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의 삶 -묵묵히, 한결같이 씨뿌리는 정주의 삶-2021.7.21.연중 제16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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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21.연중 제16주간 수요일                                                     탈출16,1-5.9-15 마태13,1-9

 

 

 

하늘 나라의 삶

-묵묵히, 한결같이 씨뿌리는 정주의 삶-

 

 

 

 

“하느님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안의 온갖 것도 그 이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주님 찬양하라, 

 당신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1-2)

 

오늘부터 마태복음 13장의 시작입니다. 13장 58절까지 긴 장은 전부 일곱 가지 비유들로 이루어졌습니다. 1.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2.가라지의 비유, 3.겨자씨의 비유, 4.누룩의 비유, 5.보물 비유, 6.진주 장사꾼의 비유, 7.그물의 비유 일곱입니다. 오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비유의 주체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분명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200주년 성서주석에서 마태복은 13장에 관한 아름다운 개괄적 설명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여기 일곱가지 비유는 일차적으로 하늘 나라의 성격, 곧 하느님 통치의 성격을 전하는 상징적 이야기들이다(신론적 의미). 비유는 저마다 하늘 나라의 어느 한 측면을 풍경화처럼 펼쳐 보인다. 아울러 이 비유들은 부차적으로 하늘 나라의 선포자요 구현자이신 예수님의 처신을 암시하는 상징적 이야기들이기도 하다(그리스도론적 의미).

 

예수님이야말로 어느 누구보다도 하느님 아빠를 깊이 체험하고 맑게 반사하는 분이 아니신가. 아니 자비 지극하신 임의 화신이 아니신가! 그러니 하늘 나라 비유들에는 함축적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신상발언이기도 하다.‘

 

참 적절한 설명입니다. 하늘 나라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모든 비유가 일상의 평범한 일들에서 하늘 나라에 관한 삶의 깊은 지혜를 길어 올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평생 화두가, 평생 꿈이, 평생 비전이, 평생 희망이 하늘 나라였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삶자체가 하늘 나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바로 이 생생한 하늘 나라의 꿈이 한결같은 희망과 믿음의 원천이었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 합니다. 어느 이념도 민생의 밥을 이기지 못합니다. 결국 정치도 경제의 밥으로 직결됩니다. 밥은 하늘이라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이념이 좋아도 결코 밥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밥을 이기는 꿈이, 비전이 있으니 하늘 나라의 꿈이자 비전입니다. 요즘 대선 주자들의 공통적인 결함은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지도자든 종교지도자든 우선적 자질이 신뢰와 비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늘 나라의 비전을, 즉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의 하늘 나라의 꿈을 지니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오늘 씨뿌리는 사람의 하늘 나라 비유가 참 아름답고 심오합니다. 바로 씨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은 물론 참 농부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는, 이런 한결같은 끝없는 인내와 기다림의 자세는 하느님께 대한 철두철미한 신뢰와 희망, 사랑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야 말로 말그대로 신망애信望愛의 예수님이자 그를 따르는 참 제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절망은 없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

그리고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는 사람들"입니다.-

 

묵묵히 한결같이 씨뿌리는 사람, 전혀 불평이나 불만이 없어 보입니다.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면서 딱히 요구하는 바도 없이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묵묵히 책임을 다할 뿐입니다. ‘1.회피하지 않는 것, 2.요구하지 않는 것’ 참된 영성의 표지입니다. 바로 이런 진실하고 성실하고 충실한 삶자체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 과정 자체가 성공입니다. 결과보다는 삶전체의 과정을 중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이런 삶 자체가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수도 정주 영성이 목표로 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씨뿌리는 사람은 그대로 우리 정주 수도승의 이상적 모습입니다. 어제의 깨달음을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강론 서두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수도공동체입니다. 제 가장 가까이 있는, 제 평생 몸담고 살아가는, 제 평생 보고 배워야 할 가장 큰 스승인 수도공동체입니다. 수도공동체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새벽 강론 쓰기를 마친 후, 산책기도중 벼락같은 깨달음의 고백입니다. ‘내 가장 큰 스승은 내 몸담고 살아가는 수도공동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여 이 말마디로 강론 제목을 삼았고, 게시판에 써서 붙여 놨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스승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를 통해 은연중 드러나는 파스카의 예수님이요, 우리의 일상의 삶 전체가 스승이 됩니다. 형제들의 좋은 점을 다 모아 놓으면 바로 예수님의 얼굴, 예수님의 마음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서 느끼는 감정 둘은 ‘감사’와 ‘부끄러움’입니다. 공동체를 보면 감사요 자신을 보면 부끄러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렉시오 디비나 할 책은 하루하루 ‘내 삶의 책 성서’입니다.

 

삶은, 마음은 날씨와 같습니다. 한결같지 않습니다. 이에 관계없이 일체의 원망怨望, 절망絶望, 실망失望의 삼망三望없이 씨뿌리는 사람의 한곁같은 삶의 자세로 살면, 바로 이것이 하늘 나라의 실현입니다. 하느님께 날로 희망의 뿌리를, 신뢰의 뿌리를 내리며 견뎌내고 버텨내는 끝없는 기다림의 인내가 있을 때 가능한 삶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참으로 상황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깊고, 넓고, 긴’ 하느님의 시야가 필요합니다. 단기적으로 볼 때 실패인 듯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성공인생입니다. 살다 보면 최선을 다해도 길바닥 같은 상황도, 돌밭같은 상황도, 가시덤불 같은 상황의 실패도 있지만 궁극에는 좋은 땅의 성공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진인사대천명,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의 처분에 맡기는 삶, 실패인 듯 하나 결국 성공의 삶이니 깊이 경청하여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묵묵히 씨뿌리는 삶에 항구했던 우리 수도공동체 정주의 삶은 세상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숱한 열매들로 익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런 하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희망과 신뢰의 사람은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런 삶과는 너무 대조적인 탈출기의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대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온갖 시중을 다드는 참 부지런하고 참을성 많으시고 착한 하느님이요 그의 종 모세입니다. 무엇보다 영혼에 치명적인 것이 ‘무지無知의 병’에 이은 ‘망각忘却의 병’입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셨던 하느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까맣게 잊고 당장의 곤궁한 현실에 원망과 불평을 하느님과 모세에게 쏟아 놓고 과거의 이집트 노예 생활을 그리워하는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들의 하느님께 대한 희망과 신뢰는 얼마나 허약한지요!

 

베네딕도 성인이 가장 혐오한 것이 공동체 형제들의 불평이었습니다. 무려 투덜거리며 불평하지 말라는 말(murmuratio)이 규칙서에 11회 나옵니다. 규칙서 제40장 ‘음료의 분량에 대하여’라는 항목의 결론은 다음 짧은 말마디로 끝납니다. “무엇보다도 이점을 권하는 바이니, 불평함이 없도록 할 것이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예수님의 자화상이자 우리 정주 수도승의 자화상입니다.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결같이 묵묵히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책임을 다하는 자세요 더불어 실현되는 하늘 나라의 꿈입니다. 매일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이 씨뿌리는 정주의 삶, 하늘 나라의 삶을 잘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은 죽음에서 내 생명 구하여 내시고

은총과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

한 평생을 복으로 채워 주시니,

내 청춘 독수리마냥 새로워지도다.”(시편103,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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