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리더십 -비움, 낮춤, 순종, 섬김- ​​​​​​​2022.7.25.월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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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25.월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4,7-15 마태20,20-28

 

 

예수님의 리더십

-비움, 낮춤, 순종, 섬김-

 

 

“눈물로 씨뿌리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이다.”(시편127,5)

 

엊그제부터 어제까지 양일간은 저에게 참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7.23-24일 양일간 왜관 수도원 봉헌회 서울지구 종신봉헌회원 50명의 피정지도를 장충동 수도원에서 가졌기 때문입니다. 2014년 안식년때 머물렀던 안식처였고 40년전 1982년 수도원 입회후 여기에 살면서 3년간 서강대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장충동 수도원에서의 인연은 만40년전 제 나이 34세였고 지금은 74세가 되었습니다. 참 감개무량했습니다. 피정강의 내용은 “수도전통에 바탕한 체험적 고백의 강의”란 주제였고, 마지막에는 산티아고 순례 여정후 탄생한 “희망의 여정”이란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산티아고, 바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입니다.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셋중 하나인 성 야고보 축일이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성 야고보가 묻혔다는 지역은 ‘산티아고 데 콤프스텔라’로 세계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찾는 순례길로 ‘별들의 들판의 성 야고보“라는 뜻입니다. 성 야고보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이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별빛이 비치는 들판을 따라 걸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지금서야 알게 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의 유래입니다. 아, 그러니까 저는 지금도 여전히 별빛이 비치는 인생 광야 들판을 순례중인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별빛의 인도하에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났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축일은 지내는 성 야고보를 기억하니 새삼 제 수도생활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던 산티아고 순례 여정이 생각나 강론 서두에 길게 인용했습니다. 이후 참 많이 강론 주제로 인용됐고, 인용되고 있으며, 인용될 주제가 삶의 여정旅程입니다. 1.목표, 2.이정표, 3.도반, 4.기도로 요약되는 우리 믿는 이들의 평생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보고 배운다”라는 귀한 진리를 자주 체험하곤 합니다. 아무리 혼탁한 세상이라도 반듯한 부모밑에서의 아이들 역시 보고 배워 반듯한 자녀들이 됨을 봅니다. 참으로 중요한 가르침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삶의 모범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감동적인 삶을 그대로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비움, 낮춤, 순종, 섬김으로 요약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다음 그리스도 찬가가 예수님의 삶을 요약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라는 권고와 더불어 시작되는 참으로 감동적인 그리스도 찬가의 전반부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2,6-8)

 

바로 이런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도 환히 드러납니다. 제자들이 보고 배운 모습이 이런 비움과 낮춤, 순종과 섬김으로 일관된 예수님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공동체 역시 문제가 많았던 공동체였음이 분명합니다. 오늘 야고보와 요한 형제 문제로 공동체가 내적분열의 조짐이 보이자 예수님은 즉시 개입하여 기민하게 진화하십니다. 세상 통치자들이나 고관들처럼 군림하거나 세도를 부려서는 안되고 서로 섬길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6-28)

 

바로 여기 근거한 같은 어원의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입니다. 제 서품상본의 성구(마르10,45)도 이와같은 섬김의 내용이고, 고 이형우 아빠스 문장의 사목표어도 “서로 섬기라(SERVIAMUS INVICEM)”라는 성규 말씀이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비움과 낮춤, 순종과 섬김의 삶에 항구할 수 있을까요. 답은 단 하나,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한결같은 열렬한 사랑입니다. 참으로 사랑할 때 닮습니다. 비움과 낮춤의 빈자리에 가득한 주님의 성령, 생명과 사랑입니다. 바로 질그릇같은 허약한 존재안에 보물처럼 선물로 주어진 예수님 생명이, 사랑이, 성령이 섬김의 삶에 항구한, 백절불굴의 삶으로 변화시킵니다. 바로 그 모범인 바오로 사도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사랑의 기적입니다. 진정 믿는 이들의 힘은 이런 것입니다. 사도들이, 성인들이 순교하기 까지 주님이자 스승이신 주님을 닮아 비움과 낮춤, 순종과 섬김에 항구할 수 있었던 결정적 비결도 바로 여기 있음을 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야고보 사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새삼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순교, 사랑의 성체입니다.

 

저에게 산티아고 순례는 지금도 여전히 일상의 삶중에 계속중입니다. 산티아고, 성 야보와 함께 살아있는 그날까지 주님을 따라 “비움과 낮춤, 순종과 섬김의 여정”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당신의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채워 주시어 이런 삶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뿌릴 씨를 가지고 울며 가던 그들은,

곡식단 들고 올 제 춤추며 돌아오리이다.”(시편126,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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