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성령님! -신망애(信望愛)의 삶-2023.10.21.연중 제28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2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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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1.연중 제28주간 토요일                                                     로마4,13.16-18 루카12,8-12

 

 

참 좋은 성령님!

-신망애(信望愛)의 삶-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미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시편8,1)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 복음의 소주제입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복음 선포는 교회의 사명이자 존재이유입니다. 교회에 속한 교회의 사람,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 하느님의 사람인 우리의 사명이자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참 좋으신 주님을 그대로 한결같이 끊임없이 반사하는 참 좋은 삶, 말그대로 신망애의 삶입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행복하게 살게 하는 신망애의 삶,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언제나 하느님으로 행복하지만 어제도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주문했던 커다란 그림 동화집, “사랑을 주면 줄수록”이란 책을 받았고 그림만 봐도 행복했습니다. 책은 다음처럼 끝납니다.

 

“아이는 언제나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 주었고, 

그만큼 많은 사랑을 돌려 받았어요, 돌아온 사랑이 더 컸을까요? 

그럼요!

사랑은 지금껏 아이가 상상해 온 것보다 훨씬 더 컸어요.

그리고 그 사랑 덕분에 행복했답니다.

그곳에 숲이 있었어요.”

 

사랑의 숲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 바로 거기가 사랑의 숲이요, 하늘 나라 천국입니다. 바로 오늘 여기서부터 사랑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면 줄수록 사랑을 받습니다. 

 

어제 뜻밖에 46년전 1977년 초등학교 6학년때 제자들 8명으로부터 쌀 8부대를 선물 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사랑의 선물입니다. 13세때 아이들은 지금은 59세의 장년들이 되었고 당시 29세의 쳥년교사였던 저는 지금은 영원한 현역의 75세 노수도승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가을철이 되면 잊지 않고 수도원에 사랑의 선물인 쌀을 보내주는 제자들입니다. 오늘 고마운 8명 제자들을 위해 생미사를 봉헌합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이런 사랑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줍니다. 주님을 증언할 힘을 줍니다. 모든 사랑의 뿌리에는 하느님 사랑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인 예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하느님을, 예수님을 알게 되고 닮게 됩니다. 사랑과 앎은 함께 갑니다. 참으로 사랑할 때 안다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사랑의 증언입니다. 사랑할 때 압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안다고 증언합니다. 어제 원장 수사가 노트북 파일 정정법을 가르쳐 준 후, 요즘 쓴 시를 달라 하기에 나눈 짧은 두 시가 있습니다. “하늘”과 “하늘과 산”이라는 시입니다. 하늘이 상징하는 바 사랑입니다.

 

-“고결高潔하게 

  살라고

  언제 어디서나

  눈들면

  높고 높은 하늘

 

  넓고 

  깊게 살라고

  언제 어디서나

  눈들면

  넓고 깊은 하늘

 

  날마다

  배우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이다”-

 

날마다 배우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하늘 같은 하느님 사랑입니다. 이어 ‘하늘과 산’이라는 시입니다.

 

-“내가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나

 아, 평소 늘 그리고 바라던

 하늘이

 산이

 하늘과 산이 되었구나”-

 

언제나 늘 거기 있는 하늘같은, 산같은 “하느님 사랑”이 되기를 소망하며 쓴 고백시입니다. ‘하늘과 산이 되었구나’ 말마디를 바꾸면 ‘사랑이 되었구나’가 될 것입니다. 사랑의 성령, 진리의 성령입니다. 진리가 사랑입니다. 진리이자 사랑이신 성령을, 주님을 모독하면 안됩니다. 진리이자 사랑인 성령을 거부하는 자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자 성령을,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랑의 성령, 진리의 성령이요, 이런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성령의 힘은 주님의 힘입니다. 바로 우리의 믿음을, 희망을 북돋아 주는 성령입니다. 참으로 성령 앞에서 참으로 겸허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겸허와 감사를 거스르는 것 역시 성령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성령의 희망, 성령의 사랑, 성령의 믿음입니다. 성령이 답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모독함은 삶의 근본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어떤 박해의 어려움중에도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않게 하는 믿음은 순전히 성령의 선물입니다. 적절한 필요한 말을 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의 주님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아브라함이야 말로 신망애의 사람이요, 성령의 사람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모범입니다. 다음과 같은 아브라함의 묘사가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었던 희망의 사람,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입니다. 그 희망과 믿음의 저변에는 아브라함의 하느님께 대한 깊디 깊은 사랑과 앎이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말그대로 신망애의 영웅, 아브라함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강조한 희망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희망없이 살 수 없다. 매일의 적은 희망을 잘라내면 우리의 정체성도 잃게 된다. 우리는 희망위에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신적 희망은 매우 수수하지만 그러나 매일 양념을 치는 것과 같다.”

 

참으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고 사랑할 수 있도록 궁극의 희망이신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령충만한 신망애의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손수 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시편9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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