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파스카 주님 중심의 공동체 건설 -성령의 은총, 형제들의 노력-2022.4.26.부활 제2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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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26.부활 제2주간 화요일                                                          사도4,32-37 요한3,7ㄱ.8-15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 중심의 공동체 건설

-성령의 은총, 형제들의 노력-

 

 

 

“주님만 바라고 선을 하라, 네 땅에 살면서 태평을 누리리라.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

 네 앞길 주께 맡기고 그를 믿어라, 몸소 당신이 해주시라.”(시편37,3-5)

 

아침 성무일도중 나온 시편 성구가 좋아 나눕니다. 계속되는 봄꽃 만발하고 신록 아름다운 파스카의 축제, 부활시기입니다.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기쁨에 이어 파스카의 공동체요, 신록의 기쁨같은 파스카의 기쁨입니다. 아름다운 봄꽃들과 신록이 어울러진 모습이 흡사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의 자연공동체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파스카 주님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사람은 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혼자의 여정이 아니라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공동체로부터 상처도 받지만 공동체로부터 받는 치유와 은혜가 한없이 큽니다. 그동안 참 많은 강론 주제로 등장한 것이 공동체입니다. 자주 인용했던 공동체에 대한 말마디들을 소개합니다.

 

“공동체 생활에는 답이 없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인 공동체 삶이다.”

“완성된 공동체는 없다. 단지 완성을 향해가는 순례 여정중의 공동체일뿐이다. 

“잘살고 못살고는 문제가 아니다.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이다. 특히 부부가정공동체는 그러하다.”

“성격이 마음이 이상이 같아서 공동체의 일치가 아니라, 바라보는 중심의 방향이 같아야 일치다. 바로 일치의 중심은 파스카의 주님이시다.”

“천국은 개인입장이 아니라 단체입장이다.”

“최고의 그러나 아직은 미완의 예술작품이 공동체이다.”

“이상적인 공동체는 없다. 모두가 불완전한 공동체이다.”

“공동체 삶이 보속이다.”

“공동체의 평화 공존을 위해 두가지 원칙이 있다. 서로 건드리지 않는 것, 그리고 서로 있는 그대로 그냥 놔두는 것이다. '녹을 지우려다 그릇을 깰 수 있다.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뎌야 한다. 이는 중용의 대가이자 분별력의 대가인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이다.'”

“모든 것이 신비라지만 공동체의 삶 역시 신비다.”

 

그리고 깨달음처럼 마음이 와닿은 얼마전 공동체에 대한 정의도 생각납니다.

 

“공동체는 살아있는, 내적으로 끊임없이 성장 성숙해가는 ‘그리스도의 몸’인 유기체이다. 그러니 공동체 형제들은 하나하나가 파스카 예수님의 얼굴을 반영한다. 나에게 가장 큰 스승은 내 몸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의 수도공동체이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잠언적 말마디들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아주 예전 세계 많은 수도공동체를 방문했던 장상의 언급도 생각납니다. 

 

“공동체를 방문할 때 마다 나는 큰 위로를 받는다. 세상 어디에도 이상적인 공동체는 없고 모두가 문제를 지니고 있다. 문제를 지니고 있는 공동체가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건강한 공동체이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납니다. 바로 제1독서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입니다. 정말 신바람나는 성령 충만한 이상적 공동체입니다. 많은 이들은 역사적 사실의 묘사로 보기 보다는 이상적 공동체 생활의 묘사로 보지만 공동체 삶의 영원한 모델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앞서 사도행전 2,42-47절에 이은 두 번째 초대교회 공동체 삶의 묘사입니다. 하나도 생략할 수 없는 공동체 생활의 필수 요소가 망라되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살아있는, 요즘 꽃들과 신록의 아름다운 자연공동체처럼 생명과 빛 가득한 지상에서 실현된 천상 낙원의 공동체같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았다.”

 

완전히 자발적 사랑의 공산주의 공동체, 사회주의 공동체같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 큰 불평등한 공동체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가 실현된 꿈의 공동체같습니다. 바로 우리 수도공동체가 영원히 꿈꾸고 있는 영원한 이상적 공동체입니다. 사실 수도공동체뿐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영원한 모델이 오늘 소개된 사도행전의 공동체이며 이런 이상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우리 “수도가정교회공동체”입니다.

 

어떻게 이런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공동체는 인간 노력의 산물인 이상적 유토피아 공동체가 아니라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의 성령의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총의 선물임과 동시의 우리 노력의 산물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이 성령의 활동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바로 세례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우리들은 ‘위로부터 태어난’ 이들이요 ‘성령에서 태어난’이들 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상적 공동체는 위로부터, 성령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여기 공동체 삶의 중심에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 분이,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요 도반인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이십니다. 공동체의 중심을 상징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이를 증거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예수님을 공동체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이 공동체 일치의 첩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끊임없이 평생 날마다 바치는 성전에서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이상주의적 현실적 공동체를 위해 구체적 수행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바로 공동전례기도와 공동식사입니다. 

 

이래서 저는 수도공동체의 가시적 중심은 성당과 식당 둘이라 합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며 영적 스트레스 풀고, 식당에서 함께 밥먹으며 육적 스트레스 풀 때 오늘 사도행전의 꿈의 공동체의 실현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수도가정교회 공동체뿐 아니라 참된 공동체를 꿈꾸는 분들은 공동기도와 공동식사 두 요소를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원의 일과표도 반드시 공동기도후에 공동식사 시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획일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다양성의 일치를 이루는 누구나 자유롭고 행복한 공동체, 누구나 존중받고 사랑받고 배려 받는 차별없는 정의롭고 평화롭고 평등한 공동체는, 믿는 이들 누구나 꿈꾸는 공동체 삶의 목표일 것입니다. 

 

바로 날마다 평생 끊임없이 봉헌하는 주님의 거룩한 미사 은총이 공동체의 성장과 성숙, 일치에 결정적 도움을 주며, 본기도 말씀대로 충만한 새 생명을 누리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을 선포하는 공동체가 되게 합니다.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고백기도중 전우애, 학우애, 형제애가 조화된 이상적 공동체를 그리며 쓴 대목을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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