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21. 토요일 사부 상 베네딕도 별세 축일                                                                                               창세12,1-4 요한17,20-26


                                                                                           복(福)된, 아름다운 떠남

                                                                                             -떠남 예찬(禮讚)-



하루하루가 하느님 향한 내적 떠남의 여정입니다.

어제는 오늘로, 오늘은 내일로, 복되고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입니다.


-떠났다

 지났다

 삶은 흐르는 강(江)이다

 지금 여기를 산다-


얼마전 써놓고 자족한 짧은 시입니다. 떠남의 여정에 항구한 이들은 과거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지 않은 미래를 사는 것이 아니라 '늘 지금 여기'를 삽니다. 떠날 때는 물론 떠난 후의 삶이 아름답고 향기로워야 합니다. 이런 떠남의 여정일 때 마지막 떠남인 죽음도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바로 성인들의 삶의 특징입니다. 


화향백리(花香百里)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주향천리(酒香千里)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인향만리(人香萬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갑니다. 바로 1독서 창세기의 주인공 아브라함이 그러하고 오늘 별세 축일을 지내는 베네딕도 성인이 그러합니다. 


"나는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런 복된 존재입니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You will be a blessing).' 떠남의 여정에 충실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복되고 아름다운 떠남에 대한 묵상 나눔입니다.


첫째, 떠남은 순종(順從)이자 탈출(脫出)입니다.

이래야 복되고 아름다운 떠남입니다. 늘 맑게 흐르는 강 같은 삶입니다. 바로 오늘 창세기의 아브람이 그러합니다. 다음 묘사가 참 장엄하고 아름답습니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 다섯 살 이었다.' 

순종과 탈출의 사람, 아브라함의 육신의 나이는 75세이지만 영혼은 청년입니다. 안식년을 지낸 내 순례여정은 하루하루가 순종과 탈출의 여정이었고 귀원한 후로도 그러합니다.


둘째, 떠남은 자유(自由)이자 기쁨입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영원한 길손'의 사람입니다. 자유로워 사람이요 자유로울 때 기쁨입니다. 바로 떠남의 여정이 그러합니다. 길 떠나는 아브람이 모습이 그러합니다. 나 또한 산티아고 순례 때 가장 자유롭고 기뻤을 때는 배낭을 꾸려 훌훌 떠날 때 였고 죽음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오늘 별세 축일을 맞는 베네딕도의 선종 모습이 그러합니다. 자유롭고 기쁘게 맞이하는 마지막 떠남, 죽음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입니다. 좀 길다 싶지만 아름다운 선종 장면을 인용합니다.


'성인은 임종 하시기 엿새 전에 당신을 위해 무덤을 열어 두라고 명하셨다. 병세는 날로 심해져서 엿새째 되던 날 제자들에게 당신을 성당으로 옮겨 달라고 하셨다. 그분은 거기서 성체와 성혈을 영하심으로써 당신의 임종을 준비하시고, 쇠약해진 몸을 제자들의 손에 의지한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시었다.'(베네딕도 전기 제37장).


셋째, 떠남은 비움이자 초월(超越)입니다.

떠남의 여정은 하느님을 향한 끊임없는 비움의 겸손의 여정이자 자아초월의 여정입니다. 주님을 향한 비움이자 초월이요 비움과 자아초월을 통해 주님께 가까이 이르게 되고 점차 주님을 닮아갑니다. 모든 성인들이 그러했고 특히 파란만장했던 아브라함과 베네딕도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불암산이 아니곤 바라볼 곳이 없네.“

어제 빠코미오 원장수사와 세대주 이름을 변경하려 별내면 사무소에 다녀오다 혼자 중얼거린 말입니다. 온통 시야를 가린 무질서하게 난립된 복잡한 건물들 넘어 그 자리에 늘 웅장한 모습의 불암산이 든든한 위안(慰安)이었습니다. 바로 늘 바라볼 대상, 비움과 초월의 모범인 아브라함과 베네딕도 성인 역시 우리에겐 든든한 위안입니다.


넷째, 떠남은 하나됨의 축복(祝福)입니다.

진정 복되고 아름다운 떠남의 사람은 존재자체가 축복입니다. 남은 이들에게 일치의 복을 선물하고 또 가는 곳 마다 주님의 복을 선사합니다. 모든 성인들이 그러했고 오늘 창세기의 아브라함이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면서 믿는 모든 이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은 이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남은 이들에게 분열이 아닌 일치의 선물을 남기고 떠나신 주님이요 베네딕도 성인의 죽음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일치를 위한 성체성사를 선물로 남기신 주님이십니다. 나 또한 안식년을 맞아 공동체에 일치의 선물을 남기고 떠났다 귀원하게 되니 감사하기가 한량없습니다.


떠날 때, 떠난 후로의 삶이 아름답고 복되어야 합니다. 이런 삶자체가 공동체엔 축복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복되고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끝으로 내 좌우명 같은 '산(山)과 강(江)'이란 시를 나눕니다.


-밖으로는 산/정주(定住)의 산,

 안으로는 강/늘 맑게 흐르는 강

 천년만년(千年萬年)/임 기다리는 산,

 천년만년/임 향해 흐르는 강.-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3 회개에로의 부르심과 응답-2016.2.13.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6.02.13 186
402 참된 단식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단식-2016.2.12.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6.02.12 285
401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시다 -생명의 길-2016.2.11.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세계 병자의 날) 프란치스코 2016.02.11 259
400 은총의 사순절(Lenten Season) -회개와 제자리의 정주-2016.2.10. 재의 수요일 프란치스코 2016.02.10 198
399 복福된 관상적觀想的 삶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2016.2.9. 성녀 스콜라 스티카 대축일 프란치스코 2016.02.09 380
398 축복받은 삶-2016.2.8. 월요일 설 프란치스코 2016.02.08 202
397 누가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인가?-2016.2.7. 연중 제5주일 프란치스코 2016.02.07 232
396 세 가지 꼭 필요한 것 -외딴곳, 분별력, 자비행-2016.2.6. 토요일 성 바오로 미키(1564-1597)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6.02.06 224
395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시다 -하느님 찬미의 축복-2016.2.5. 금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6.02.05 316
394 떠남의 여정-2016.2.4. 연중 제4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16.02.04 161
393 마음의 병病과 죄罪 -예방豫防과 치유治癒-2016.2.3. 연중 제4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16.02.03 210
392 봉헌생활의 축복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2016.2.2. 화요일 주님 봉헌 축일 프란치스코 2016.02.02 454
391 소통疏通의 천국天國 -생명의 집, 죽음의 무덤-2016.2.1. 연중 제4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6.02.01 179
390 영적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주님의 전사戰士-2016.1.31. 연중 제4주일 프란치스코 2016.01.31 240
389 믿음의 여정-믿음 예찬-2016.1.30. 연중 제3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6.01.30 159
388 내 삶의 성경聖經책 렉시오 디비나 -회심回心의 여정-2016.1.29. 연중 제3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6.01.29 239
387 비움의 여정旅程 -여백餘白의 미美, 여백의 자유自由-2016.1.28. 목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1225-1274)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6.01.28 266
386 하느님 중심의 삶-2016.1.27. 연중 제3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16.01.27 178
385 주님의 제자답게 사는 법-존재, 선물, 신神의 한 수手-2016.1.26. 화요일 성 티모데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6.01.26 479
384 회심回心과 자기발견의 여정 -자기 비움의 여정-2016.1.25. 월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프란치스코 2016.01.25 363
Board Pagination Prev 1 ...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 171 Next
/ 171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