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9.9.29.연중 제26주일                                      아모6,1ㄱㄴ.4-7 1티모6,11ㄱㄷ-16 루카16,19-31

 

 

 

회개의 여정

-불행, 회개, 행복-

 

 

 

삶은 여정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무의미한, 목적지 없는 여정이 아니라  하느님께로의 여정입니다. 이것은 제가 4년전 산티아고 순례 여정에서 분명히 확인한 사실입니다. 800km 2000리, 산티아고 대성전 목적지야 30일 전후지만 하느님의 집 목적지로야 평생입니다. 

 

우리의 평생 인생 순례 여정은 죽음으로 아버지의 집에 귀가할 때 끝납니다. 얼마전 인용한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란 시가 다시 생각납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갔다는 귀천歸天이나 개신교에서 흔히 쓰는 하느님께서 부르셨다는 소천召天이나 다 죽음을 뜻하는 말마디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과연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인생 순례 여정 끝나고 아버지의 집에 귀가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요. 요즘 참으로 마음 가는 말마디가 ‘아름다움’입니다. 하여 아름다운 장면이 발견될 때는 카톡사진을 찍게 됩니다. 누구나의 공통적 바람은 아름다운 삶일 것입니다. 

 

새삼 깨닫는 것은 사랑과 아름다움의 관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온통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은 하느님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대중가요도 있듯이 사랑하면 아름다워집니다. 그러니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때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여 하느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사랑의 이중 계명입니다. 참으로 아끼지 말고 고백해야 할 말마디는 사랑입니다. 저도 그래서 의식적으로 메시지를 보낼 때는 ‘사랑하는’이란 말마디를 붙입니다. 그러니 못마땅해 하는 마음, 부정적인 마음도 없어지고 실제 예쁘게,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뿐이 답이, 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사랑입니다. 참으로 인생도 사랑할 때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며 살다가 아버지께 갔을 때 세상 살이 아름다웠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해야 하고 용기를 내어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할 때 알고 닮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아름다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의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찬양입니다. 사랑의 찬양입니다. 하느님은 정말 좋으신 분 내 영혼 언제나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에서 고백하는 하느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요!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눈 먼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시네.”

 

바로 이런 하느님을 사랑하여 닮아가는 회개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도, 오늘 말씀이 의도하는 바도 회개입니다. 엊그제는 함께의 여정, 어제는 믿음의 여정, 그리고 오늘 강론 주제는 회개의 여정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세 부분에 걸쳐 묵상했습니다. 

 

첫째, “불행하여라!”입니다.

오늘 제1독서 아모스 예언서의 서두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를 들여다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탄식입니다. 예나 이제나 자기뿐이 모르는 이기적 무지의 탐욕의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탄식입니다. 어느 말마디 하나 생략할 수 없이 우리 마음을 칩니다. 우리 마음마다 정도의 차이일뿐 이런면이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 먹는다.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그대로 무지한 탐욕스런 부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눈먼 향락이요 타락입니다. 결과는 파멸입니다. 재물의 부가 얼마나 사람들을 망가뜨리는 마성을 지녔는지 깨닫습니다. 이래서 수도자의 청빈서원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부자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향락으로 기울어지는, 탐욕으로 기울어 지는, 우리 육적 경향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며 단순소박한 삶을 살라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얼마나 많습니까! 일회용으로 버려지는 아까운 것들을 얼마나 많습니까! 참으로 곳곳에서 인류 종말의 징후가 나타납니다. 기후변화의 주범이 바로 우리의 부분별한 낭비와 소비의 삶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뿐이 지구, 공동의 집에 불이 났다는 엄중한 상황입니다. 빨리 초기에 진압해야 하는데 뜻대로 안되는 현실, 이 또한 생태적 회개를 촉구합니다. 

 

둘째, “회개하여라!”입니다.

아주 자연스런 결론입니다.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은 회개뿐입니다. 하느님께 돌아가는 길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가 바로 아모스 예언자의 지탄이 대상이 된 부자입니다. 그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반면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 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으며,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습니다.

 

너무나 생생한 장면입니다. 부자는 생각이 없는 무사유의 사람입니다. 영혼이, 영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느님도, 이웃도 없습니다. 유의할 바 부자는 이름이 없는 무명無名이라는 것이며 그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름은 지닌 가난한 라자로입니다. 라자로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보호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눈에 부자지 하느님 눈엔 일고의 가치도 없음을 상징합니다. 탐욕에 중독되어 자기를 잃었으니 정말 존재감없는 부자입니다.

 

악은 무사유에 기생합니다. 부자에게 라자로는 사람도 아닙니다.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 무사유의 전형인 부자요 완전 인간성의 상실입니다. 완전히 부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어찌보면 라자로는 하느님이 부자에게 주신 구원의 숙제일 수 있는 데 완전히 잊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 배려, 공감이 전무합니다. 둘 사이의 골이 너무 깊습니다. 서로 돕고, 주고, 나누고, 섬기고, 떠받히고, 보살피라 있는 이웃인데 완전히 남남입니다. 

