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의 한 수手 -명국名局 인생-2015.9.26.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6,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5.9.26.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즈카2,5-9.14-14ㄷ 루카9,43ㄴ-45


                                                                                     신神의 한 수手

                                                                                    -명국名局 인생-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요 겸손이요 지혜입니다. 때가 될 때까지 충실히 항구히 노력하며 내공을 쌓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기다림 속에 ‘신의 한 수’ 같은 처방도 나옵니다. 어제는 제 지난 삶의 역사를 묵상 하던 중 늦게서야 많은 경우 ‘아, 신의 한 수였구나!’ 깨닫고 기뻤습니다. 제 삶뿐 아니라 요셉수도원의 역사 중에도 참 많은 ‘신의 한 수’가 있었음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신의 한 수’란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바둑에서 난국에서 벗어나 승리로 이끈 아무도 예상 못한 기상 천외의 한 수를 일컫지만 우리 삶을 바둑에 견줬을 때 간혹 신의 한 수 같은 조치에 자신이 생각해도 놀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당대 바둑 고수들의 명국을 보면 한 수, 한 수가 신의 한 수 같아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예언자들, 성인들의 삶을 보면 신의 한 수들로 가득한 정말 명국 인생이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신의 한 수,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대로 하느님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예언자들, 성인들 모두가 그 당대 그 환경에서 신의 한 수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 요셉수도원의 12형제들 역시 신의 한 수 같은 존재들입니다.


 어제는 아침 산책중 호박꽃 무수히 폈던 자리, 호박잎들을 제치고 보니 큰 호박이 숨어 있어, 사진을 찍어 ‘호박의 내공!’이란 제목을 붙여 여러 지인들과 카톡을 통해 나눴습니다. 잘자란 호박은 늘 봐도 좋고 편안합니다. 호박같은 후덕한 인품의 사람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저절로 ‘호박의 내공’이 아니라 봄, 여름의 시련을 내내 잘 견뎌냈기에 가을의 때가 되어 이런 내공의 열매이듯, 때가 됐을 때 ‘신의 한 수’ 같은 처방도 나옵니다. 


내적체험과 내적변화 역시 때가 있습니다. 며칠전 읽은 어느 저명한 부부상담가의 체험담의 고백에 공감했습니다. 부모들에 대한 충고이지만 비단 부모들뿐 아니라 공동생활을 하며 내적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싶어 나눕니다.


-수많은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임상적으로 100% 확신하는 명제가 있다.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살길을 찾아 떠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의식이 갖고 있는 근원적 건강성 내지 균형성이다.- 우리식으로 말해 하느님 주신 천성天性입니다.


-“도움대 간섭은 어떤 비율로 하는 것이 이상적인가요?”라고 묻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즉시 ‘10대0’이라고 말씀드렸다. 도움은 충분히 주되 간섭은 전혀 하지 말라는 얘기다.-바로 이것이 우리 믿는 이들이 말하는 끝까지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10대0’으로 도움만 주고 개입하지 않으면서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견디는 것, 나아가 왜 그래야 하는지 끊임없이 깨달아가면서 견디는 것이 부모가 실천해야 할 핵심 사항이다.- 부모만이 아니라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이처럼 '인내의 대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인내 역시 믿음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 부부도 늘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리며 견뎠다. 부모가 견딘다는 건, 비유컨대 100만 평쯤 되는 넓은 목장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일인 것 같다. 부모, 자식간의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부모가 일단 편안해져야 한다.- 분도 성인역시 그의 규칙에서 그의 수도승들에게 ‘형제들의 약점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충고하십니다.


바로 하느님의 인내와 넓이를 닮으라는 것입니다. 새삼 항구한 기다림의 인내에 끊임없는 기도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언젠가 갑자기가 아닌, 부단한 내공의 인내와 노력의 결과에 하느님의 은총이 더해질 때 일어나는 내적체험이요 내적변화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즈카르야 예언자의 환시체험은 제가 볼 때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즈카르야 예언자가 부단한 인내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은 결과에 따른 신의 한 수 같은 응답입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요 마침내 파스카 주님의 미사은총으로 실현된 예언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예루살렘은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딸 시온은 우리 모두를 상징합니다. 이런 놀라운 내적환시체험에 저절로 따라오는 내적변화입니다. 이런 체험을 한 후로의 즈카르야는 옛 즈카르야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요셉수도원 공동체 형제들 역시 무수한 내적체험을 통한 내적변화에 이미 옛 모습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 제자들 역시 잊지 못할 체험일 것입니다만 더 큰 숙제가 주어집니다. 주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요, 이 또한 제가 볼 때는 제자들에게 주는 주님의 '신의 한 수' 같은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우리라도 이 이상의 반응뿐이 없을 것입니다. 아직 제자들의 실력이, 내공이 부족하기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할 때까지는 기다릴 수뿐이 없습니다. 그 깨달음의 때를 준비하라 미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필생의 숙제를 부과하십니다.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파스카 주님의 내적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을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내적변화요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의 내적체험에 따른 내적변화에 매일의 미사 수행보다 더 좋은 수행도 없습니다. 파스카의 주님은 하느님이 인류에게 주신 '신의 영원한 한 수'입니다. 주님의 넘치는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신의 한 수’들로 이루어진 명국인생을 살게 합니다.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예레31,10ㄹ). 아멘.


Articles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