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8.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다니2,31-45 루카21,5-11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파거불행(破車不行), 노인불수(老人不修)-
오늘 지금 여기를 살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신라의 고승 원효는 발심수행장에서 이릅니다.
“파거불행破車不行), 부서진 수레는 갈 수 없듯이 망가지고 무너진 몸은 더 이상 쓸 수가 없고, 노인불수(老人不修), 늙은 사람은 닦을 수가 없습니다.”
좀더 젊고 건강하고 힘있을 때 힘껏 수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새삼 오늘 지금 여기 주님과 함께 살아 수행하는 제자리, 꽃자리가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선물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중 두루 떠오른 내용들입니다. 우선 떠오른 시편 성구입니다.
1.“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버리나이다.”(시편90,10)
이어 중세기 스페인의 신비가이자 성녀인 아빌라의 대 데레사가 노래한, 후대인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널리 불리는 기도문입니다. 시간되면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2.“아무것도 너를 어지럽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가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도다”
불교 스님의 다음 말씀도 주님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3.“나이가 들게 되면 몸뚱이도 문제지만 마음이 더 문제입니다.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아상(我相), 이런 게 가득 찹니다. 남의 말을 잘 안 듣게 되어있어요. 수행이라는 것이 아상을 녹이는 건데, 나이가 들수록 아상이 공고해지기 때문에 수행이 어려운 것입니다. 아상을 녹이는 수행이요,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을 비우는 수행입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법정이 소개하는 효봉스님 말년의 묘사입니다.
“스님의 성격은 천진한 어린애처럼 풀려 시봉들과 장난도 곧 잘 했다. 육신의 노쇠에는 어쩔 수 없는 것, 무상하다는 말은 육신의 노쇠를 두고 하는 말인가. 스님은 가끔 ‘파거불행(破車不行)이야.’라고 독백을 하였다.”
4.또 부처님께서는 “설사 백년을 산다 해도,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수행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말씀하시며, 자경문에는 “3일간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이고, 백년을 탐하여 모은 재산은 하루 아침에 먼지가 된다.” 이릅니다. 새삼 하루하루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주님의 생명과 빛의 진리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5.이사야서 다음 말씀도 우리 마음을 더욱 하느님 말씀에 귀기울이게 합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40,6-8)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은 하느님의 말씀뿐입니다. 말씀의 빛이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오늘 제1독서 다니엘 예언서에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깨우치는 현자 다니엘이 참 통쾌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꼭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의 예표처럼 생각되는 다니엘입니다.
기원전 6-2세기 중동 제국들의 흥망사를 보면서 역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은 사라져간다는 진리를 확인합니다. 금으로 상징하는 바빌론, 은으로 상징되는 메디아, 청동으로 상징되는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제국이 사라져갔습니다. 모든 제국이 사라진 뒤 영원한 나라가 예시되고 있습니다.
“하늘의 하느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그 왕권이 다른 민족에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어 멸망시키고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그대로 2000년 이상 계속되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예언처럼 들립니다. 그리스제국에 이어 로마제국도 사라졌고 그 후로도 얼마나 많은 제국들이 생겨났다 사라져갔는지요! 미제국도 언젠가는 사라져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을 모시고 있는 가톨릭 교회는 건재합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원조인,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왕 역시 건재하며 당신 나라를 대표하는 교회를 이끄십니다. 다음 복음에서 약속하신 그대로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다 사라져도 주님 교회 안에 정주하는 우리는 영원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성전 외관의 화려함에 놀라며 집착하는 이들에게 이 또한 사라질 것임을 예언하시며 보이는 것 넘어 당신 안에 굳건히 자리 잡을 것을 은연중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0년대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해 초토화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사라져간 위대하고 화려했던 건물의 성전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혼란스럽다 해도 끝은 아니니 정신 바짝 차리고 제자리, 꽃자리에서 깨어 제 역할에 충실할 것을 권하는 주님입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를 따라가지 마라.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이 아니다.”
주님은 바로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 꽃자리에서 결코 부끄럽게 경거망동하거나 부화뇌동하지 말고 깨어 당신과 함께 묵묵히, 충실히 살라 말씀하십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지극한 인내로 정주의 제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찬미와 감사중에 기쁘게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역시 나누고 싶은 제 좌우명 기도 마지막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께서 불러주신
정주의 이 꽃자리에서
자신을 버리고 제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