 

함께의 여정인데 ‘함께’가 없고, 서로의 관계는 없고 완전 고립단절된 ‘혼자’ 상태입니다. 참 무섭게 변질된 괴물의 모습인 부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부자는 이것도 모르니 참 무지의 병이 무섭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살아있을 때 회개이지 죽어선 회개도 없습니다. 살아있을 때 기도이지 죽어선 기도도 없습니다. 살아있을 때 사랑이지 죽어선 사랑도 없습니다. 살아있을 때 찬미이지 죽어선 찬미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후 고통중인 부자는 부르짖습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그러자 하느님을 대신한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미룰 수 없는 회개입니다. 우리 삶은 전 생애가 회개의 여정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방향을 돌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회개하라 주어진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성경말씀도, 이 거룩한 미사도, 어려움중에 있는 이웃도 모두가 회개하라 주어진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변명이나 핑계의 여지가 없습니다. 

 

참으로 불치의 병과도 같은 무지의 병에 유일한 예방제이자 치유제는 회개뿐입니다. 무지의 악에서 기인한 탐욕, 교만, 분노, 어리석음 등 끝이 없습니다. 끊임없는 회개가 있어 겸손과 온유, 지혜와 자비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없이는 회개도 겸손도 온유도 지혜도 자비도 없습니다. 

 

하느님 없이는 도저히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평생공부가 하느님 공부입니다. 회개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아 무지에서 해방되니, 참으로 청해야 할 바 유일한 것이 회개의 은총입니다. 평생 복음의 부자처럼 자기 감옥속에 갇혀 하느님도 모르고 회개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무지의 탐욕과 교만속에 그 귀한 인생 마친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억울하겠는지요!

 

셋째, “행복하여라!”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행복선언에서 보다시피 우리의 참 행복을 바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행복하여라, 회개하는 사람들!” 회개할 때 주님의 행복선언을 체험할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이웃을 사랑할 때 회개이니 사랑의 회개입니다. 그러니 회개의 여정에 충실할수록 더욱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입니다. 

 

회개의 여정과 함께 가는 기쁨과 평화, 사랑과 아름다움, 행복과 자유입니다. 회개만이 참으로 무지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길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행복한 삶에 대한 구체적 처방을 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이자 하느님의 사람인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참행복의 처방입니다. 이 또한 회개의 열매들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새삼 계명을, 말씀을 실행할 때 참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주님도 “행복하여라!” 우리 모두에게 행복을 선언하실 것입니다. 역시 사랑이 답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고 계명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실천할 것이고 이어 아름답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09.29 07:57
    사랑하는 주님, 사랑하면 사랑스러워 지고 마침내 사랑하는 선물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선물 저희가 잘쓰고 가꾸어 세상을 주님사랑으로
    만들게 하소서.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63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2015.1.28. 수요일(뉴튼수도원 79일째) 프란치스코 2015.01.28 370
3362 하느님 체험 -놀라움, 고마움, 새로움-2015.1.29. 연중 제3주간 목요일(뉴튼수도원 80일째) 프란치스코 2015.01.29 425
3361 내적성장: 2015.1.30. 연중 제3주간 금요일(뉴튼수도원 81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1.30 376
3360 믿음의 사람들-믿음 예찬-2015.1.31. 토요일(뉴튼수도원 82일째) 프란치스코 2015.01.31 477
3359 거룩한 삶, 권위있는 삶-거룩함 예찬-2015.2.1. 연중 제4주일(뉴튼수도원 83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01 364
3358 봉헌의 축복: 2015.2.2. 월요일(뉴튼수도원 84일째) 주님 봉헌 축일 프란치스코 2015.02.02 450
3357 믿음의 여정(旅程) -삶은 기도요 믿음이다-2015.2.3. 연중 제4주간 화요일(뉴튼수도원 85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03 396
3356 빛의 순례- 2015.2.4. 연중 제4주간 수요일(뉴튼수도원 86일째) 프란치스코 2015.02.04 293
3355 떠남의 여정- 2015.2.5. 목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3 프란치스코 2015.02.04 748
3354 천국에서 천국으로 -한결같은 삶-2015.2.6. 금요일(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원 피정 2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06 864
3353 환대(歡待)의 성모 마리아-환대 예찬-2015.2.7. 토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 3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07 885
3352 선물인생, 축제인생- 2015.2.8. 연중 제5주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4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08 543
3351 귀향(歸鄕:coming home)의 여정- 2015.2.9. 연중 제5주간 월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 5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09 488
3350 존엄한 품위의 삶-하느님의 자녀답게-2015.2.10. 화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6일째)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5.02.10 623
3349 발효(醱酵)인생 -무념(無念)-2015.2.11. 연중 제5주간 수요일(성모영보수녀원 7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11 531
3348 믿음의 승리- 2015.2.12. 연중 제2주간 목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8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12 481
3347 사랑 예찬 -함께하는 사랑, 사랑의 기적- 2015.2.13. 연중 제5주간 금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9일째) 프란치스코 2015.02.13 435
3346 감사와 찬미 -제자리에로의 귀환(歸還)-2015.2.14. 토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869)와 성 메토디오 주교(+885)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5.02.14 345
3345 가난한 순례자- 2015.2.15. 연중 제6주일 1 프란치스코 2015.02.15 201
3344 하느님 마음 헤아리기-아담의 일생-2015.2.16. 연중 제6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15.02.16 26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0 Next
/ 170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