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1.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로마8,18-25 루카13,18-21
하느님의 소원
-우리 하나하나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삽시다-
하느님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늘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이점 잊지 말고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평생 날마다 쓰는 강론이지만, 제일 힘든 일이 강론쓰는 일입니다. 첩첩산중疊疊山中 매일 산을 넘는 마음으로 강론을 씁니다. 강론을 쓰는 일은 살아 있음의 확인이기에 살아 있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산을 넘듯 강론을 쓰려합니다. 때로 생각이 안날 때, 막막할 때 옛 시집을 펼쳐 봅니다. 18년전 2005년도 이때쯤 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일을 시작하였다(이사43,18-19ㄱ)
그렇다
흘러간 것들에 마음
아파해하지 말자
아쉬워하지 말자
쓸쓸해하지 말자
흘러간 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
흘러간 사람은
사랑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다
오늘 지금 여기서
만나는 사람에, 사랑에, 시간에 충실한 게 제일이다
이게 영원한 현재를, 젊음을 사는 길이다
흐르고 흘러도
늘 새롭게 만나는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이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이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오늘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살지 못하면 죽어서도 못삽니다. 예수님의 평생 화두가, 평생 희망이자 꿈이 하느님의 나라였고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삶자체가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하느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의 꿈이 실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꿈의 사랑, 희망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입니다.
“형제 여러분,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백하는 꿈은, 희망은 바로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아니 이미 이런 하느님의 나라 꿈을 앞당겨 살고 있는 바오로입니다. 이런 궁극의 꿈이, 희망이 있어야 비로소 인내심을 지니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29일 교황님의 주일 강론중 한 대목도 감동적입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꿈꾸도록(dream)’ 불림을 받았으니 ‘꿈꾸는 교회’ 바로 이게 교회입니다. 모든 이의 종, 가장 미소한 형제자매들의 종인 교회의 꿈입니다. 교회는 결코 좋은 행동의 증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영하고, 섬기고, 사랑하고, 용서합니다. 교회는 모두에게 활짝 열린 문들을 지닌 ‘자비의 안식처’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꿈의 실현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겨자씨와 누룩의 한쌍의 비유도 하느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현실과 유리된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이미 오늘 지금 여기서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임을 가르쳐주고 깨우쳐줍니다. 이 비유자체가 우리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구원이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다.”
너무 평범하고 자명한 하느님 나라의 현실입니다. 비단 겨자씨만 아니라 눈만 열리면 곳곳에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로 가득합니다. 봄에 꽃피고 가을에 큰 열매들을 낸 배나무들, 연약한 배추모종이 큰 배추가 되어 먹게 된 일 등, 참 놀라운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놀랍다, 새롭다, 좋다 이게 하느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눈만 열리면 늘 놀랍고 새롭고 좋은 하느님 나라의 현실입니다.
배수확이 끝난 “텅빈 충만”의 넉넉하고 편안한 배밭사이 오솔길 산책 역시 하느님 나라의 체험입니다. 만일 흉작이었다면 텅빈 충만이 아닌 “텅빈 허무”의 참 쓸쓸한 배밭의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새삼 우리의 가을 인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중에 끊임없이 내적으로 성장하고 확장되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이요, 바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묵중에 활짝 깨어 관상의 눈, 관상의 귀로 하느님의 나라 현실을 잘 보고 잘 들으며 하느님께 최대한 잘 협조해 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하느님의 나라는 내적변화의 현실을 가리킵니다. 누룩이 상징하는바 무궁무진합니다. 부패인생을 하늘 나라 발효인생으로 만들어 주는 누룩같은 효소들이 바로 희망이요 기쁨이요 감사요 기도요 성령이요 말씀입니다. 희망의 누룩, 기쁨의 누룩, 감사의 누룩, 성령의 누룩, 말씀의 누룩, 기도의 누룩등, 개인은 물로 공동체를 내적으로 변화시켜 하늘 나라의 현실을 체험하고 살게 합니다.
성장하는 겨자씨같은 개인이나 공동체, 변화시키는 누룩같은 개인이나 공동체를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겨자씨처럼 작았던 요셉수도원이 이제는 많은 이들이 깃들 수 있는 커다란 나무로 계속 성장중에 있고, 또 알게 모르게 세상의 누룩이 되어 희망과 기쁨, 감사와 평화 가득한 하느님의 나라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것 또한 수도원의 존재이유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에 “말씀의 겨자씨”가 잘 자라게 하시고, “성체의 누룩”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 모두 하느님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사랑의 겨자 나무”가 되고 “주님 사랑의 누룩”이 되어 하느님 나라의 꿈을 실현하며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궁극의 꿈이자 소원은 우리 하나하나가, 우리 공동체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