는 자상한 배려의 형제애에 감동했습니다. 잠시의 소동을 통해 공동체 형제들과 지인의 관심과 애정愛情을 확인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공항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일일이 주민증과 얼굴을 대조했습니다.

 

“세속에 

살아도

마음은 높고 푸른 

하늘이다”

 

제주도 비행중 신비로운 흰구름에 푸른 하늘을 보며 순간 떠오른 시입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수도원 피정을 2차례 지도해줬던 김근수 요셉 신학자님이 반가이 기다렸다 시종일관 제 여행짐을 운반해 주었습니다. 오후 일정 가이드는 태풍서귀의 저자인 강홍림 사도 형제가 기꺼이 함께 해 줬습니다.

 

“제주도 면적은 갈릴리의 90%입니다.”

 

제주도를 버림받았던 이방의 갈릴리에 빗댄 듯 했고, 갈릴리의 예수님처럼 제주도의 예수님을 추종하는 제자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세속에 살아도 치열한 구도자와 수행자가 되어 예언자적 사명감에 성서에 관한 많은 주석을 출간하고 있는 참 경이驚異로운 평신도 신학자입니다. 저는 주저없이 형제님을 제주도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이라 격찬激讚했습니다.

 

삶에는 이면사裏面史가, ‘비하인드 스토리behind story’가 있는 법입니다. 이면사를 알고 보면 더욱 연민의 깊은 마음과 눈으로 바라보며 모두를 수용하게 됩니다. 제주도濟州島의 제주라는 뜻은 “건너에 있는 별볼일 없는 땅”이라는 것이며 보물섬으로 알았던 제주도가 옛날에는 중죄인들의 유배지 섬으로 하나의 거대한 감옥과 같았고, 제주목의 관아를 방문했을 때는 제주 목사는 그대로 오늘날의 교도소 소장과도 같아 죄수들을 관장하는 것이 주업무였다는 가이드 형제의 설명이었습니다. 

 

이어  신축교안에 이어 4.3 사건등, 그야말로 수난으로 점철된 땅이요 죄수들의 후손들도 많아 한 많은 사연들로 인해 주민들 안에 잠재해 있는 피해의식, 저항의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공부해야할 제주도의 역사요 이면사임을 절감했습니다. 이어 제주항에 들려 노래비 앞에서 “떠나가는 배”라는 가곡의 이면사도 들었고 시간되면 이 가곡을 배우겠다 생각했습니다. 

 

민속박물관은 월요일 휴무로 관람은 좌절되었고 이어 이시돌 센타를 방문하여 제주도의 은인이자 수호성인이라 할 수 있는 아일랜드의 골룸반 외방선교회 출신의 임피제 신부(1928-2018)의 헌신적 노력과 헌신에 감격했습니다. 4년전 선종했다는 이 성인사제같은 분의 평전이 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님의 고백도 한 눈에 들어왔고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가난한 이 땅에 첫 발을 딛으며 제 마음에 떠오른 예수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한글옆에는 영어가 병기되어 있었습니다. 복음의 사랑은 이처럼 구체적이요 실제적입니다. 최후심판의 잣대는 바로 이런 작은이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 달렸다는 것이며 이 또한 우리의 무디어진 마음을 두드리는 회개의 촉구 말씀입니다. 이어 제주 맥주 공장에 들려 소량의 독특한 색깔과 향기의 네 종류의 맥주도 시음했고 저녁 식사후 평화 센터에 오후 8시 귀가함으로 오후 한나절의 순례 여정을 알뜰히 끝냈습니다.

 

우리의 순례 여정은 그대로 회개의 여정이자 더 구체적으로 깨달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참으로 늘 강조하는 바 순례 여정을 하루로, 일년사계로 압축했을 때의 시점時點입니다. 제 경우는 하루로 하면 오후 4시, 일년사계로 하면 초겨울입니다. 이런 자각이 늘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깨어 오늘 지금 여기서 환상을 떨쳐 버리고 본질적 깊이의 단순투명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인간을 눈멀게 하는 마음의 고질병이 늘 강조하는 바, 무지의 병입니다. 참으로 무지에 눈 먼 인간, 바로 인간에 대한 부정적 정의입니다. 바로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부단한 회개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뿐임을 깨닫습니다. 깨달음의 은총, 깨달음의 빛입니다. 깨달음을 통해 깨끗한 마음에 깨어 있는 정신이요, 늘 새롭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오늘 복음도 제자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의 죽비같은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새삼 청해야 할 바, 회개의 은총, 깨달음의 은총임을 절감합니다. “에파타!”. 참으로 열려야 하는 마음의 눈이요, 마음의 귀임을,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깨달음의 빛이요 깨달음을 통한 마음의 순수와 자유임을 깨닫습니다. 깨달음이 천상은총임을 야고보 사도가 통쾌하게 밝힙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것도, 시험을 통과하게 하는 것도 은총의 깨달음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문제를 해결함이 아니라 문제를 해소시키는 깨달음입니다. 몰라서 오해와 착각이지 깨달음을 통해 삶의 실상을 알면 저절로 문제는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깨달음의 말씀입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제 강론도 빛의 아버지께서 내려오는 천상선물 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순례 여정중의 우리 모두를 ‘진리의 말씀’으로 새롭게 낳으시고 ‘생명의 화관’을 앞당겨 씌워 주시어 오늘도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이 강론을 요약합니다.

 

“주님, 당신이 깨우쳐 주시는 사람은 행복하옵니다.”(시편94,12ㄱㄴ). 아멘,

 


Articles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