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우리 삶의 중심은 하느님이시다-2022.1.6.주님 공현 대축일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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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6.주님 공현 대축일 목요일                                                           1요한4,19-5,4 루카4,14-22ㄱ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우리 삶의 중심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우리 삶의 중심은 하느님이시다”

 

잠깨자 저절로 떠오른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God is Love’, 영어 말마디의 느낌도 산뜻합니다. 더불어 떠오른 수도원 초창기 플라스틱 세수 대야 바닥에 쓰여져 있던 영어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Life is Beautiful’, ‘삶은 아름다워라’, 이 영어 말마디 역시 산뜻한 느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아 사랑 수행에 전념할 때 아름다운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라는 옛 대중가요 가사도 있듯이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잠깨어 문밖을 나서면 맨먼저 바라보는,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늘 거기 그 자리’의 밤하늘의 북두칠성과 불암산입니다. 북두칠성의 나이는 평균 5억년(태양은 50억년), 거리는 평균 빛의 속도로 80광년이라 하니 인류가 있기전 아득한 옛날에 생겼음을 깨닫습니다. 아마 불암산 역사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옛날일 것입니다. 이들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참으로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분이시겠고, 이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덧없는, 유한有限한 곧 사라질 점點같은 존재인지요!

 

나이에 관계 없이 영원하신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신망애信望愛의 영혼은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어제도 이런 60대 노년의 묵동 성당 '복되신 모후' 레지오 팀(1974.10 창립) 자매 네 분이 저를 찾았습니다. 매해 한번씩 꼭 찾는 분들입니다. 제 대표적 기도문 ‘1.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와 ‘2.행복기도’를 읽기를 청했고 두 분 자매는 ‘1.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읽는 도중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습니다. 

 

이어 요즘 즐겨 바치는 세 번째 대표 기도문인 ‘3. 2022년 새해 소원’이라는 기도문도 함께 읽은 후, 휴대폰에 하늘과 불암산의 수도원 로고도 붙여드리고, ‘기도하고 일하라’는 수도회 모토도 설명해 드리고, 십자가 고상 밑에서 사진을 찍어 드리니 모두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어 성전에서 수사님들과 함께 낮기도후 떠나니 제 마음 역시 흡족했습니다.

 

마음 같에서는 ‘2022년 새해 소원’이라는 기도를 또 인용하고 싶지만, 너무 자주 인용했고 또 길어 생략하지만, 늘 읽어도 새롭고 좋기에 아마 언젠가 적절하다 싶으면 인용할까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적 사랑 체험이 하느님 체험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사랑을 체험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계속되는 요한 1서의 사랑 예찬禮讚이 참 기분 좋습니다. 말씀이 너무 평이하고 간명하며 공감이 갑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마음을 감동케 하는 만고불변의 진리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하느님 사랑의 진위는 이웃 형제 사랑으로 검증됩니다. 하느님 사랑은 저절로 이웃 형제 사랑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사실 형제사랑을 통하지 않고 하느님 사랑으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형제 사랑 없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신비주의가 있다면 거짓이요 환상이자 착각일뿐입니다. 이래서 형제애의 교회공동체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하느님 사랑 체험의 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이들의 인생은 모두 죽어야 졸업인 ‘사랑의 학교’에 평생 재학중인 학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말씀을 통해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전광석화, 벼락같이 깨달은 예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불가의 오도송悟道頌과 같은 깨달음의 말씀 같고, 삼국지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 같은 이사야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을 깨달으므로 자기의 신원을 새롭게 발견한 것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은 사랑이심이 환히 드러나는 이사야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1.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2.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3.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4.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5.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날도 여전히 현실성을 띠는 우리를 격발激發케 하는 감동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오늘 미사를 통해 흡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참으로 우리를 온갖 내외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시어 복음 선포의 일꾼이자 영적 승리의 전사로 세상에 파견하시는 주님같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이겨놓은 영적 전쟁의 승리에 참여하는 우리들입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분명히 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온갖 압제의 시스템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이 구원받은 존재로서 예수님과 함께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싸워 이기는 영적전쟁이 아니라 이미 이겨 놓은 주님의 영적승리에 참여하는 우리들입니다. 요한복음의 다음 말씀에서 이를 확인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요한 사가의 오늘 제1독서 마지막 말씀도 우리의 사기를 충천케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비결은 형제애의 실천과 하느님 믿음에 있음을 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하느님의 자녀들인 형제 사랑은 전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말 그대로 형제애의 실천을 통한 사랑의 승리, 믿음의 승리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 자유롭게 해방시키시어 당신 복음 선포의 일꾼으로, 영적 승리의 용사勇士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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