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의 덕 -기쁨, 찬미, 순종-2019.12.9.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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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9.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창세3,9-15.20 에페1,3-6.11-12 루카1,26-38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의 덕

-기쁨, 찬미, 순종-

 

 

 

아름다운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찬미가도 아름다웠고 미사중 화답송 후렴 가사와 곡도 흥겹고 아름다웠습니다.

 

-“더없이 거룩하신 은총으로써/성모님 꾸미시고 보살펴주신

성령과 주성부께 영광있으라/성모님 아드님께 영광있으라.”-찬미가

-“새로운 노래를 주께 불러 드려라. 묘한 일들 당신이 하시었도다.”-화답송 후렴

 

아침 성무일도 이사야 독서도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성모님은 물론 마치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같습니다.

 

“두려워 마라, 내가 너를 건져 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이사43,1ㄹ).

 

오늘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우리 천주교회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 교구의 수호자를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하여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이런 요청에 응답하여, 요셉 성인과 함께 성모님을 한국 천주교회의 공동수호자로 정해 주셨습니다. 

 

마치 마리아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한국 천주교회뿐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 공동 수호자란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하느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한반도의 한민족임을 깨닫습니다. 얼마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었고, 또 현재 겪고 있는 우리 나라인지요. 참으로 하느님 은총의 열매같은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 성모님의 덕을 배우도록 합시다. 부전자전이기 보다는 모전자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비롯하여 무수한 성인들이 마리아 성모님을 극진히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주변에서도 성모님을 닮은 자매들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마침 어제 저녁 성무일도후 어느 자매와 면담성사시 주고 받은 대화가 생각납니다. 다음 저녁성무일도시 독서가 너무 좋았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필립4,4-5).

 

참으로 대림시기에 적절한 말씀입니다. 대림의 기쁨,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기쁨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닮아야 할 성모님의 덕은 무엇입니까?

 

첫째, 기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에게 주신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그대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제가 고백성사 보속 처방전 말씀으로 많이 써드리는 성구중 하나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 성모님은 이 말에 몹시 놀랐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합니다. 아마도 성모님은 이 말씀을 들은 이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기쁘게 사셨을 것입니다. 

 

비단 윗 말씀은 성모님뿐 아니라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성모님처럼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뻐하기로 한다면 그런 때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에 저절로 따라 오는 평화입니다. 

 

둘째, 찬미입니다.

기쁨에서 샘솟는 찬미이며 찬미에서 샘솟는 기쁨입니다. 바로 성모님은 찬미의 어머니였습니다. 마리아 찬가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을 닮고 싶습니까? 찬미의 사람이 되십시오, 찬미할 때 저절로 기쁨과 더불어 감사입니다. 기쁨과 감사는 믿는 이들의 전형적 특징입니다.

 

오늘 제2독서 에페소서 찬미가는 얼마나 웅장합니까? 초대 교회 신자들이 한 마음으로 불렀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진 은총을 노래했던 찬미가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매주 월요일 저녁성무일도시 찬미가로 바치는 노래입니다. 

 

그리스말 본문에서는 3절에서 14절까지가 한문장입니다. 그야말로 숨을 멈추지 않고,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 찬미에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동사의 주어로 등장하며,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위업을 찬미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찬미가의 서두 고백은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바로 성모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느님은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모님뿐 아니라 우리도 선택하시어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감사의 찬미는 우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성모님을 닮고 싶습니까? 끊임없이 사랑의 찬미가, 감사의 찬미가를 바치십시오. 저절로 주님으로부터 기쁨과 평화도 선사될 것입니다.

 

셋째, 순종입니다.

성모님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의 찬미이듯 사랑의 순종입니다. 참으로 순종하는 이는 침묵을 사랑하는 침묵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한 침묵입니다. 성모님은 침묵의 사람이자 잘 귀기울여 듣는 ‘경청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잘 드러납니다. 참으로 침묵중에 경청하는 분, 그대로 관상가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담, 하와 부부와 마리아는 얼마나 대조적인지요? 불순종으로 인해 자초한 아담, 하와의 불행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심은 우리 모두를 향합니다.

 

“너 어디 있느냐?”

 

과연 제자리에서 충실히 항구히 정주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아담은 하느님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불순종의 죄로 인해 “예 여기 있습니다.” 대답하고 뛰쳐 나가지 못합니다. 아담의 변명에 이어 하와의 변명이 뒤따릅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참 비겁한 모습입니다. 하여 하느님과의 관계, 부부와의 관계, 피조물과의 관계가 다 파괴되었습니다. 불순종의 죄의 후유증이 이처럼 큽니다. 

 

성모님은 순종의 모범입니다. 순종은 영성의 잣대입니다. 순종을 통해 드러나는 겸손한 믿음입니다. 참으로 침묵의 사람, 경청의 사람은 겸손한 믿음의 순종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마리아의 믿음의 절정은 마지막 순종의 응답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흔쾌히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마리아의 자발적 사랑의 순종이 참으로 고마웠을 것입니다. 참 신앙인의 모범인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저절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란 고백을 하게 됩니다. 성모님을 닮고 싶습니까?

 

1.기쁨입니다.

2.찬미입니다.

3,순종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기쁨과 찬미, 순종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을 닮게 하십니다.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낳으셨으니, 마리아님, 저희가 모두 당신께 영광을 드리나이다.”(영성체송).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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