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부활의 희망-2021.8.30.연중 제22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30,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8.30.연중 제22주간 월요일                                                            1테살4,13-18 루카4,16-30

 

 

 

주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부활의 희망-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시편42,2-3).

 

 

아침 시편 성무일도중 마음에 와닿은 성구들입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 보이는 희망의 별들입니다. 인터넷을 열어보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아프카니스탄을 위해 기도와 단식을 요청하다”란 기사가 교황님 홈페이지에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교황님 역시 이 시대 희망의 별입니다. 또 오마이뉴스에 “여든 살에도 하루 4시간 작업, 건강의 비결은 대패질-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0호 최태순 악기장; 혼 불어 넣은 현악기, 모두의 심금을 울리다”라는 기사에 나오는 주인공 역시 희망의 별입니다. 아니 참으로 믿는 이들 모두가 주님의 무형 문화재 희망의 별들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새벽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눈에 띄었습니다. 희망의 별, 주님의 별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문득 예전 24년전 써놓고 애송했던 별이란 시가 별처럼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별이 되고 싶은 심정에서 쓴 시입니다. 당신은 주님은 물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지칭합니다.

 

-“그리움이 깊어지면

병이 된다 하지만

당신 향한 내 그리움은

기도가 되고 별이 됩니다

 

당신 

영혼의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어

수호천사 별이 되어

언제나 당신을 비출 것입니다”-1997.4

 

어제는 보이는 삶의 필수 요소 ‘의식주-옷밥집’을 넘어 보이지 않는 궁극의 ‘의식주-그리스도의 옷, 그리스도 말씀의 밥, 하느님의 집’에 대한 묵상의 강론을 나눴고, 어느 자매님과 이에 대해 나눈 카톡 메시지 전문을 나눕니다.

 

-“신부님!

저는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의상실을 경영했고, 45세 10월부터 60세 초반까지 음식점을 경영했어요. 61세부터 현재까지 주거 임대를 하고 있습니다. 의식주 순서대로 제 주어진 삶을 가고 있는데 음식 만드는 일이 가장 즐거움이고 보람 되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 강론 말씀으로 힘을 얻어 일어나 열정적으로! 수도원길, 하늘길, 희망의 길에 서 있습니다.”

 

제 강론이 자매님에겐 주님의 별, 희망의 별이 됐음이 분명합니다. 이 아름다운 자매님 역시 주님의 별, 희망의 별처럼 생각됩니다. 즉시 하느님의 집, 아름다운 수도원 성전과 더불어 보낸 답글입니다.

 

“수도원 성전, 하느님의 집 선물합니다!

그렇네요! ‘의-식-주’ 삶의 여정이었네요! 이제부터 진짜 그리스도를 입고, 그리스도 말씀의 밥을 잡수시고, 하느님 집에서 평화로이 사세요! 내 몸담고 살아가는 집이 바로 하느님의 집이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참으로 진짜 궁극의 영원한 희망, 희망의 별입니다. 바로 오늘 공생애 출발점의 시점에서 회당에서 성령이 충만하여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며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는 모습은 그대로 희망의 주님, 희망의 별처럼 느껴집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를 회심시킨 말씀처럼 예수님의 오도송悟道頌과도 같고 출사표出師表와도 같은 이사야서 말씀입니다. 우리 또한 모두 주님의 종이 되어 당신의 희망에 참여시키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4,18-19;이사61,1-2)

 

얼마나 좋습니까! 무지와 허무에 눈먼, 노예살이하는 사람들에게 답이 되는 구원의 말씀입니다. 주님이야 말로 영원한 희망의 별, 구원의 별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이런 주님을 만나 참으로 자유로워지는 우리들이요, 우리 또한 주님의 별, 희망의 별, 구원의 별, 주님의 종이 되어 주님과 함께 세상에 파견되니 새삼 힘이 샘솟는 느낌입니다. 언젠가가 아닌 오늘 말씀을 든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해방이요 구원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4,21).

 

그러나 우리와 달리 복음의 나자렛 고향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은 그대로 이들은 물론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참으로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의 무지가 주님을 아는데 얼마나 결정적 장애가 되는 지 깨닫습니다. 하여 주님의 은혜는 당신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었던 이방인들인 엘리야 때 사렙타의 과부같은, 엘리사 때의 시리아 사람 나아만같은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을 예고하였고 그 결과 우리가 주님의 혜택惠澤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주님의 길을, 주님을 따라 희망의 별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을 막지 못함은 이어지는 내용이 웅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회개는 커녕 화가 잔뜩 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표표漂漂히, 유유悠悠히 미련없이 떠나시니 이 또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기적입니다. 이 또한 세상 한 복판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될 우리에게는 무한한 위로와 격려가, 힘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궁극의 참 희망이십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자는 결코 절망의 유혹에, 수렁에, 심연에 빠지지 않습니다. 유유히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마지막 죽음에서도 자유롭습니다. 바로 주님 부활의 희망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은 바오로 사도를 통해 당신의 재림에서 부활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희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처럼 죽음에 슬퍼하지 말라 하시며 다음 같은 격려 말씀을 주십니다.

 

“이와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 가실 것입니다.---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살아서는 ‘주님 안에서’. 죽어 부활하여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될 우리들의 복된 운명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도 우리의 용기를 더욱 북돋우며 부활하신 주님께 희망을 두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1코린15,14.17-20)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주님 희망의 별들인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부활의 희망을 깊이 심어 주십니다.

 

 

“주님께 바라는 너희가 모두,

 굳세게 굳세게 마음들을 가져라.”(시편31,25). 아멘.

 

 

 


Articles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