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23.월요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에즈1,1-6 루카8,16-18

 

 

 

내 삶의 성경책 ‘렉시오 디비나’ 하기

-하느님 중심의 삶-

 

 

 

얼마전 우리는 렉시오 디비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우리말 번역으로 성독, 성서독서, 또는 거룩한 독서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뜻을 충분히 살릴 수 없어 라틴어 원어 그대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그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성독의 우선적 1차적 대상은 신구약 성서입니다만 제 지론은 성독의 개념을 확장하여 여기에 ‘자연성서’와 ‘내 삶의 성서’ 둘을 추가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활동하시며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또 우리 삶을 통해서 무수한 진리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독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는 내 삶의 성경책입니다. 내 삶이야말로 고유의 살아있는 성경책이라는 것입니다. 나뿐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모두가 잘 들여다 보면 하나의 고유의 성경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귀중한 진리를 잊고 지냅니다. 다음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를 읽으면 사람 하나하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람입니다. 특히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그 자체로 참 좋은 살아있는 성경책입니다. 바로 하나하나의 삶이 굽이굽이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죄가 점철되어 있는 고유의 살아있는 삶의 성경책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 없듯이 똑같은 삶의 역사도 없습니다. 한솥밥을 먹는 한가족의 수도형제들도 다 그만의 고유한 삶의 역사를 지닙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은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입니다. 내 삶을 하느님이 ‘주어主語’이신 하나의 살아있는 성경책으로 대할 때 참으로 내 삶을 소중히 여길 것이며 하루하루 정성껏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주님과 함께 한쪽씩 써나갈 것입니다. 결코 생각없이 함부로 되는대로 막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이 끝나 하느님 앞에 갔을 때는 내 삶의 성경책을 하느님 앞에 드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기다릴 것입니다. 

 

하여 바로 믿는 이들에게 각자 자기 삶의 성서를 렉시오 디비나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물론 이에 앞서 필히 전제되는 바 신구약성서의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참으로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내 삶의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내 나이 곱하기 365일 하면 내 삶의 성서 쪽수가 나옵니다. 아직은 미완의, 죽어야 끝나는 하루하루 하느님과 내가 써나가야 할 내 삶의 성서책입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180도 발상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삶의 문장의 주어를 ‘내’가 아닌 ‘주님’을 넣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수도원에 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보내 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이요, ‘내가 수녀원 피정지도차 왔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이 주어主語인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분들이 예수님을 비롯한 성서의 인물들이며 교회의 성인들입니다. 하여 이분 성인들의 전기를 읽으면 그대로 성서를 읽는 느낌이 듭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하느님 섭리의 인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역시 그러합니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수도사제인 비오 신부는 1918년부터 세상을 떠난 1968년 까지 무려 50년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지닌 채 고통중에도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섬기며 사셨다 하니 그대로 고유의 성서같은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주어가 아닌 하느님이 주어인 삶의 문장은 바로 내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삶임을 뜻합니다. 이런 자각에서 자신을 상대화하여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겸손에 자유로운 삶이요, 하느님 섭리에 대한 깨달음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찬양과 감사입니다. 

 

대부분의 시편 성서는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섭리의 깨달음에서 나온 믿음의 고백, 사랑의 고백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는 깨달음의 겸손한 고백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 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 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 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문장의 주어는 주님이요, 온통 주님의 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시편 전부가 그러합니다. 바로 오늘 시편 고백의 근거가 되는 1독서 에즈라기입니다. 그대로 주어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하느님의 살아있는 도구가 된 키루스는 자기 삶의 주인은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대로 하느님이 키루스 삶의 중심이 되었음을 봅니다. 이어지는 그의 하느님 고백입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내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삶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 끊임없는 회개, 끊임없는 렉시오 디비나 수행은 필수입니다. 참 겸손은 내 삶의 문장에 ‘내’가 아니 ‘주님’이 주어가 될 때 비롯하며 이래야 진정 삶의 성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깨달음의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의 잠언과 같은 깨달음의 지혜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등불은 등경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말씀의 빛’ 등불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느님 앞에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가 마련이니 참으로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앞에 진실하게 순수하게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살라는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보아주지 않아도 하느님은 알아주시고 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여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고백했던 것입니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적 풍요로운 삶을 위해 방심, 나태, 자만하지 말고 겸손히 우보천리牛步千里 자세로 항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이 잠언같은 모든 말씀은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선사된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만일 내 삶의 책에 하느님이 없고 온통 내가 주어뿐인 삶이라면 얼마나 어둡고 답답한 무지의 삶이겠는지요! 희망도 기쁨도 평화도 자유도 감사도 감동도 감탄도 놀라움도 새로움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인도하시며 각자 고유의 삶의 성서를 잘 써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잠시 주님 안에서 내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하는 복된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09.23 07:38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서 주신 저희의 삶을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잘 써갈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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