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8.연중 제32주간 화요일 티토2,1-8.11-14 루카17,7-10
"행복은 선택, 지금 여기가 꽃자리이다"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
올해 가을은 이런저런 사유로 참 긴박했고 힘들었습니다. 9월18일 마지막 시詩를 올린후 11월 8일 되기까지 한편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 10월 묵주기도 성월, 11월 위령성월, 가을은 명실공히 기도의 계절입니다. 다시 심기일전하여 더욱 기도생활에 힘쓰고 싶습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지금 여기가 꽃자리입니다. 오늘 복음 묵상중 저절로 떠오른 고백이 그대로 강론 제목이 되었습니다. 새삼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무지에 눈이 가려 지금 여기가 꽃자리인줄 모르고 행복을 못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행복의 꽃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어디든
뿌리내려
활짝 꽃피어 내면
거기가
바로 꽃자리
하늘 나라이다.”-2022.9.18.
바로 마지막으로 올린 시가 꽃자리입니다. 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시가 올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구원의 꽃자리, 행복의 꽃자리, 주님을 만나는 하늘 나라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어디서도 못 만납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사랑을, 믿음을, 희망을, 기쁨을, 찬미를, 감사를, 평화를 선택하여 훈련하며 살 때 행복입니다. 바꿀 수 없는 부정적인 타고난 것도 많지만 날마다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입니다. 타고난 부정적인 것들을 탓하기로 한다면 남는 것은 절망, 원망, 실망뿐이요 거기가 지옥입니다. 제 좋아하는 시편 성구입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 "(시편16,2)
하느님은 회개한 과거는 묻지 않습니다. 또 하느님은 타고난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부터 새롭게 주님을 선택하여 행복하게 살았느냐만 묻습니다. 날마다 행복인 주님을 선택할 때 저절로 감사요 감사요 감탄입니다.
어떻게 구원의 행복한 꽃자리를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이 고맙게도 답을 줍니다. 다만 주님을 겸손히 섬기는 종의 자세로 살면 됩니다. 행복의 비결은 단하나 이것뿐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한다면 저절로 매사 주님을 겸손히 섬기는 종으로 살게 됩니다.
이건 겸손이기 보다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과 섬김의 영성이 있을뿐이요,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뿐이요, 권위가 있다면 섬김의 권위 하나뿐입니다.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은 어원도 같습니다.
저는 ‘봉사’보다는 순수한 우리말 ‘섬김’이라는 말마디를 좋아합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당신의 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라 정의합니다. 어찌보면 우리 믿는 이들은 섬김의 일인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섬김의 여정’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업하면 잊지 못할 추억이 있습니다. 수도원 초창기 원장직에 일인다역一人多役, 전천후 다목적용으로 살 때, 한밤중 자다가 피정 신청을 받았고 이어 친절치 못하고 퉁명스럽다는 격렬한 항의를 받고 즉시 사과했던 추억입니다. 즉시 깨달은 진리입니다.
“아,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구나! 교회는, 수도원은 서비스업이다. 서비스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1.사람이 좋아 친절하고, 2.실력이 좋아 유능해야 되고, 3.안팎의 환경이 좋아 쾌적하고 편안해야 되겠다, 바로 이것이 서비스업의 3대 필수 요건이겠구나! 대표적 서비스업인 음식점과 병원, 학교만 봐도 즉시 알 수 있겠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할 깨달음입니다. 그 어디든 참으로 종과 섬김의 영성에 충실할 때 거기가 행복한 꽃자리 하늘 나라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주님을 겸손히 섬기는 종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 말씀이 경각심을 주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대로 다 하고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다만 주님의 종으로써 시종여일 묵묵히 최선을 다해 주님을, 이웃을 겸손히 섬기는 삶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멋지고 행복한 삶입니다. 칭찬이나 비난에 초연하여 한결같을 수 있습니다. 누가 뭐래든 종으로 주님을, 이웃을 겸손히 섬기는 삶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히 주님을, 이웃을 섬기는 삶자체가 구원이요 행복입니다.
탓할 것이 있다면 단 하나 한결같이, 진실히, 성실히, 절실히, 주님을, 이웃을 섬기지 못하는 자신뿐일 것입니다. ‘연중 평일 감사송 4’ 편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우리이지 하느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쉬워서, 겸손히 주님을 섬겨야 구원이기에 자발적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참사람이 되어 참행복을 살 수 있는 길도 이길뿐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우리 삶의 궁극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주님을 섬기지 않고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섬기겠는지요!
섬김의 직무에 충실할 수 있음도 순전히 은총입니다. 분명히 하면 그리스도의 은총입니다. 제1독서 티토서에서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요, 이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한결같이 주님을, 이웃을 겸손히 섬기는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