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행복한 우리들 -주님과의 일치-2020.5.9.부활 제4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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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9.부활 제4주간 토요일                                                              사도13,44-52 요한14,7-14

 

 

 

아름답고 행복한 우리들

-주님과의 일치-

 

 

 

아름다운 시편 성무일도로 사랑의 새날을 시작한 행복한 수도자들입니다.

 

“좋으니이다 지존하신 임이여, 주님을 기려 높임이

그 이름 노래함이 좋으니이다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에는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

주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손수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

주님, 하신 일들이 얼마나 크옵시며, 생각하심 얼마나 깊으시니이까”(시편92.2-3.5-6).

 

참 사랑은, 참 행복은 아름답습니다. 바로 주님과 하나된, 하나 되기를 지향하는 분들이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닮아 참 사랑의, 참 행복의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입니다. 참 아름다운 5월 성모성월에 참 아름다운 분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지난 목요일 말씀에서 새삼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예술가들에 대해 축복을 청하고 싶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움 없이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모든 피조물들을 내리 누르는, 무엇보다 모든 남녀의 마음 속에서 표현되는 침묵의 신음을-왜냐하면 ‘사람은 하느님 앞에 거지’이기에-종종 해석해 내는 이들이 예술가들이다.”

 

깊이 들여다 보면 누구나 ‘사람은 하느님 앞에 가난한 거지(man is a beggar before God)’입니다. 이걸 깨달아야 참 겸손에 참 아름다움, 참 사랑에 참 행복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참으로 자기실현을 한 교회의 무수한 성인들입니다. 평소 복음성서를 읽을 때 마다 늘 복음의 아름다움에 ‘경탄(驚歎,敬歎)’하는데 제 평소 생각과도 일치하는 교황님의 견해가 고맙습니다.

 

어제 어버이날은 어버이날 중 제 생애 첨으로 참 아름답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몇분의 자매들로부터 꽃을 선물받았고, 24년동안 매해 어버이날이면 꽃을 가져오는 자매도 또 만났기 때문입니다. 35세때 자매가 지금은 59세가 되었으니 꼭 24년입니다. 

 

마음이 주님을 닮아 꽃보다 아름다운 분인데 꽃을 가져오다니, 가져온 꽃이 자매에 비해 참 초라해 보인 순간적인 깨달음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꽃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은 꽃이다, 죽어야 지는, 늘 피는 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어 적어 놓은 ‘꽃과 산’이라는 시입니다.

 

-“꽃이/꽃을 가져 오시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꽃보다 더 예뻐요

 

산이/산에 갈 수 있나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산보다 더 좋은/더 깊은 산이예요”-

 

참으로 주님을 닮아 하나될 때 꽃보다 더 예쁜, 산보다 더 좋고 깊은 산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아름답기로 하면 꽃중의 꽃이요 좋고 깊기로 하면 산중의 산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아름다운 시詩’같은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믿는 사람들 역시 예수님과 동시에 하느님을 반영합니다. 복음의 주님의 제자들 역시 주님을 반영하지만 깊이 깨닫지 못한 듯 합니다. 

 

바로 필립보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다음 주님 말씀이 크게 깨우침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대로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평생 주님과 함께 산다는 우리 수도자들에게 주는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참으로 우리 믿는 이들 모두를 부끄럽게 하고 분발奮發케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필립보 덕분에 이런 깊은 깨우침의 진리를 알게 되니 필립보가 고맙습니다. 역시 솔직하고 아름답고 고맙기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고백한 토마스와 흡사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더욱 주님을 알고 닮아 아름다운 제자들이 되어감을 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얼마나 아름답고 고무적인지요. 역시 아름다움 없이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음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하느님과 상호내주의 일치를 사시는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며 바로 복음서 전부가 이런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때 무엇이든 다 이루어 주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선적인 것이 주님을 사랑하여 믿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과 하나된 복음의 예수님처럼, 예수님과 하나된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주님과 하나됨으로 100% 자기실현에 이른 참 아름다운 분들입니다. 그 고난의 역경중에도 두려움 없이 참으로 담대하고 성령따라 사는 모습이 바람같이 자유롭습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은 두 제자를 통해 일하고 계심을 봅니다. 예수님처럼 다른 민족들의 빛이 된 제자들입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은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했고, 제자들을 내쫓김을 당하였지만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기쁨과 찬양, 성령 충만의 참 밝고 역동적 분위기입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우리와 하나 되고자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오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갈망하듯 주님 또한 우리를 갈망하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반영하며 참 아름답고 행복한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시편8,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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