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성모 마리아의 사랑의 성덕(聖德) -침묵, 경청, 순종-2023.12.20. 수요일 12월20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0,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3.12.20. 수요일 12월20일                                                             이사7,10-14 루카1,26-38

 

 

동정 성모 마리아의 사랑의 성덕(聖德)

-침묵, 경청, 순종-

 

 

“오! 다윗의 열쇠여, 

이스라엘 집안의 홀이시여, 

주께서 여시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닫으시면 아무도 열지 못하오니,

오시어 죽음의 땅과 어둠속에 앉아있는 

우리를 결박에서 풀어 주소서.”

 

어제에 이어 주님께서 오심을 애절히 청원하는 대림 2부 넷째날 12월20일, “오 다윗의 열쇠여”로 시작되는 “오! 후렴”입니다. 이런 희망의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대림시기입니다. 비단 대림시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생애가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기쁨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동정 성모 마리아입니다. 역시 희망과 꿈의 마리아 성모님의 태몽입니다. 참으로 순수했던 옛 어머니들은 태몽도 많았는데 요즘의 어머니들에게는 태몽도 사라진 듯 합니다. 얼마전 자매들 피정지도때 부른 성모님 은혜 노래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소녀들처럼 익숙한 노래인 듯 부르는 모습이 성모님처럼 참 아름다웠습니다. 

 

매일 제가 배밭사이를 산책할 때 마다 성가처럼 부르는 성모님 은혜입니다. 어머니 은혜를 성모님 은혜로 바꿔 부르는 노래로 벌써 강론에 인용하기 수차례이지만 부를 때마다 새롭습니다. 육신의 어머니는 떠났어도 영신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 성모님은 영원합니다. 

 

“높고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나는 높은게 또 하나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성모님 은혜, 

푸른하늘 저보다도 높은것 같애.

 

넓고넓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넓은게 또 하나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성모님 은혜, 

푸른바다 저보다도 넓은 것 같애.”

 

가톨릭 교회도 교리서에서 교회의 어머니이자 어머니인 교회로서 동정 마리아의 복된 신원을 분명히 밝힙니다. 

 

“마리아는 교회의 전형이며, 어머니로서 또 동정녀로서 모범을 보여주신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받아들여 그 자신도 어머니가 된다. 실제로 교회는 복음선포와 세례로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느님에게서 난 자녀들을 불멸의 새생명으로 낳는다. 교회는 또한 신랑에게 바친 믿음을 온전하고 깨끗하게 지키는 동정녀이다.”(교리서507항)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서에서도 동정녀를 통해 탄생될 임마누엘 예수님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대림시기 오늘 복음을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과연 눈밝으신 하느님께서 선택한 동정 마리아 성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평생 모시고 살면서 보고 배울점은 무엇인지 오늘 복음에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첫째, 침묵입니다.

사랑의 침묵입니다. 침묵은 개방입니다. 침묵은 깨어 있음입니다. 침묵은 주님의 살아 있는 현존이자 관상입니다. 침묵은 현대인들에게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 일찍이 토마스 머튼은 갈파했습니다. 침묵을 잃어 날로 천박(淺薄)해지는, 즉 얕고 엷어져가는 영성입니다. 새삼 침묵의 선택, 침묵의 훈련, 침묵의 습관을 통한 영성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사막에서 하느님을 찾았던 옛 구도자들은 한결같이 침묵과 고독을 사랑했습니다. 

 

갈릴래아 나자렛 벽지에서 살았던 무명의 마리아, 얼마나 깊은 침묵과 관상의 사람이었는지 눈밝은 하느님께서는 당신 천사를 통해 친히 찾아 나섭니다. 하느님의 겸손한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참으로 침묵의 사람에게는 그 어디나 꽃자리, 나자렛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심지어 하느님도 탓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 성모님처럼 늘 깨어 침묵중에 준비되어 있으면 주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친히 방문하십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제가 고백성사시 보속으로 참 많이 써드리는 말씀 처방전 내용입니다. 이 처방전을 받았을 때 “보속이 아니라 보석입니다.” 기뻐 환호하던 어느 수녀님도 오늘 복음 강론때 마다 자주 인용하곤 합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분” 

 

마리아 성모님뿐 아니라 참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 신자들 모두의 복된 신원입니다. 기쁨의 샘이신 임마누엘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놀랐지만 즉시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동정 마리아 성모님은 과연 관상의 대가, 렉시오디비나의 대가입니다.침묵의 관상중에 이런 깨달음을 깊이 내면화하는 동정 마리아 성모님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동정 마리아의 아름다운 침묵의 관상에 감동하신 하느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그 감동의 기쁨을 거듭 표현하며 예수님 탄생을 예고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둘째, 경청입니다.

사랑의 경청입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이요 겸손의 표지가 경청입니다. 잘 듣는 경청은 대화나 기도시 우선적이자 기본적 필수요소입니다. 새삼 경청 역시 선택이자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영성생활에 참 중요한 경청의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상담시도 조언이나 충고보다 잘 듣고 공감하며 위로와 격려하는 일이 절대적입니다. 

 

침묵의 사람이자 경청의 사람, 동정 마리아에 대한 주님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 주님은 요셉에게 그랬듯이 마리아에게도 은밀한 비밀을, 당신 속내를 밝히십니다. 참으로 경청할 때 감정적 ‘반응reaction’이 아닌 인격적 ‘응답respondence’의 대화가 펼쳐집니다. 두분간의 깊은 주고 받는 관상적 대화인 기도가 펼쳐집니다. 주님의 천사의 최종적 응답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셋째, 순종입니다.

사랑의 순종, 믿음의 순종입니다. 자발적 사랑의 순종은 영성의 잣대입니다. 참 영성의 진위를 검증하는 잣대가 순종입니다. 정말 성숙한 사람이 순종합니다. 이래서 순종이 여정이요, 저물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순종으로 여물어가는 여정인 것입니다. 새삼 순종 역시 선택이자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참 중요한 영성훈련이 순종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말그대로 예스(yes)의 사람, 순종의 사람, 믿음의 사람, 동정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평생을 한결같이 이렇게 사셨습니다. 자발적 사랑의 순종에 하느님의 기쁨도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요 이보다 크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래서 순종 역시 하느님의 일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의 크고 작은 순종에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충실할 때 마지막 순종의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어머니는 떠났어도 영혼의 어머니 마리아 성모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성모님을 통해,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끊임없이 낳으시고 기르시며, 참사람이 되라 이르십니다. 참으로 평생 배워 훈련하여 습관해야 할 침묵, 경청, 순종의 사랑의 성덕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한결같이 영적으로 낳으시고 기르시며, 참사람이 되라 이르십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시편24,3-4ㄱㄴ). 아멘.

 


Articles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