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치유 -참 사람이 됩시다-2020.3.16. 사순 제3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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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16. 사순 제3주간 월요일                                                   2열왕5,1-15ㄷ 루카4,24ㄴ-30

 

 

 

 무지의 치유

-참 사람이 됩시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올해 사순시기가 참 각별히 생각됩니다. 인류의 무지와 탐욕, 교만을 경각警覺케 하는 하느님의 충격적 교육같습니다. 회개하여 겸손을 회복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물결’을 바꿔놓은 질병들이라는 신문 말마디와 더불어 새벽에 받아 본 어느 자매의 메시지가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사순절 특별 보너스로 알아 절제, 보속, 희생등 많은 것을 성찰했습니다. 한달동안 나가지 않고 기도, 기억 봉헌드립니다.”-

 

참으로 미증유의 천재지변 같은 사태로 잃은 것도 참 크지만 영적으로 얻은 것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관상觀想이 결핍된 외부지향적 활동活動만의 삶을 살다가 종파를 초월해 전국민이 잠시 멈추어 ‘은둔적隱遁的 삶’을 체험함으로 내적으로, 영적으로 삶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회개와 겸손의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하느님께서 무지와 탐욕, 교만에 빠지 전세계인에게 주신 사순시기 특별 피정기간같기도 합니다. 이런 코로나 사태가 아니라도 1년 몇날 동안만이라도 전국민이, 아니 전세계인이 잠시 멈추어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내적으로 깊이 성찰하는 영적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상상도 해 봤습니다.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는 시편 말씀도 생각납니다.

 

새삼, 인간 무지로 인한 탐욕, 교만의 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닫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날 때 비로소 회개와 겸손으로 치유되는 무지의 병이요, 이는 평생과정의 공부에 속합니다. 어제 읽은 예화도 새삼스런 깨우침이었습니다.

 

-“폴란드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체스와프 미워시(1911-2004)가 어느 날 오후 오리들이 바로 곁에서 흐르고 있는 맑은 개울물을 놔두고 흙탕물 속에서 목욕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의자에 앉아 있는 늙은 소작농에게 오리들이 맑은 개울물을 왜 무시하는 것인지 물어 보자 그 노인이 대답했다. ‘몰라서 그렇죠’”-

 

인간의 무지를 빗댄 기막힌 일화입니다. 공부를 하는 목적은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되는 데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래서 성경말씀을 통한 부단한 하느님 공부, 참 사람되는 공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참으로 현명한 두분, 복음의 예수님과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의 엘리사 예언자를 만납니다. 더불어 주님을 만나 영육의 병이 치유된 참 멋있는 인물 나아만과 더불어 예수님 고향의 무지無知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 이 또한 무지의 산물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참으로 현명한 사람은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봅니다. 

 

참으로 매력적인 이방인 나아만입니다. 하느님은 차별없이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고, 주님께서는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는데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환자였다 합니다.

 

나아만의 나병은 정말 나아만에게 전화위복의 복된 병이었음을 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 땅에서 잡혀 온 어린 소녀를 다리로 하여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나게 했고 참으로 평범한 요르단강에 몸을 담글 것을 명령받습니다.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하느님의 교육 과정이 참 신선합니다. 

 

마침내 나아만은 부하들의 조언에 따라 엘리사의 명령에 겸손히 회개, 순종하여 요르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나병은 치유되고 또 하느님을 고백하니 일거양득 육신의 병인 나병의 치유와 더불어 영혼의 치유까지 일어나는 말그대로 무지의 치유, 전인적 치유입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나아만처럼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 회개하여 무지의 편견과 선입견이 치유되어 겸손을 회복할 때 온전한 치유임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뚜렷이 부각되는 하느님의 사람, 참사람의 전형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 기세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침착하고 지혜롭게 하느님의 처방을 제시하고 일체의 선물도 받지 않으니 그의 인품이 참으로 고결하고 매력적입니다. 오늘 독서 다음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끝내 선물을 거부한 엘리사요, 대신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청하면서 고백한 나아만의 겸손한 처신도 참 멋집니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을 것입니다.”-(1열왕5,16-17).

 

진정 우리는 참 멋지고도 매력적인 인물, 엘리사와 나아만을 만납니다. 참으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 함께 살아갈 때 무지의 치유와 더불어 겸손하고 무욕의 지혜로운 참 사람이 됨을 깨닫습니다. 나아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복음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은 이들의 편견과 선입견에 실망하여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의 아들을 살린 예화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치유에 관한 일화를 예로 들면서 이들의 회개를 촉구하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입니다. 

 

참으로 차별없이, 국경없이 언제 어디서나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깨닫지 못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처신에 분노한 고향 사람들은 편견과 선입견에 이어 분노까지 추가되니 참으로 눈멀고 완고해진 무지의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가능성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 역시 독자들인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며 예수님의 당당한 처신을 배우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참으로 이런 주님을 따라 살 때 비로소 무지의 어둠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빛속의 삶이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람 예수님은 물론 엘리사, 그리고 영육이 온전히 치유된 겸손한 나아만 모두가 참 멋지고 매력적인 고귀한 인품의 참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무지의 병을 치유해 주시고 회개와 더불어 겸손과 지혜를 선물하시어 고귀한 품위의 참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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