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빔(anawim)의 영성 -노래와 삶-2021.12.14.화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1542-1591)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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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4.화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1542-1591) 기념일

스바3,1-2.9-13 마태21,28-32

 

 

아나빔(anawim)의 영성

-노래와 삶-

 

 

강론 제목부터 알려드리고 강론을 시작합니다. 바로 “아나빔의 영성-노래와 삶-”이 강론 제목입니다. 스바니야 제1독서에 관한 영문주석을 읽던중 오랜만에 만난, 제가 참 좋아하는 말마디에 반가웠습니다. 히브리어 발음 그대로 하면 “아나빔(anawim)”으로 온전히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진정 믿는 자들은 아나빔의 후예이자 순교자들의 후예라 할 수 있습니다. 아나빔 영성을, 순교 영성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스바니야 예언자의 질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느님의 실망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여기서 뚜렷이 부각되는 믿음에 따른 삶의 네가지 중요한 자세가 드러나니 1.말씀을 듣기, 2.교훈을 받아들이기, 3.주님을 신뢰하기, 4.하느님께 가까이 가기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의 자세를 가진 남은 자들이 바로 아나빔으로 전반부 “불행하여라”의 타락한 백성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후반부의 ‘남은 자들’인 아나빔입니다. 여기에는 “행복하여라”는 말씀을 붙여 읽고 싶습니다.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행복하여라,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하느님 친히 보호자가 되어 지켜 주시는 가난하나 역설적으로 행복한 부자들이 아나빔입니다. 실상 깊이 들여다보면 가난은 인간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인생사고人生四苦가 가난한 인간존재임을 웅변합니다. 인생무상人生無常, 언젠가 사라질 인간 존재 자체가 가난하고 가련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샘솟는 연민과 존중입니다. 그러니 산상수훈의 “행복하여라”로 시작되는 행복선언은 바로 아나빔을 대상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나빔의 자랑스런 후예들로 내적으로 행복한 부자들인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한 내적인 부자들이 아나빔입니다. 가난한 생활비를 몽땅 바친 가난한 과부가 바로 이런 전형적 아나빔입니다. 문득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70대 중반의 노수녀님으로 한달 한 번 순례하는 마음으로 고백성사차 수도원을 찾는 분인데 면담성사중 공동생활의 어려움과 더불어 저한테 어떻게 오랜 동안 정주 공동생활을 해왔는가 물었고 저는 즉시 답변을 드렸습니다.

 

“유혹에 빠져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않았고, 태풍은 미풍으로 바꾸며 살아왔으니 이 또한 은총입니다. 유혹에 빠져 화내고 성냄으로 순식간에 미풍을 태풍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은 얼마나 많은지요! 지극한 인내의 사랑으로 태풍도 미풍으로 바꿔버렸으니 바로 지혜의 은총입니다.”

 

바로 여기서 결정적 도움의 역할을 하는 것이 공동전례 시편 노래의 힘입니다. 시편 노래의 힘과 아름다움은 전례의 힘과 아름다움이며 하느님의 힘과 아름다움입니다. 정말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가톨릭 교회의 전례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아나빔의 영성에 시편 기도와 노래가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깨닫습니다. 사실 찬미와 감사의 시편기도노래보다 영육의 건강에 좋은 처방의 약은 없습니다. 제가 한달 이상 아침 산책중 부르는 ‘바다’라는 동요도 마음을 순수하게 하는 느낌입니다. 나이 70을 훌쩍 넘으니 동요의 진가를 알겠습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행복도 선택이요 만들어가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은 49세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참 가난한 시련의 삶을 살았던 사랑의 신비가이자 시인이었던 스페인 출신의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이분의 대표적 작품이자 영성신학의 고전인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어둔밤’ ‘영혼의 노래’ 모두가 결코 안락한 온실溫室이 아닌 차가운 옥중獄中 체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그대로 아나빔의 후예인 성 요한이 가난에 무너지거나 망가지지 않고 건강한 신비 영성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음은 시의 힘, 노래의 힘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 대선 후보에 대한 ‘생존자’라는 표현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성 요한 역시 하느님의 생존자라 칭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가난과 박해의 삶이 성인을 비참한 사람으로 만드는 대신 따뜻하고 연민 가득한 신비가로 탄생시켰으니 바로 시와 기도와 노래의 힘이요 하느님의 힘임을 깨닫습니다. 적극적 사랑 실천을 권하는 성인의 말씀입니다.

 

“누가 거친 행위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사람들을 설복說服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놓아라. 그러면 너는 사랑을 발견할 것이다.”  

 

참 놀라운 것이 노래의 힘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끝내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노래의 힘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유래하는 무수한 동요와 민요가 있습니다. 중국의 305편의 시경도 일종의 가난한 이들의 민요 모음집입니다. 공자는 시삼백詩三百이면 사무사思無邪라 시편을 노래하는 이들의 마음의 순수를 인정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곳곳에 민초들을 견뎌내고 버텨내 생존케 한, 한풀이 민요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우리 기도교과서인 시편의 노래는 참으로 자랑스럽고 고맙게도 부정적 한풀이 노래들이 아니라 대부분 찬미와 감사의 시편으로 빛과 생명과 희망이 가득한 우리 영혼을 치유하고 고양시키는 긍정적 노래들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에서 선한 실천도 나오지만 반대로 선한 실천의 습관이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선한 행위들과 더불어 결정적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가 평생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시편기도와 미사 공동전례 수행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마음을 다해 시편기도 노래의 은총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겸손하고 가난하고 순수한 영혼의 아나빔으로 변형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했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중 우리가 주목하는 아들은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회개하여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맏아들입니다. 바로 여기서 맏아들이 지칭하는 대상은 분명히 전형적 아나빔인 소외받은 가난한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당대 종교 지도자들과 기득권에 속한 이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외관상 죄인들이지만 내적으로 가난하고 순수하고 겸손한 아나빔인 세리와 창녀들이기에 회개도 신속합니다. 참으로 알게 모르게 아나빔의 노래인 시편을 많이 노래했을 세리와 죄인들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나빔의 유일한 자산은 그들이 함께 부르는 시편기도 노래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바치는 시편은 거의가 “없는 이들”인 가난한 아나빔이 “있는 분”인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주셨네.”

화답송 시편 후렴의 가련한 이가 바로 아나빔이요, 이어지는 시편34장 역시 아나빔의 노래기도입니다.

 

우리가 아침성무일도 마지막에 바치는 즈카르야 찬가와 저녁성무일도 마지막에 바치는 마리아 찬가도 그대로 아나빔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러니 끊임없는 회개와 가난과 겸손, 희망과 신뢰의 아나빔 영성에 시편성무일도와 이 거룩한 미사 공동전례가 얼마나 결정적 도움이 되는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우리 모두 날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힘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아나빔!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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