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5.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로마15,14-21 루카16,1-8
유비무환有備無患
-선하고 지혜롭고 유능한 삶-
어제는 참 유쾌하고 홀가분한 하루를 지냈습니다. 11월15일 마감인 ‘수도원 계간지 <분도> 원고’ 청탁을, 거의 보름동안 묵상하다 어제 오전 4시간에 걸려 완료했기 때문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남은 10일 정도는 게시판에 붙여놓고 틈틈이 수정 보완할 예정입니다.
겨울호 특집 주제는 ‘희망의 의미와 실천’이었고, 원고청탁서 마지막 애교스런 글귀에 -‘원고료는 죄송하지만 재능 기부로 받고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미소를 지었습니다. 참으로 생생한 희망을 지닐 때 유비무환, 희망이 동인動因이 되어 역동적 충만한 현재를 착하고 지혜롭고 유능하게 살 수 있겠습니다.
희망하면 언젠가 인용한 ‘바다’라는 옛 동요가 생각납니다. 지혜로운 하루의, 평생 삶을 요약한 듯한 희망을 북돋우며 마음 행복하게 하는 동요입니다. 요즘은 거의 한달 내내 아침 산책때 마다 부르는 가사도 곡도 흥겨운 노래입니다. 2절까지 인용합니다. 시간 나는 대로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저녁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넓은 바다를 노저어 와요, 넓고넓은 바다를 노저어 와요.”
‘노저어 가요’에서 ‘노저어 와요’라는 희망찬 출항出港에서 행복한 귀항歸港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성서는 ‘착하라’ 하지 않고 ‘지혜로워라’ 말합니다. 착하고 지혜롭고 유능하면 금상첨화 참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심성은 착하나 어리석고 무능하여 무서워하기는커녕 무시당하고 조롱의 대상이 된다면 참 딱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착하고 무능하여 혼란을 자초하기 보다는 좀 악해도 유능하여 질서가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약은 집사의 비유입니다. 어떤 부자의 재산에 큰 손실을 끼쳐 책임 추궁 당할 것을 예상한 약은 집사의 미래를 위한 유비무환의 대책이 참 기민하고 신속하고 지혜롭습니다. 약은 집사의 독백입니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생각이 들자 즉시 결행決行하여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과감히 탕감해 줍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주인의 반응이 뜻밖이라 놀랍습니다. 책임을 추궁하여 벌을 준 것이 아니라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으니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결론같은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그렇다면 빛의 자녀이자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처신은 어떠해야 하겠는지요? 주인은 분명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로운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불의한 집사가 손실을 끼쳤어도 부자가 상징하는 바, 하느님께는 거의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불의하기는 해도 미래 대책을 세운 약은 집사의 처신을 이해하며 내심 묵인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라곤 말을 못해도 알아서 스스로 했으니 속으로는 고마운 생각도 들며 못이기는 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추측입니다만 주인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은 그러하고도 남으리라 봅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은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허락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할 바는 약은 집사의 부당하고 불의한 처신을 인정하거나 칭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빛의 자녀들이 이렇게 세상의 자녀들처럼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인으로 상징되는 바 주님이 칭찬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신속하고 기민한 대책입니다.
착하기만 하고 무능하여 불행한 미래라면 주인도 마음이 편치 못했을 것입니다만 이렇게 좀 나쁘고 부패해도 유능하고 지혜로워 미래 대책을 세웠다면 자비하신 주인도 내심 묵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제 결혼을 앞둔 젊은이의 카톡 글귀가 생각납니다. 젊은이의 좌우명인 듯 했습니다.
“대장부는 소인배와 논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흡사 주인은 대장부를, 약은 집사는 소인배를 상징한다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빛의 자녀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어떻게 미래 대책을 세워야 할까요? 유비무환입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변과 평화롭게 공존공생하면서 진리와 진실, 사랑과 연민, 공정과 정의에 바탕하여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이 미래입니다. 착하기만 하고 책임감이 결여한 무능하고 태만한 삶이라면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유비무환의 삶을 살면 미래는 저절로 잘 될 것이니 전혀 걱정할 바 없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닌 하느님 소관이니,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고 지혜롭고 유능한 처신입니다.
바로 오늘이 어제의 과거를 치유하고 내일의 미래를 준비합니다. 오늘 제1독서 로마서의 주인공 바오로 사도가 그 모범입니다. 사도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끝까지 시종여일, 복음 선포의 책임을 완수한 선하고 유능하고 지혜로운 바오로 사도가 자랑스럽습니다. 바로 약은 집사같이 불의하게 살 것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처럼 주님의 집사가 되어 정의롭고 지혜롭고 민활敏活하게 책임을 다하며 유비무환의 유능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그 좋은 처방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