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2022.4.16.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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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16.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창세1,1-2,2 창세22,1-18 탈출14,15-15,1ㄱ 이사54,5-14

이사55,1-11 바룩3,9-15.32-4,4 에제36,16-17ㄱ.18-28 로마6,3-11 루카24,1-12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어제 주님 수난 금요일 끝기도 말미,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셨도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도다” 응송이 심금을 울렸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님께 참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의 영광스런 부활로 응답하셨습니다. 사필귀정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다음의 비움 찬가,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그를 들어 높이시고, 어느 이름보다도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내리셨도다.”가 하느님의 응답을 고백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가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도 참으로 새롭게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하루하루 날마다 참 좋은 부활의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요!” 저절로 솟아나는 시편 찬미입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

“하느님 감사합니다.”

 

빠스카의 밤, 빛의 예식중 주고 받은 환호가 참으로 감동스러웠습니다. 주님은 당신 기쁨과 평화의 빛으로 우리 내면의 어둠을 환히 밝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우리의 빛으로, 생명으로, 희망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새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부활하셨고,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함께 빛과 생명으로, 희망으로 오늘 밤 부활하였습니다.

 

빛의 예식에 이어 은은히 타오르는 커다란 부활초를 바라보며, 또 부활초를 각자 손에 들고 경청한 “파스카 찬송(Exultet)”은 얼마나 웅장하고 황홀하고 찬란했는지요! 무려 1600년전 아득한 옛날, 성 암브로시오의 작품이라 합니다. 어제 오후에는 유투브를 통해 새로운 마음으로 감상해 봤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장엄하고 감동스럽고 풍부한 찬송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성토요일 이 강론을 앞서 보시는 분들, 참으로 뜻깊은 부활 대축일 맞이 준비로 꼭 파스카 찬송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인용합니다.

 

“용약하여라, 하늘 나라 천사들 무리, 환호하여라, 천상의 거룩한 영들아. 구원의 우렁찬 나팔 소리, 선포하여라, 위대한 임금의 승리, 땅도 기뻐하여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영원하신 임금의 눈부신 광채로 이 세상의 온갖 어두움 사라져 버렸네. 기뻐하여라, 어머니인 교회, 부활하신 주님의 빛이 가득한 교회, 백성의 드높은 찬양 노래 온누리에 울려 퍼진다.

 

주님, 이 촛불을 향기로운 제물로 받아들이시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게 하소서. 이 불꽃, 샛별보다 빛나게 하소서. 결코 질 줄 모르는 빛나는 별이 되게 하소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님, 저승에서 부활하시어 온 인류를 밝게 비추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부활 찬송에 이어 쏟아지는 말씀의 선물들은 얼마나 황홀했는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시요,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파스카 축제의 계절 바야흐로 만개한 봄꽃들의 아름다움으로, 전례의 아름다움으로, 말씀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좌우간 모든 아름다움의 뿌리에는 하느님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그대로 아름다움의 샘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 전례시 모든 아름다운 말씀들 참으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새삼 말씀의 종교, 들음의 종교인 우리 자랑스런 그리스도교임을 깨닫습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입니다. 말씀이야 말로 우리 믿는 이들의 본질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을 먹고 사는 영혼이요 사람입니다. 일곱 개의 독서 마다 독서와 관련된 화답송 후렴도 은혜롭습니다.

 

1.주님, 보내시는 당신 얼에 누리의 모습이 새롭게 되나이다.

2.주님, 저를 지켜 주소서, 주께 피신하는 이몸이오이다.

3.주님, 내 노래 하리니 주는 영광스러이 승리하셨나이다.

4.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내 주님을 높이 기리려 하나이다.

5.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6.주님, 생명의 말씀이 주님께 있나이다.

7.주님,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이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한결같이 하느님 사랑에 감격한 내용의 화답송 후렴들의 찬미와 감사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 사랑은 예수님 부활로 완결되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빛과 생명으로, 희망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참으로 예수님 계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예수님 없이 이 거칠고 삭막한, 어둡고 힘든, 허무하고 무의미한 광야 세상 무슨 맛으로, 무슨 기쁨으로,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바오로 사도가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참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아, 바로 이것이 우리 삶의 의미이자 존재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은 구체적으로 이런 하느님을 위한 삶의 비결을 알려줍니다. 

 

사랑하십시오. 참으로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체험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준비한 향료를 듣고 무덤에 간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모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 천사들을 통해 이들을 만나 주십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은 죽은 이들 가운데 있지 않고 바로 살아 있는 우리들 가운데 섬기는 분으로 계시고 이분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이니, 바로 눈앞에 있는 형제들을 통해 만나는 부활하신 주님입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말마디가 “기억記憶”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약속에 대한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냈다 합니다. 그러니 영성생활에 기억이 얼마나 중요하며 “망각妄覺”이 얼마나 치명적 장애인지 깨닫습니다. 

 

이래서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해 살기 위해, 끊임없는 반복의 기도에 학습의 공부입니다. 부단히 잊지 않고 생생히 기억해 살기 위해 “배우고(學)” “익히는(習)”, 학습(學習)이 세상 공부만이 아니라 하느님 공부에도 필수적인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습(習)의 한자 의미가 참 재미있고 의미가 깊습니다. 습(習)은 바로 새가 날개를 ‘스스로(自)’ 부단히 퍼득이며 날기를 연습하는 새끼 새들의 날개짓을 뜻합니다. 새끼 새들이 창공을 자유로이 날기 위해서는 부단한 날개짓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학습의 훈련에 항구할 때 늘 생생한 하느님 기억속에 살 것입니다. 치매와 정신질환 예방에 최고의 처방이 끊임없는 학습의 자세입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부단히 배우고 익히는 학습의 공부를 사랑하며 학습의 공부에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빈무덤에서 돌아 온 여자들을 주님 부활을 알립니다. 주님 만남의 체험에 이어 선포입니다. 일단 선포가 이뤄지면 주님을 찾게 되고 언젠가 만납니다. 여자들의 선포에 반신반의하며 헛소리처럼 여겼던 사도들도 하나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는 즉시 화답하여 무덤으로 달려갔고 아마포만 놓여있는 빈무덤을 보며 일어난 일을 속으로 몹시 놀라워했으니 직감적으로 주님 부활을 알아챘음이 분명하니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부활시켜 주신 참 좋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시다. 이제부터 살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우리도 성인이 되어 부활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세상의 빛과 생명, 희망으로 살아갑시다. 이 거룩한 주님 부활 성야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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