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샘, 생명의 강 -주님은 생명의 샘이자 생명의 강이십니다-2020.3.24.사순 제4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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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24.사순 제4주간 화요일                                                           에제47,1-9.12 요한5,1-16

 

 

 

생명의 샘, 생명의 강

-주님은 생명의 샘이자 생명의 강이십니다-

 

 

 

생명의 샘, 생명의 강이 되어 살고 싶습니까? 우리 주님은 생명의 샘이자 생명의 강이십니다. 누구나 바라는 바 소원은 주님처럼 생명수 샘솟는 생명의 샘, 생명수 맑게 흐르는 생명의 강이 되어 사는 삶일 것입니다. 마음이 바짝 말라 있을 때는 흡사 바닥이 드러난 마른 샘같기도 하고 마른 강같기도 할 것입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살 때는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동 우물도 있었고 집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우물도 있었고 바가지로 물을 뜰 수 있는 옹달샘도 있었습니다. 그뿐인가요? 곳곳에 흐르는 맑은 시냇물도 많았고 물고기도 많았고 빨래터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름철 비온 후면 시냇물에서 물고기도 참 많이 잡았습니다. 가난했지만 풍요로운 자연속에서 마음 부자로 행복하게 살았던 시골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리 하염없이 바라 봐도 지루한 줄 모르는 것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이, 끊임없이 맑게 샘솟는 우물이요,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나 강물일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맑게 샘솟는 우물이나 맑게 흐르는 강을 보면 마음도 저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젠 거의 볼 수 없는 샘물이요 시냇물이요 강물이 되었습니다. 이젠 두레박, 바가지, 우물, 샘터, 옹달샘 같은 단어도 죽은 단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맑은 샘’같은, ‘맑은 강’같은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마음 상쾌한지요! 아주 오래 전 언젠가 비온 후 맑게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꼭 비가 와야 맑은 물인가

가뭄중에도 늘 맑게 흐르는 시냇물일 수는 없나

맑게 샘솟는 우물일 수는 없나

늘 깊고 푸른 산 늘 맑게 흐르는 시냇물로 살 수는 없나

생명수로 촉촉이 적시며 

임바다 향해 흐르는 맑은 강으로 살 수는 없나

언제 어디서나 

밖으로는 푸른 산, 안으로는 맑은 강으로 살 수는 없나”-1998.9.21.

 

가능합니다. 바로 우리 파스카의 예수님이야 말로 늘 생명수 맑게 샘솟는 생명의 샘이요 늘 생명수 맑게 흐르는 생명의 강입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우리 역시 주님을 닮아 생명수 샘솟는 ‘마음의 샘’으로, 생명수 맑게 흐르는 ‘마음의 강’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은 얼마나 은혜롭고 고무적이고 아름다운지요. 주님의 집인 성전에서 샘솟는 우물이, 또 여기서 발원發源하여 맑게 흐르는 생명의 강이 상징하는 바, 바로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기적들은 파스카 주님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완전히 타락전의 에덴 낙원 동산 같고, 실낙원失樂園에서 복낙원復樂園으로 회복된 모습같습니다에제키엘의 복낙원의 꿈은 마침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끊임없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정말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에제키엘은 물론 하느님의 참 아름다운 복낙원의 꿈이자 비전이자 희망입니다.

 

주일 복음은 태생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실로암 못의 물로 눈이 떴는 데, 오늘 벳짜타 못가의 38년 동안 누워지내던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입니다. ‘파견된 이’의 말뜻대로 실로암 못이 상징하는 바 예수님이셨고, ‘은총의 또는 자비의 집’이란 말뜻대로 베짜타 못이 상징하는 바 예수님이십니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언제 어디나 계시는 실로암 못이자 벳짜타 못인 우리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대로 주님과 38년 중풍병자간의 대화는 미사중 주님과 우리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같습니다. 이런 저런 크고 작은 마음의 중풍병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기 때문입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일어나 네 들 것을 들고 걸어 가거라.”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중 영적 중풍병자들인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곧장 일어나 내 ‘운명의 들 것’을 들고 힘차게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여기서 안식일을 범했다 하여 집요하게 시비를 걸고 들어오는 유다인들이 진짝 심각한 영적 중풍병자같습니다. 이들은 마음이 완고하게 경직되고 굳어져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하니 말 그대로 영적 중풍병자들입니다. 정말 인정머리 없고 싹아지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인정머리 없는 놈, 싹아지(버릇) 없는 놈’이란 평가 들으면 그 인생 끝난 것입니다.

 

생명의 샘이자 생명의 강이신 진짜 벳짜타 못인 예수님께서 치유받은 병자를 향한 강력한 권고입니다. 이 또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영과 육은,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참으로 죄를 짓지 말아야 영적건강에 육적건강이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날로 영육의 병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죄악이 많다는 표지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간의 죄악으로 병들어 가는 자연의 역습이요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하느님이 주시는 징벌의 표지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기도는 물론 공동운명체라는 자각하에 함께 어려움을 힘껏 참아 견디고, 지혜와 사랑을 나누며, 연대하는 길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용서받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때 비로소 영육의 회복이요 건강일 것입니다. 생명의 샘이자 생명의 강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치유하시어, 우리 모두 당신 생명의 샘으로 살라고, 또 당신 생명의 강으로 살라고 우리 삶의 메마른 광야로 파견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시편2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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