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진 삶 -관계, 선택, 여정-2021.8.22.연중 제21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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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22.연중 제21주일 

여호24,1-2ㄱ.15-17.18ㄴㄷ 에페5,21-32 요한6,60ㄴ-69

 

 

 

참 멋진 삶

-관계, 선택, 여정-

 

 

 

때늦은 가을 장마라지만 이젠 선선하기가 완연한 가을입니다. 풀벌레 찬미소리도 자주 들리고 흰구름에 하늘도 높고 푸릅니다. 흡사 하늘 아버지에 자연 어머니라 부르고 싶을 만큼 하느님 품 안에 있는 느낌입니다. 아마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독서의 계절, 기도의 계절, 수확의 계절인 가을일 것입니다.

 

요즘 수도원 정문까지 이르는 일명 수도원길, 하늘길을 산책하다 보면 농기구 창고 앞 샛노란 수세미꽃들이 한창입니다. 정문에서 올라오다 보면 흡사 환한 얼굴로 환대하는 하늘의 별들처럼 보이기도 하여, 볼 때 마다 신선한 감동에 자주 사진에 담곤 합니다. 어제 써놓은 글을 나눕니다. 

 

-“허술한 

 농기구 창고앞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하늘로 가는

 여정의

 다리로 삼아

 

 샛노란 하늘 사랑

 별처럼

 꽃피어 내며

 

 지나는

 모든 이들

 환한 미소로 환대하며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수세미꽃들

 주변이 환하다.”-

 

이런 모습이라면 두 말 할 것 없이 참 멋진 삶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가꾸지 않아도 가을 때 되니 곳곳에 피어나는 야생화 달맞이꽃들도 유홍초꽃들도 참 청초하고 곱습니다. 이어 써놓은 시 한편을 또 나눕니다.

 

-“사람은

  꽃이다

 

  죽는 그날까지

  살아 있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날마다 새롭게 폈다 지는

 

  꽃이다

  주님 파스카의 꽃이다”-

 

맞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이들은 하루하루 날마다 폈다지는 주님 파스카의 꽃입니다.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평생 전사로서, 주님의 평생 학인으로서 날마다 폈다 지는 주님 파스카의 꽃, 참 멋진 삶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멋진 파스카의 꽃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답은 셋입니다. 이런 자각에 투철하여 깨어 살면 참 멋진 삶이겠습니다.

 

첫째, 삶은 관계입니다.

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혼자서의 구원은 없습니다.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애당초 공동체적 사람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중에 살아가는 관계속의 존재들입니다. 오늘 두 독서와 복음도 관계속의 인간 존재임을 입증합니다. 

 

참 진眞은, 진실은 관계의 기초입니다. 진실할 때 신뢰信賴가 갑니다. 그러니 진眞과 신信은 관계의 기초가 됩니다. 진실과 신뢰의 기반위에 날로 깊어지는 관계입니다. 거짓되고 신뢰가 없으면 애당초 관계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는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섬기십시오” 둘을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빗대어 순종과 사랑의 부부관계의 심오한 비밀을 밝혀 줍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이는 큰 신비입니다. 부부관계뿐이 아니라 공동체내 모든 관계의 기초는 공동체의 중심인 그리스도입니다. 날로 깊어지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순종의 우정과 함께 깊어지는 형제들간의 사랑과 순종의 우정입니다. 과연 날로 주님과 더불어 형제들과의 우정도 깊어지는 지요. 

 

바로 이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 은총입니다. 바로 우리가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 기도 은총이 부단히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며 주님과의 우정, 형제들간의 우정을 날로 깊이해 줍니다. 화답송 시편이 주님과의 관계가 우선적임을 밝혀줍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둘째, 삶은 선택입니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자 동시에 이런저런 작고 큰 무수한 선택의 연속입니다.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부단한 선택을 통해 완수해가야 할 평생과제입니다. 악이 아닌 선善을, 절망이 아닌 희망希望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바로 선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늘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선택에 주님께 대한 믿음이, 분별의 지혜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참 좋은 믿음을 지닐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분별의 지혜와 결단의 행동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결정적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두 말할 것 없이 우리가 선택할 분은 영이요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리스도 예수님께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 역시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고정불변의 닫힌 믿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열려있는 성장하는 믿음이기에 우리의 분투 노력도 결정적입니다. 다음 열두제자에 대한 주님의 물음은 우리 모두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선택의 기로입니다. 날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물음입니다. 고맙게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 주십니다. 주님과 얼마나 깊은 믿음 관계에 있는 베드로인지 짐작이 갑니다. 언제 어디서나 답은 이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고백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참 통쾌한 정곡을 찌르는 답변의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선택함이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여호수아의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 대한 물음도 이와 흡사합니다. 이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서자 여호수아는 이들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주님을 섬길 것인지 또는 조상들이 섬기던 신들이나 아모리족의 신들을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라 하십니다. 이어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말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고백하며 주님을 선택합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대로 우리의 고백으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날마다 깨어 ‘오늘’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상들의 유혹에 빠져 주님을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단단히 고백했지만 머지 않아 수없이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유혹에 빠진 이스라엘 자손들이었습니다.

 

셋째, 삶은 여정입니다. 

오늘 세 독서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여정중의 존재들임을 깨닫습니다. 너무나 엄연하고 자명한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참 제가 많이 강론 주제로 사용하고 있는 말마디가 여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랑의 여정입니다. 사랑할 때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여정은 아름다운(美) 사랑(愛)의 여정인 것입니다.

 

과연 지금까지 아름다운 사랑의 여정이었는지요. 이 여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죽음으로써 끝나는 여정입니다. 평생 여정에서 늘 확인해야 할 바, 목표요 방향이요 관계입니다. 과연 우리 여정의 목표이자 방향인 주님의 현존 안에 늘 살고 있는지요. 날로 삶의 여정과 더불어 주님과의 관계도, 형제들과의 관계도 깊어지는지요.

 

그러니 참 멋진 삶의 세 열쇠말은 관계, 선택,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이 세 말마디에 필히 전제되는 주님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주님의 선택, 주님과 함께 주님을 향한 여정입니다. 관계의 진眞, 선택의 선善, 여정의 미美이니 참 멋진 삶은 진선미眞善美의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 관계의 신信, 선택의 망望, 여정의 애愛이니 참 멋진 삶은 신망애信望愛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얼마전의 소스라치게 와닿은 깨달음입니다. 요즘 종교 대가들이라 평가되는 분들의 저서를 읽으면서 여섯 단어 즉 집, 기도, 만남, 겸손, 닫힘, 불안이 뚜렷이 부각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머물 종교라는 집이 없었고, 기도가 없었고, 그리하여 주님과의 살아 있는 인격적 만남이 없었고, 열린 듯 하나 닫혀 있어 답답한 느낌이었고, 자유로운 듯 하나 웬지 불안해 보였습니다. 잘 들여다 보니 겸손이 부족했습니다.

 

이러다 보면 자유분방해지고 본의 아니게 교주敎主가 될 유혹과 위험이 다분합니다. 추호도 폄훼할 마음은 없고 일단의 우려감憂慮感의 표현입니다. 진선미의 참 멋진 삶, 신망애의 참 멋진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거룩한 ‘집’인 이 성전에서 이 거룩한 미사전례’기도’를 통해 당신을 ‘만남’으로 우리를 열어 주시고 평화를 주시며 당신과의 관계를 깊이해 주시며 실로 ‘겸손’하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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