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 -진짜 '꿈쟁이’는 진짜 ‘쌈쟁이’다-2021.7.6.연중 제14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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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6.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창세32,23-33 마태9,32-38

 

 

 

영적 전쟁

-진짜 '꿈쟁이’는 진짜 ‘쌈쟁이’다-

 

 

 

수도생활은 영적전쟁입니다. 수도생활의 전통적 주제로 제가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열광熱狂했던 주제이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평생 영적전쟁중인 수도 여정이요 수도자는 평생 제대가 없는, 죽어야 제대인 평생 현역의 주님의 전사가 됩니다. 하여 제가 즐겨 자주 부르는 철지난 듯 한 노래가 김민기 작사 작곡의 ‘늙은 군인의 노래’입니다.

 

삶은 반복입니다. 단조로운 반복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반복, 거룩한 반복입니다. 수없이 반복했지만 늘 새롭게 느껴지는 ‘담쟁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무기력해질 때 마다 읽으며 영적 전의戰意를 새로이 했던 담쟁이란 시입니다. 아무리 무기 좋고 머리 좋아도 영적 전의를, 영적 열정을 상실喪失하면 영적전쟁은 백전백패百戰百敗입니다. 우선 사기가 충천해야하고 한결같은 지칠줄 모르는 열정의 전의가 우선해야 백전백승百戰百勝입니다. 요즘 담쟁이들이 곳곳에 한창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 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 새 다시 시작했다

 

초록빛 열정으로

힘차게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타오르다

가을 서리 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삶에도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다만 오늘 지금 여기

하늘 향해 타오를뿐

내일은 모른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다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영성이다”-1998.6.3.

 

무려 23년전 써놨던 고백의 시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실감나게 마음에 와닿는 고백입니다. 하느님의 타고난 꿈쟁이는 쌈쟁이는 언제나 ‘영원한 청춘’의 젊음을 삽니다. 그러니 타고난 주님의 전사인 쌈쟁이는 꿈쟁이가 됩니다. 이의 전형적 모범이 오늘 제1독서 창세기의 야곱입니다. 말그대로 꿈쟁이이자 쌈쟁이입니다. 부전자전입니다. 야곱이 꿈쟁이이자 쌈쟁이였듯이 그가 유난히 편애했던 아들 요셉 또한 유명한 꿈쟁이이자 쌈쟁이였습니다. 

 

이런 영적전통은 무수한 예언자들, 예수님과 바오로와 사도들, 그리고 무수한 성인들을 통해 계승됩니다. 정말 꿈쟁이이자 쌈쟁이 였던 이들은 대부분 시인, 신비가, 예언가, 혁명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명칭들 앞에는 반드시 하느님이 붙습니다. 한결같이 하느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꿈쟁이들이 싸움도 잘해 진짜 쌈쟁이들이요, 영육의 건강에 꿈쟁이로 쌈쟁이로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처방도 없습니다. 오늘 창세기의 야곱을 보세요. 형 에사오를 만나기 앞선 절체절명의 시간 밤시간 내내 하느님과의 대결입니다. 형 에사오를 피해 도망치던 야곱이 베텔에서 꿈을 꿨듯이 이젠 에사오를 만나기 앞서 꿈을 꿉니다. 밤샘 기도하는 시간은 바로 야곱이 하느님 꿈을 꾸는 시간이요 하느님과 쌈을 하는 시간입니다. 밤 시간은 자든지 꿈을 꾸는 시간, 쌈을 하는 시간이 되어야 성공적 영적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는 얼마나 흥미진진한지요! 어떤 사람이 상징하는 바, 바로 하느님입니다. 그는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지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야곱에게 사정합니다. 그 상황이 절박하지만 저절로 웃음짓게 합니다. 하느님의 유머같습니다.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다오.”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당신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시니 야곱의 완전 승리입니다.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맛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다음 대목이 참 멋집니다. 당시 감리교 신학대학장이었던 지금은 고인이 된 구약학 신학자 민영진 박사의 50년전 이 대목은 가장 아름다운 장면일 것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감동적 표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떠오르는 승리의 태양을 배경으로 절뚝 거리며 걷는 장면의 승리의 전사 이스라엘은 얼마나 멋진지요! 참 집요하고 대담한 지칠줄 모르는 꿈쟁이이자 쌈쟁이인 야곱이자 동시에 하느님과의 싸움에 승리한 이스라엘입니다. 체 게바라가 이런 하느님을 체험했더라면 하느님의 꿈쟁이로, 쌈쟁이로 얼마나 멋진 환상적 삶을 살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 간절합니다. 제가 날마다 밤 1시 전후로 일어나 4시까지 강론을 쓰는 시간은 그대로 하느님의 꿈쟁이로 쌈쟁이로 보내는 시간입니다.

 

복음의 예수님 역시 전형적 하느님의 꿈쟁이요 쌈쟁이였습니다. 평생 하늘 나라 꿈을 실현시키며 살았던 꿈쟁이요 쌈쟁이였습니다. 하느님 꿈의 전사요 사랑의 전사였습니다. 날마다 외딴곳에서 밤새워 기도하며 하느님을 꿈꾸며 하느님과 싸웠던 쌈쟁이 기도의 사람, 예수님이셨기에 낮의 현장에서 한결같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마귀들려 말못하는 이에게는 마귀를 내쫒아 치유해주시고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밤샘기도중 하느님께 승리한 꿈쟁이, 쌈쟁이 이스라엘 예수님이셨기에 이런 한결같은 지칠줄 모르는 열정에 승리의 삶이겠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던 군중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 예수성심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바로 진짜 하느님의 꿈쟁이, 쌈쟁이 일꾼들을 보내 달라 청하라 하시는데 청할 것 없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꿈쟁이로 쌈쟁이로 사는 것이 쉽고 빠르고 실제적입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의 꿈쟁이, 쌈쟁이 사랑의 전사로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시편3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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