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소원, 삶의 궁극 목표 -완전한 사람, 성인聖人이 되는 것-2022.6.14.연중 제11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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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14.연중 제11주간 화요일                                                            1열왕21,17-29 마태5,43-48

 

 

 

주님의 소원, 삶의 궁극 목표

-완전한 사람, 성인聖人이 되는 것-

 

 

 

"내 영혼은 밤에도 당신을 사모하오며,

 아침에도 당신을 그리나이다."(이사26,9ㄱ).

 

사소한 일 같지만 저에겐 새삼스런 깨달음입니다. 어제 6월13일 어머니 17주기 기일을 맞이하여 어머니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그동안 가뭄으로 묘지위에 잔디가 죽어가고 있었고 유난히 푸른 잡초가 있어 뽑아보니 10cn 이상의 긴 뿌리였습니다. 영혼도 그냥 방치하면 깊이 뿌리내린 잡초같은 죄들로 가득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어 세탁에도 잘 빠지지 않는 얼룩이 특별한 세탁으로 말끔히 빠진 깨끗한 옷을 보면서도 회개가 없는 영혼은 완전히 죄에 쩔은 얼룩으로 가득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얼룩진 옷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입었던 것은 내심 마음이 깨끗하다 자부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느님은 겉이 아닌 속 마음을 보십니다.

 

언젠가 수도형제의 평범한 두 답변도 잊지 못합니다. 너무 완벽한 처사에 우려를 표명하자,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다려 봅시다.”라는 답변에 내심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하느님이 심판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아니 자신이 심판을 자초한 것이지요. 열사람이 완벽하게 지켜도 한 사람의 도둑을 막지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개입은 이렇습니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노자 도덕경 73장에 나오는 말마디가 자주 생각나곤 합니다. 하늘의 그물이 크고 성긴 듯 하지만 결코 빠트리는 법이 없다는 뜻으로,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죄를 벌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란 말입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란 말마디도 같은 믿음의 표현들입니다. 아무도 하느님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하느님 앞에 완전 범죄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두가 맞이하는 죽음 앞에서 그가 하느님 그물망에 걸려 있음을, 그 누구도 하느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음을 봅니다.

 

바로 어제 제1독서에서 우리는 무죄한 나봇의 감쪽같은 죽음을 봤습니다. 이제벨과 아합의 완전 공모共謀로 인한 쥐도 새도 모르는 완전 범죄였지만 하늘의 그물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오늘 계속되는 제1독서에서 예언자 엘리야가 등장하여 아합을 만나 미구에 있을 하느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을 전합니다.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개들이 나봇을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엘리야의 호된 질책에 급기야 아합은 뉘우쳤고, 잠시 죄에 대한 응보가 유보됩니다만 후대에 있을 것이 예고됩니다.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참 섬찟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심판은 엄중합니다. 하느님은 결코 무골호인無骨好人같은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에게서 이런 정의의 관점을 놓쳐서는 절대 안됩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고 정의로우신 분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가 하느님의 정의를 가르친다면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가르칩니다. 

 

이래서 통절한 회개와 더불어 자비하신 하느님께 향하게 됩니다. 정의를 유린하는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함을, 끊임없이 하느님 자비를 배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착하게 잘 산 부모들의 은덕恩德은 후손에도 영향을 미치니 이 또한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5,48)

 

오늘 복음은 여섯 대당 명제중 마지막 여섯 번째 “원수를 사랑하여라”입니다. 참고로 앞의 다섯 대당명제는 “1.성내지 말라, 2.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3.아내를 소박하지 마라, 4.맹세하지 마라, 5.보복하지 마라.”입니다. 바로 “6.원수사랑”과 더불어 여섯 대당명제 전체의 결론이 되는 말씀이 윗 마태5장 48절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율사와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우리의 진짜 의로움이요 주님의 소원이자 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입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비슷해지다가 죽음 앞에서는 똑같아집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도 공부 적게 한 사람도, 재산 많은 사람도 재산 없는 사람도, 예쁜 사람도 예쁘지 않은 사람도 다 똑같아 집니다.

 

“저 박사예요.”, “저 대학 영문과 나왔어요.” 평범해 보이는 어느 자매의 말도 생각납니다. 삶에 묻혀 보이지 않으니 환기시키려는 의도같았습니다. 제가 볼 때는 모두가 같았습니다. 페인트 칠한 것이 벗겨졌을 때 보이는 것과 흡사한 이치입니다. 차이는 얼마나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주님을 닮은 참된 고결한 삶을 살았느냐에서 결정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하느님을 닮아 훌륭한 삶을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서 인품의 향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대로 예수님의 체험적 고백처럼 들립니다. 바로 예수님 한 분 만이 이렇게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삶, 자비로운 삶,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완전성을 닮는 일은 그대로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인 예수님을 닮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회개의 여정은 그대로 예수님을 닮아가므로 하느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 하담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점차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지혜로운 빛의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저절로가 아닌 살아 있는 그날까지 “분투의 노력”을 다한 여정이요 이런 노력과 함께 가는 은총입니다. 수도생활에서 참으로 강조되는 것이 노력努力입니다.

 

여기서 완전함이란 온전함이요, “온전함wholeness”이 “거룩함holiness”입니다. 재미있는 것이 영어 발음은 거의 구분이 안됩니다. 이론적 완전함이 아니라 실천적 완전함이자 온전함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완전함이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닮은 완전함이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아니라 모두를 사랑하는, 자기 형제들에게만이 아닌 모두에게 인사하는 끼리끼리 유융상종의 사랑을 넘어 모두를 사랑하는 보편적 사랑, 아가페 사랑을 할 때의 완전함입니다. 

 

참으로 호오好惡, 우열優劣과 무관한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연민과 사랑, 존중과 배려입니다. 사실 사람은 그 누구든 깊이 들여다 보면 그만의 사정을 지닌 자기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참으로 너나할 것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측은하고 가엾고 불쌍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주님은 무조건 아가페 사랑을 명하십니다.

 

참으로 어쩔수 없는 운명처럼 타고난 것도 많습니다. 타고난 얼굴이 변변치 못하다 생각되어 그 위험한 성형 수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참 딱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타고난 것들이 참 무궁무진 끝이 없어 잘못 타고났다 절망하면 바로 이것이 지옥입니다. 

 

타고난 것도 많지만 용감하게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널려 있습니다. 몇날이 아닌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사랑을, 기쁨을, 희망을, 생명을, 빛을, 감사를,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요 한마디로 주님을 선택하여 사는 것입니다. 성인이, 훌륭한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여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청정욕淸淨慾은 언제든 좋고 응답을 받습니다. 이래서 분투의 노력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궁극의 목적이자 보람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면담성사시 드리는 당부는 단 하나 “성인聖人이 되십시오.”라는 말마디입니다.

 

그러니 누가 알아주든 말든 보아주든 말든 제 삶의 꽃자리에서 이런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참기쁨도 참행복도 이런 아가페 사랑의 실천에 있습니다. 이런 삶이라면 무지로 인한 죄악의 유혹은 어림없을 것이고 죄악도 도저히 그 영혼에 뿌리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학교에서 우리는 영원한 초보자初步者일뿐이요, 죽는 그날까지 사랑을 배워야하는 사랑의 평생학인平生學人일뿐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를 북돋아 주시어 이런 아가페 사랑 실천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느님, 우리에게 강복하소서,

 천하 만방이 당신을 두리게 하소서."(시편67,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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