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27.목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1581-1660) 기념일 

코헬1,2-11 루카9,7-9

 

 

삶은 허무虛無이자 충만充滿이다

-텅빈 충만의 행복-

 

 

어제의 잠언에 이어 오늘 제1독서는 코헬렛입니다. 늘 읽어도 충격스럽게 와 닿는 코헬렛입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모두가 공감하며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내용들입니다. 코헬렛, 욥기, 아가서가 성서에 편입됨으로 참 풍부해진 성서의 세계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가슴 써늘해 지는 코헬렛의 주제입니다. 코헬렛서에서 35회 반복되는 말마디가 허무이고 이어지는 9절에서 ‘하늘 아래 새것이란 없다’란 말마디도 무려 29회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일상에서 허무의 체험을 합니다.

 

“영화는 재미있었는데 남는 것이 없다.”

이또한 일종의 허무체험입니다. 평생 재미있게 살았는데 남는 것이 없는 인생이라면 참 허무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엊그제 허무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새벽 2-4시까지 정성껏 썼던 강론을 실수로 완전 날려 버렸을 때의 절망감은 그대로 머릿속 하얘지는 허무체험이었습니다. 불같은 열정으로 다시 썼습니다만 참 막막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가까운 친지들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무수히 허무체험을 합니다. 아니 우리 존재 깊이 속속들이 스며 들어 있는 허무라는 병균들같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제 초등학교때 공부 라이벌 이었던 여자 동창생의 이름입니다. 허무춘, 생각하니 의미있는 이름입니다. 허무에 봄 ‘춘春’자입니다. 죽음을, 절망을, 어둠을 상징하는 허무虛無라면 생명을, 희망을, 빛을 상징하는 부활의 ‘춘春(봄)’이라면 허무춘이란 이름은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의 신비를 상징하는 이름도 되겠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입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오래전 수도형제들의 피정지도때 묘비명을 써 발표하도록 했을 때의 충격입니다. 적어도 긍정적인 성서 구절이 인용됐을 것이라 생각했는 데 상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한 형제의 묘비명이 바로 서두의 다음 구절이었습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지금도 충격적 체험의 느낌이 생생합니다. 또 하나의 기억은 ‘허무’라는 호를 가진 제 한 도반입니다. 얼핏보면 이상하겠지만 심사숙고의 결과임을 깨닫습니다. 허무에 답은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텅빈 충만’이란 말도 있듯이, ‘텅빈 허무’는 즉시 하느님의 ‘텅빈 충만’으로 직결되니 허무란 호는 역설적으로 충만이라 불러도 될 것입니다. 

 

중세시대의 고전인 준주성범의 저자인 토마스 아 캠피스는 삶에 대한 부정적 비관적 묘사로 가득한 코헬렛의 내용이 ‘최고의 지혜’라 극찬했습니다. 바로 이런 허무에 대한 유일한 답은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허무이자 충만이다–텅빈 충만의 행복-’오늘 강론의 주제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허무입니다. 허무의 늪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삶의 허무감과 무의미감이 젖어들면 무의욕, 무감각, 무절제, 무기력이 온통 뒤따릅니다. 매사 의욕을 잃고 부정적 비관적 인생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오늘 코헬렛은 주제에 이어 머리말로 끝납니다. 삶의 반복의 바로 허무의 본질임을 말합니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일상의 거의 모두가 단조로운 반복입니다. 단조로운 반복으로 말하면 평생 언제나 여기에서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보다 더한 이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반복은 무미건조한 따분한 반복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반복이요, 내적으로 깊어지는 반복입니다.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늘 새하늘과 새땅의 삶입니다.

 

허무주의자들에게는 삶의 중심도 삶의 의미도 없습니다만 우리 믿는 이들은 하느님이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기에 늘 새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상의 늪, 허무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를 바치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 은총이 허무를 충만으로 바꿔버립니다. 말 그대로 살기위해, 허무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삶의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다음 화답송 시편도 이를 입증합니다.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4와17).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어찌보면 삶의 허무는, 삶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삶의 허무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바로 응답하여 하느님을 선택할 때 삶의 허무는 삶의 충만이, 고해인생은 축제인생이 됩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가톨릭 교회의 성인들입니다. 

 

텅빈 창공의 허무를 영롱한 별빛으로 충만히 채우는 하늘의 별들 같은 성인들입니다. 희망의 표지, 회개의 표지, 삶의 이정표같은 성인들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빈첸시오 역시 하느님과 인간을 섬기면서 80세 까지 허무한 인생이 아닌 충만한 인생을 사셨던 분입니다. 

 

오늘 두려움과 불안에 싸인 복음의 주인공 헤로데는 전형적 허무주의자처럼 보입니다. 그가 삶의 중심이 확고했더라면 무죄한 세례자 요한을 죽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현에 전전긍긍 중심을 잡지 못하고 혼란 중에 방황합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보려 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화두처럼 던져지는 물음입니다. 새삼 허무에 대한 유일한 답은 파스카의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허무의 어둠을 말끔히 몰아내시고, 우리 모두 당신 안에서 삶의 중심과 질서를, 삶의 균형과 조화를 이뤄주시어 생명과 사랑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 다음 화답송 후렴도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임을 입증합니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시편90,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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