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29.수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낮미사
사도12,1-11 2티모4,6-8.17-18 마태16,13-19
성인이 됩시다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사랑의 전사-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시편34,6)
예수성심성월 6월은 유난히 성인 축일이 많습니다. 어제 이레네오 성인 기념일에 이어 오늘은 참 자랑스러운 가톨릭 교회의 양대 기둥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있는, 지금 현존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성인입니다. 절로 기쁨과 힘을 주는 성인입니다.
어제 한달만에 갖는 예수성심자매회 모임이 참 반가웠습니다. 매달 갖는 모임인데 이번은 유달리 길게 느껴진 한달이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떠나기전 집무실에서 건장한 모습으로 들어서는 아홉자매들의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이 믿음의 여장부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삶의 영적전쟁터에서 훌륭히 믿음의 싸움을 수행해온 분들이라 더욱 반갑고 기뻤습니다.
“제가 가톨릭교회에 와서 좋았던 점은 마리아 성모님과 더불어 성인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2000년 전통에 빛나는 교회의 보물들이 성인들입니다. 기념하고 기억하라고만이 아닌 우리 모두 각기 고유한 참나의 성인이 되라고 선물로 주어진 성인들입니다. 자매님들이 성인처럼 보입니다. 3/5 쯤은 성인이 된것 같습니다.”
덕담과 더불어 잠시 말씀을 나눴습니다. 정말 각자 삶의 자리에서 분투의 노력을 다해 살아온 모습이 역력했으며 한결같이 빛나는 웃음띈 얼굴이 나이에 상관없이 참 예쁘고 아름다웠습니다. 말 그대로 예수성심의 딸답게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사랑의 전사로 살아온 자매들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참 많이도 인용했던 담쟁이 시입니다. 예나 이제나 이때쯤이면 곳곳에 왕성하게 번성하고 있는 담쟁이입니다. 담쟁이 시를 읽을 때 마다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전의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 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새 다시 시작했다.
예수성심의
초록빛 열정으로 힘차게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타오르다
가을 서리 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삶에도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초록빛 믿음, 초록빛 사랑
아, 다만 오늘 지금 여기
하늘 향해 타오를뿐 내일은 모른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다.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영성이다.”-1998.6
온통 초록빛 가득한 예수성심성월에 참 걸맞는 시입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을 색깔로 하면 이런 초록빛일 것입니다. 이렇게 각자 삶의 자리에서 분투의 노력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성인이요 제 주변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성인의, 순교영성의 DNA가 있습니다.
참기쁨도, 참행복도 성인이 되는데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목적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삶의 허무와 무지에 대한 유일한 답은 우리 각자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성인이 되어 살라고 우리에게 선사된 교회의 무수한 성인들입니다. 어떻게 성인이 됩니까? 하느님 은총과 더불어 한결같은 분투의 노력이 있어 성인입니다. 이런 사랑의 순교적 삶에 항구한 이들이 성인입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누구나 그만의 성인이 되라 불림 받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첫째, 사랑입니다.
열렬한 주님 사랑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저절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경천애인, 주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함께 갑니다. 성인들은 사랑의 대가이자 사랑의 달인입니다. 육신은 노쇄해 가도 사랑은 계속 성장, 성숙해야 합니다.
사랑은 고백해야 합니다. 성서의 언어는 대부분 사실언어이기 보다는 고백언언입니다. 끊임없이 주님께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고백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고 미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였기에 주님의 정체를 알아 이런 100점짜리 믿음의 고백이자 사랑의 고백입니다. 사랑할 때 알고 아는만큼 보입니다. 공부많이 해서 성인이 아니라 사랑많이 해서 성인이요 이런 고백입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에 이어 베드로의 고백에 감격하신 주님의 축복입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희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천국의 열쇠도 선물로 받는 베드로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베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지 깨닫습니다. 누가 뭐래든 주님 앞에 나는 덜도 더도 아닌 나일뿐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신뢰와 사랑만 받는다면 다른 무엇도 부러울 것은 없습니다.
나보다 더 잘 나를 아시는 주님이요, 나보다 더 가까이 계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알수록 참나를 알수 있습니다. 주님을 정확히 ‘그리스도’로 고백했을 때, ‘베드로’라는 참나의 신원을 선물로 받은 베드로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모르면 나도 몰라 영원한 미궁의 허무와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날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쌍벽을 이루는 사랑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은 코린토 전서 13장에서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는 바오로 사도의 유언처럼 들립니다. 주님의 전사로서 얼마나 분투의 사랑의 노력을 다했는지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분투의 사랑의 노력을 다하며 주님을 기다린 주님의 전사인 우리에게도 의로움의 화관이 마련되어 있다는, 참으로 용기백배 우리를 격동 고무시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의 마지막 믿음의 고백은 얼마나 장엄한지요! 평생을 치열하게 이렇게 살아 왔기에 이런 고백입니다. 그대로 여러분의 고백으로 삼아 마음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줄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고백인지요! 언젠가 갑자기 이런 고백이 아니라 평생 주님과 하나되어 멋지고 아름답게 살았기에 이런 멋지고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라고 모범을 보여주시니 바오로 사도가 고맙습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기도와 사랑은 함께 갑니다. 늘 초록빛 예수성심의 사랑을 위해 끊임없이, 한결같이 간절히 절실히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해야 내외적 일치요 평화요 주님의 구원입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 사도행전이 기도의 위력을, 특히 교회 공동체 기도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교회 공동체 기도에 응답한 주님의 천사의 개입으로 가능했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주님 천사의 개입으로 사지에서 구출된 베드로의 감격에 벅찬 고백도 사도의 주님 사랑과 믿음을 더욱 북돋았을 것입니다.
“이제야 참으로 나는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이어지는 시편 화답송 고백도 베드로는 구원의 체험을 통해 온존재로 실감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8-9)
주님의 기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당신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기적을 베푸시어 하루하루 사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니 저절로 샘솟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시편34,2),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당신 ‘사랑의 전사’로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 사랑의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오소서, 주님,
당신은 저희 모두이옵니다.
저희 사랑, 저희 생명, 저희 기쁨, 저희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