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5.연중 제31주일
말라1,14ㄴ-2,2ㄴ.8-10 1테살2,7ㄴ-9.13 마태23,1-12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독서와 회개, 사랑과 진실, 섬김과 겸손-
“주님, 제 영혼을 당신의 평화로 지켜 주소서”
화답송 후렴이 잔잔한 위로를 줍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자 수확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은 더욱 기도에 박차를 가하는 달입니다. 참으로 기도해야 할 때이고 공부할 때입니다. 구체적으로 독서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밤 12시30분 일어나 수도원 숙소 입구문을 열고 나오며 맨먼저 바라보며 확인하는 불암산 정상이요 하늘의 별들입니다. 이어 집무실에 들어와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바치는 만세육창의 기도입니다. 나라와 세계가 어지러워 8월15일 광복절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앞으로도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계속될 “만세육창”기도입니다. 나뭇가지처럼 양손을 번쩍 들면 “기도하는 나무”가 되고 운동도 되어 참 기분이 상쾌합니다.
저에겐 요즘 계속되는 맨발걷기 운동도 기도입니다. 천국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기도입니다. 제15처 십자가의 길을 아십니까? 수도원 십자가의 길 14처가 끝나는 자리 계단을 올라가면 성전옆에 제 집무실, 암자가 있고 저는 일컬어 15처 “예수님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라는 기도처이자 부활의 집, 천장암, 지족암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아침식사후 맨발로 부활의 집, 천장암 집무실에서 십자가의 길 역순으로 걷다가 주차장부터 수도원 정문까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하늘길을 걸어갔다가 다시 하늘길을 걸어 십자가의 길을 걸어 부활의 집, 집무실에 걸어오면 약20분 소요의 맨발걷기와 침묵의 기도시간을 갖게 됩니다.
제 집무실로 면담성사차 오시는 분은 하늘길과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여 부활의 집 집무실에 오는 것이니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여정인 것입니다. 이런 묵상이 참 행복하게 하며 걷는 운동은 그대로 깨어 기도하는 시간으로 만듭니다. 이처럼 살아가는 것도 참 멋지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저는 서울주보 1면 “생명의 말씀”이란 구요비 주교님 글의 시작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꼭 오늘 강론에 인용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대로 인용합니다.
“일본에서 선교중인 신부님 한분이 휴가차 오셔서 들려준 이야기기가 심금을 울립니다.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나 심지어 시골의 아주 작은 마을에도 ‘서점’들이 있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습니다! 청소년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주말에도 등교하여 자유롭게 다양한 운동과 예능활동을 하며 자기계발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순간 일본의 건강한 사회 분위기가 부러워 질투심까지 들었고 우리의 병든 사회 분위기가 부끄러웠습니다. 나라 곳곳 어디가나 먹자판 음식점이요 이렇게 음식점 많은 나라도 세계에 없을 것입니다. 아, 먹는 돈을 일부 책을 사서 읽는다면, 곳곳에 많은 음식점과 더불어 서점의 책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먹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책을 사보거나 책을 읽는 데 시간 투자에는 얼마나 인색한 사람들인지요! 육신의 욕망을 채우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영혼을 돌보는 독서와 공부에는 인색한 것, 이것은 분명 건강한 분위기가 아니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독서와 관계되는 문화강국에 국력이란 생각도 떨처버릴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말씀은 주로 종교지도자나 사회지도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일반인들로 소급해도 좋다 생각되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반적으로 다룹니다.
첫째, 독서하라!
일본의 경우를 보면서 맨먼저 강조해야할 것이 독서요 공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서와 공부의 선택과 훈련 그리고 습관화입니다. 평생 독서요 공부요 영혼을, 정신을, 마음을 돌보며 내적시야를 넓히는 것입니다. 공부중 정말 필요한 평생 공부가 하느님 말씀 공부입니다. 정말 공부하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생각없는, 영혼없는 괴물같은 삶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이라면 매일미사전례문도 평생독서와 평생교육에 좋으니 매일 평생 읽으며 묵상하기를 권합니다. 가능하면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이 아닌 책을 보기를 권합니다. 미사시간 책대신 휴대폰을 보는 모습은 참으로 인간품위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위로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위로 보고 배울, 희망의 표지가 될 어른이나 지도자가 많아야 젊은이들이 희망을 지니고 의욕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보고 배울 독서하는 공부하는 희망을 주는 정신 건강한 어른들이나 지도자들이 절실한 시절입니다. 믿는 이들은 평생 학인입니다. 죽어야 졸업인 평생학인으로 독서와 공부의 훈련과 습관에 초점을 두시기 바랍니다. 이런 독서와 공부가 회개를 촉발시키기도 하며 정신을, 삶을 일신시킬 것입니다.
둘째, 회개하라!
자기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의 삶의 전환입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에 돌아와 제정신으로 제대로 사는 것이 회개입니다. 삶은 회개의 여정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의 삶, 영혼 건강의 삶입니다. 병든 사회, 병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희망을, 길을, 빛을 잃으면 병들기 마련이요 회개를 통해 희망을, 길을, 빛을 찾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바로 궁극의 희망이요 길이요 빛입니다.
제1독서 말라키는 탈선한 사제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일반인들보다 지도자들의 회개가 절실, 절박하지만 모두가 회개의 삶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계속해서 엄중한 경고를 발하십니다.
“자, 이제 사제들아, 너희가 말을 듣지 않고, 명심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너희는 레위의 계약을 깨뜨렸다. 나도 너희가 온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리라. 너희는 나의 길을 걷지 않고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며 조상들의 계약을 더럽히는가?”
참으로 지도자들의 타락과 범죄, 나태가 망국의 원인입니다. 누구보다도 각계각층 지도자들의 각성이, 회개가 절박한 우리나라의 현실이요 일반신자들 역시 회개에는 예외가 아닙니다.
셋째, 사랑하라!
회개의 열매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일행이 지도자들의 모범입니다. 지도자들뿐 아니라 각자 삶의 자리에서 이런 사랑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모범적인 사랑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고귀하여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나눴을 뿐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사랑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사제들의 이런 사랑이라면 그대로 신자들도 보고 배웁니다. 지도자들의 모범적 사랑은 신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지도자들이 부실하다해도 믿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이런 사랑의 실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진실하라!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언행불일치의, 표리부동의 위선적 지도자들을, 허영의 지도자들을 질책하십니다. 일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뿐만 아니라 위선적이고 허영 가득한 우리 인간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안팎이,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도, 두려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참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운점 없는 진실한 삶 자체가 힘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허영의 외적인간입니다. 속이 텅 빈 정말 생각이 없는 피상적 천박한 사람들입니다.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사람들, 알맹이의 삶이 아니라 껍데기의 삶, 본질적이 아닌 부수적인 것에 노예된 삶, 진아眞我가 아닌 가아假我의 참 공허한 삶입니다.
다섯째, 겸손하라!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할 것이니 우리의 스승은 한 분, 주님이시고 우리는 모두가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 것이니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입니다. 또 선생이라고 불리지 말아야 하나니 우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우상을 삶의 중심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아버지를, 그리스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평등하고 자유로운 형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각이 저절로 겸손에로 이끌어 줍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섬기는 삶, 겸손한 삶에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높은 사람을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과 섬김의 영성이요,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일 것입니다. 사랑의 섬김, 사랑의 겸손입니다. 참으로 섬김의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사람이요 주님께서 그를 높여주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독서와 회개, 사랑과 진실, 섬김과 겸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삶의 중심에 이런 삶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자리하고 계십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주님을 닮아가면서 이런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13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