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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25.연중 제25주간 수요일                                                                       에즈9,5-9 루카9,1-6

 

 

 

주님의 제자답게 삽시다

-친교, 가난, 복음선포-

 

 

 

가난한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 가난한 부자라니 참 모순적이고 역설적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가난해도 부유하게 또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핑계대거나 변명할 것 없이 정말 이렇게 가난해도 부유하게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살 수 있습니다. 정말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문득 ‘행복기도’중 떠오른 대목입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기쁨/평화/감사/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멀리 밖에서가 아닌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어제도 여러 고마운 분들에게 메시지와 더불어 아름다운 사진을 선물했습니다. 사제관 옆 언덕 뜨락 예수님상을 배경한 은은하고 청초한 하얀 가을 야생화 구절초꽃들이 흡사 하늘에 흰 별 무리처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흡사 땅이 흰 별들 수놓은 하늘처럼 보입니다. 

 

또 파란 하늘 배경한 성모님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역시 고마운 분들과 나눴습니다. 저는 누구든 막론하고 서두에 형제든 자매든 ‘사랑하는---’이란 말마디를 꼭 꼭붙이며 사랑을 다짐하며 확인합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예수님 위로인사 받으시고 힘내세요.”

“사랑하는 형제님, 성모님 축복인사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전송했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소통이요 사랑의 대화요 사랑의 친교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 제가 늘 마음에 새기는 말마디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의 사랑이, 배움에 대한 사랑이 끝없는 사랑을 샘솟게 합니다. 참 중요하고 절실한 말마디입니다. 무지의 어둠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갈망이 배움에 지치지 않게 합니다. 

 

삶은 평생 배움의 여정입니다. 참으로 배움을 사랑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여 알고 나를 사랑하여 알아갈 때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이요 자유롭고 행복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입니다. 참 자유롭고 행복한 삶은 무지에서 벗어나 주님의 제자답게 살 때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 수 있고 또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첫째, 친교의 삶입니다.

친교의 관상, 친교의 사랑입니다. 주님과의 친교요 형제들과의 친교입니다. 모든 활동과 활력의 원천이 이런 친교의 사랑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께 찬양을 드리는, 회개와 더불어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친교시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친교의 시간입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제자들을 친교의 사랑중에 내적으로 충만케 하시어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바로 이것이 주님과 친교의 선물이자 은총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일치의 친교를 통해 영육으로 치유되고 충전되는 우리들입니다. 수도원을 영적 주유소, 영적 충전소라 일컬으며 자주 수도원을 찾는 어는 교구 사제도 생각납니다.

 

“영원히 살아계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화답송 후렴처럼 하느님 찬미의 친교가 우리에겐 치유와 위로가 되고 한없는 축복이 됩니다. 제1독서 에즈라 역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회개와 더불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주님과 친교의 시간을 갖습니다. 참으로 진정성 가득한 에즈라의 기도 일부를 인용합니다.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죄악은 머리 위로 불어났고, 저희 잘못은 하늘까지 커졌습니다.---정녕 저희는 주님의 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회개와 감사가 없는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참으로 주님과의 친교시간에 필히 할 일은 진정한 회개와 감사와 찬양임을 깨닫습니다. 이 때 주님은 당신 친히 축복과 은총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십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 친교 시간의 은총입니다.

 

둘째, 가난하고 겸손한 삶입니다.

참으로 친교를 사랑하고 가난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친교의 은총이 자발적 가난입니다. 친교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삶입니다. 하느님이란 살아있는 참 보물을 삶의 중심에 모셨기에 이런 자발적 가난이요 이탈의 삶입니다. 저절로 하느님 섭리의 은총에 맡기며 최소한의 소유에 만족하는 무욕의 삶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런 가난한 사람들은 바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원망이나 저주의 가난이 아니라 겸손한 가난일 때 빛나는 가난입니다. 어제 수녀님이 들려준 일화도 잊지 못합니다. 면형도 무아도 ‘겸손’이라는 창설자 신부님의 가르침이라 합니다. 좌우명처럼 주신 덕담도 잊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수녀는 천주님이 귀여워 하시니 겸손해야 한다. 교만해서 안된다.”

 

참으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 자체가 주님의 빛나는 증언이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수록 겸손한 삶입니다. 문득 제 좋아하는 한자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검이불루儉而不陋(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이불치華而不侈(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마디로 백제인의 미학이고 조선왕조의 미학이고 한국인의 미학을 나타내는 말이라 합니다. 

 

바로 주님의 제자로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이 지향하는 바로 이런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미학의 아름다운 삶일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이르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참으로 가난한, 가벼운 몸차림으로 떠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님만을 신뢰하며 하느님의 나라 선포라는 본질적 삶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자유로운 존재의 기쁨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빈그릇이 되어 하느님 은총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을 찾는 본질적 삶에 충실할 때 단순소박한 가난과 겸손의 삶이요, 부족한 것은 하느님이 다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복음선포의 삶입니다.

바로 이것이 본질적 삶입니다. 친교와 가난에 이은 최종 목표지점입니다. 복음선포의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 존재이유입니다. 친교의 열매가 선교입니다. 참된 친교는 선교를 낳고 참된 선교는 친교를 갈망합니다. 그러니 친교도 사랑하고 가난도 사랑하고 복음 선포의 선교도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이 복음 선포입니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함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은 물론 우리 믿는 이들의 평생 화두이자 꿈이자 비전이자 희망입니다. 꿈이, 비전이, 희망이 있어야 건강히 살 수 있는 사람이요 타락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함이 복음 선포입니다. 제자들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 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었다 합니다.

 

바로 제자들 삶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었음을 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치유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친교의 삶, 가난하고 겸손한 삶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자 복음선포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 저는 감히 말합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내 자신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살자고 말입니다.

 

문득 생각나는 영어 짧은 말마디가 있습니다. 

“As you are, So is the world”, 바로 “네 정도만큼의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살 때 비로소 도래하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제자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친교의 삶, 2.가난하고 겸손한 삶, 3.복음선포의 삶입니다. 우리 하나하나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저절로 세상은 밝아지고 치유도 뒤따를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살라고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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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9.25 10:02
    사랑하는 주님, 매일 주시는 주님 사랑의 표징인 오늘 9월25일,
    주님사랑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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