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기도와 회개, 믿음과 겸손, 자비와 지혜- “선택, 훈련, 습관”2023.8.8.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1170-1221)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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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8.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1170-1221) 기념일        

민수12,1-13 마태14,22-36

 

 

하느님 중심의 삶

-기도와 회개, 믿음과 겸손, 자비와 지혜-

“선택, 훈련, 습관”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로 하소서."(시편51,12)

 

교황님 홈페이지에서 포르트칼 리스본에서의 제37차 세계 젊은이 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후 로마로 귀국중 기내에서의 회견 기사 제목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Lisbon WYD was a “beautiful”experience’(리스본에서의 세계 젊은이 날 행사는 아름다운 체험이었다)

 

문득 30여년전 강론시 세수대야 바닥의 영문 글씨를 보고 강론에 인용했던 신선한 말마디, “Life is beautiful(인생은 아름다워라)”이었습니다. 이어 생각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명시, 마지막 구절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과연 인생 끝나는 날, 인생 아름다웠다고 고백할 자 몇이나 될런지요? 리스본에서의 교황님 강론중 떠오른 말마디 하나도 생각납니다. “기쁨은 선교다. 기쁨은 훈련(training)을 필요로 한다.” 요즘 제가 참 많이 강조하는 영적 삶의 구조, “선택-훈련-습관”이란 말마디와 더불어 “끊임없이” “한결같이”란 두말마디입니다. 끊임없는, 한결같은 영성 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어제 신문 칼럼 끝대목의 경고도 생각납니다.

 

“아직 인류가 살 곳은 지구뿐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명작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고의 안감독님은 말씀하셨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기후위기 막기를 포기하는 순간,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인류의 삶은 끝난다.”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무서운 말마디, 부단한 훈련의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영성생활은 끝난다. 그러니 죽을때까지 멈춰서는 안되는 영성훈련입니다. 그래서 제가 삶이 얼마 안남았다는 자각에서 강론중 요즘 많이 강조하는 제목중 하나가 “여정”입니다. 또 하나는 “삶의 중심”입니다. 이번 세계 젊은이의 날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석했던 이집트 청년의 인터뷰 한 대목도 생각납니다.

 

“나는 중심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언제나 중심입니다. ‘내가 언제든 하느님 가까이 있음을 발견할 때, 나는 참으로 잘 살게 됩니다.”

 

삶의 중심인 하느님보다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삶의 중심을 잃으면 혼란과 복잡의 무질서의 어둠에서, 늪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개인이든 공동체든 이보다 큰 재앙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부제로는 “기도와 회개, 믿음과 겸손, 자비와 지혜” 그리고 “선택, 훈련, 습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하느님 중심에 가장 가까이 살았던 분이 오늘 제1독서 민수기의 모세요, 아예 하느님 중심과 일치되어 사셨던 분이 오늘 복음의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요,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12-13세기 스페인 출신의 성 도미니코 사제 역시 주님과 참 가까웠던 성인입니다. 알비파, 발두스파, 카타리파 이단의 영적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대에 교회의 필요에 응답해 탁발 수도회인 성 도미니코 설교자회를 설립한 분입니다. 청빈한 삶과 말씀의 연구와 설교로 이단을 척결하는 것이 수도회 회원들의 주업무였습니다.

 

1221년 8월 6일 블로나의 수도원에서 치열했던 만 51세 생애를 마치면서 제자들에게 한 유언은 “서로서로 형제들간에 사랑하라, 겸손하라, 청빈을 자발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영적인 보화를 만들어가도록 하라.”였습니다. 세상을 떠날 무렵 유럽에는 60여개의 수도원과 수녀원이 설립되었고, 500명의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1234년 사후 13년만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천문학자와 설교자의 수호성인입니다. 또 성 도미니꼬와 도미니꼬 수도회는 묵주기도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로 하느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주님을 닮아 겸손과 믿음, 자비와 지혜의 참삶입니다. 바로 그 좋은 본보기가 모세입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 정말 자기를 아는 것이 겸손이요 지혜인데 모세가 바로 그러합니다. 하느님은 잠시 질투의 무지에 빠져 탈선해 있던 미르얌과 아론을 꾸짖으며 모세를 적극 두둔하십니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입과 입을 마주하여 그와 말하고, 환시나 수수께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이어 미르얌에게 벌로 악성 피부병을 주시자 아론은 즉시 회개와 더불어 모세에게 기도를 청합니다. 기도와 회개를 잊어 무지의 어둠에 빠졌을 때 누구나의 가능성이 아론과 미르얌입니다. “하느님, 제발 미르얌을 고쳐 주십시오.” 하느님 중심에 늘 가까이 살았던 모세에게 기도는 호흡과도 같습니다. 하느님 없는 모세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숨쉬며 살아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살아있음이 하느님 체험입니다.

 

참으로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의 결과가 믿음과 겸손이요, 자비와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끊임없이 하느님 중심을 선택하여 자발적으로 믿음과 겸손, 자비와 지혜의 한결같은 훈련으로 이들 덕목을 습관화해야 함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후에 신속한 주님의 처신에서 분별의 지혜가 빛납니다. 공성이불거, 노자의 말처럼 군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군중을 돌려 보내고 제자들은 떠나 보내고 자신은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십니다. 예수님께 관상과 활동의 리듬은 너무나 자연스런 것이었습니다. 낮의 활동후에는 밤의 고독과 침묵의 자리에서 아버지와의 깊은 일치의 친교로 자신을 충전시키는 일이 우선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일치로 영안이 활짝 열리니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곤궁중에 있는 제자들을 보자 즉시 개입합니다. 호수위를 걸으니 말그대로 하느님과 일치된 예수님입니다. 이어지는 말씀과 제자들과의 문답이 여전히 큰 가르침이 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는 바로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늘 평생 화두로 삼고 살아야 말씀입니다. 수도원 십자로 예수 성심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입니다. 하느님의 현현인 예수님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걷던 베드로가 두려움에 주님 향한 눈길을 잃자 즉시 물에 빠져들면서 기도합니다. 이어지는 말마디들도 좋은 묵상감입니다.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부족하기로는 민수기의 미르얌과 흡사한 베드로입니다.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어 공동체의 중심에 자리잡자 비로소 내외적 평화와 안정입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입니다.”

기도와 회개와 더불어 믿음을 고백하는 제자들입니다.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애초부터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훈련해야할 믿음입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 이런 기도와 회개, 믿음의 여정을 통해 크게 깨닫고 배웠을 믿음과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일정이 참 분주합니다.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자 모든 병자들이 그분께 다가왔고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합니다. 새삼 외딴곳에서 날마다 밤마다 전존재를 아버지의 영으로 충전시킴이 모든 능력의 원천이 됐음을 봅니다. 삶의 중심이신 주님을 만남으로 “온전한(whole)” 구원의 치유임을 깨닫습니다.

 

“온전함(wholeness)”이 “거룩함(holiness)”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을, 즉 기도와 회개, 겸손과 믿음, 자비와 지혜의 삶을, 그리고 온전한 삶,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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