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7.목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340-397) 기념일
이사26,1-6 마태7,21.24-27
주님 반석 위의 인생집
-한결같이 주님 말씀을 실행하는 삶-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이사26,4)
밤 일찍 눈뜨니 지난 밤 도착한 어느 자매의 메시지입니다.
“낼 제 생일이예요. 감사와 찬미로 봉헌해 주세요. 무릎, 심장, 눈 등.... 우울함, 이제 퇴임을 2년 앞두고 저를 바라보니 아픔이 가득하네요.”
어려운 중에도 최선을 다해 온 삶임을 알기에 즉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주님의 위로와 평화의 축복을 빕니다. 힘내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요즘 사람도 땅도 날로 그 병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원흉은 인간의 이기적인 무절제한 소비와 끝없는 탐욕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바야흐로 구체적 이웃인 사람 사랑과 자연 사랑의 실천에 돌입해야할 절박한 상황입니다. 이래야 반석위의 인생집, 반석위의 사회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요즘의 추세는 흡사 괴물들의 전성시대, 사상누각의 전성시대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제 신문기사 내용이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정신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수(치매포함)는 2015년 289만에서 2021년 411만명으로 6년새 42.2% 늘었다. 관련치료비도 같은 기간 4조1천억원에서 6조5천억원으로 58.5% 뛰었다. 복지부는 자해, 자살 가능성이 있는 정신건강 중-고위험군 규모를 160만명으로 추산한다.”
사람과 더불어 땅의 병도 깊어갑니다.
“산업폐기물의 농촌 쇄도 문제에서 국가가 제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큰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농촌지역에 더 많은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고, 환경은 더 나빠지고, 농촌인구도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역소멸을 더 가속화시킬수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전국토가 쓰레기장이 되고 땅의 병은 더욱 깊어지며, 땅위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건강도 점점 악화될 수 뿐이 없겠습니다. 추상적인 하느님 사랑만이 아니라 근검절약에 사람사랑, 땅사랑의 실천에 돌입해야할 절박할 시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구체적으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삶이요, 반석위에 인생 집들을 짓는 일이겠습니다.
오늘은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생몰연대를 보니 만 57세를 살았던 성인입니다. 저는 성인보다 무려 17년을 더 살고 있는 중입니다. 기념하고 기억할뿐 아니라 모두가 성인이 되어 살라고 우리를 격려하는 성인들 축일입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그리스어로 “불멸”을 뜻하며 성공회에서는 성인의 축일을 그가 선종한 4월4일 지냅니다. 그가 397년 4월4일 성토요일 선종한 날 마지막 남긴 임종어가 얼마나 책임을 다하며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 또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신심깊은 사람인지 말해줍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어찌 이리 많이 남았단 말인가! 오 주여! 어서 빨리 오소서! 지체하시지 마시고 저를 거절하지 마옵소서.”
성 암브로시오는 정말 위대한 성인입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4권” 표지 제목은 “그리스도의 승리”이며 표지 사진은 최초로 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닌 인물,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성 암브로시오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을 삼켜버렸다!”라는 글귀도 나옵니다. 바로 여기 결정적 기여를 한 분이 바로 암브로시오 성인이요 신자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주교가 된 분으로 주교가 된 후에 세례를 받은 분입니다.
성인은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분으로, 세속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했던 탁월한 행정가이면서, 성경, 교의신학, 신비신학등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설교를 통해 설파한 위대한 신학자이자 영성가였습니다. 그는 387년 이단 사상에 빠져 있던 성 아우구스티노를 회두시켜 세례를 줍니다. 성 암브로시오(12.7)와 더불어 성 아우구스티노(8.28). 성 예로니모(9.30), 성 대 그레고리오(9.3) 네 분은 서방의 4대 교부로 추앙을 받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고백록”에서 묘사한 암브로시오의 구체적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그가 아주 짧은 시간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꼭 필요한 요기로 몸을 돌보거나 독서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가 책을 읽을 때에는 눈은 책갈피를 더듬어 나가고 마음은 터득한 바를 되씹고 있었지만 목소리와 혀는 쉬고 있었습니다. 가끔 저희가 그를 찾아갔는데 누구든지 들어가지 못하게 금하는 법도 없었고 또 누가 찾아왔다고 자기에게 알리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소리 없이 묵독하고 있음을 보았고, 그럴때면 저희도 하릴없이 소리내지 않고 한참동안 말없이 그냥 앉아 있다가 가만히 자리를 뜨곤 하였습니다. 그처럼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누가 번거로움을 끼칠 엄두가 나겠습니까?”
성 아우구스티노의 성 암브로시오에 대한 참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입니다. 중세기가 시작되기 전 그 옛날 고대 권위의 시대에 놀랍게도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늘 활짝 열려 있었던 성인의 집무실이었던 것이니, 감히 비교하건데 제 집무실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 암브로시오가 얼마나 말씀의 사람이자 관상의 사람인지, 또 얼마나 뛰어난 집중력을 지닌 분인지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특기할 사항은 그가 평생 “주님의 학인(學人)”이자 “말씀의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끊임없이 말씀의 훈련, 말씀의 실행을 통해 그가 주님의 말씀의 반석위에 얼마나 견고한 인생집을 지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오늘 복음의 다음 말씀을 평생 삶의 지침으로 삼아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또한 깊이 마음에 새겨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부터 계속된 산상설교중 가장 중요한 결론 부분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세워지기는 평생이지만 무너지기는 순간입니다. 밖에서 아무리 좋게 봐줘도 안으로부터 무너지면, 부패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주님 말씀의 반석위의 인생집 역시 평생 미완(未完)의 현재진행형중이니 죽을 때까지 말씀 실행의 수행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사상누각(沙上樓閣), 모래위의 인생집같지는 않은지 다음 묘사가 실감나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정말 이런 인생집이라면 위기를 맞았을 때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말씀 실행의 반석 위의 슬기로운 삶이나 혹은 사상누각의 어리석은 삶 역시 하루하루의 선택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주님의 평생 말씀의 학인이 되어, 수행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말씀 실행을 통해 주님 반석 위에 인생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한결같이 “말씀의 수행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평화의 축복입니다.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주님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이사26,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