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삶의 시작 -죽음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다-2020.7.13.월요일 고故 이 정우 바오로 수사(1933-2020)를 위한 위령미사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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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3.월요일 고故 이 정우 바오로 수사(1933-2020)를 위한 위령미사

2코린4,14-5,1 마태11,25-30

 

 

 

새 삶의 시작

-죽음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다-

 

 

 

“주님, 그에게 낙원의 문을 열어 주시고, 죽음이 없는 곳, 영원한 기쁨이 넘치는 본향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입당송 후렴이 마음에 무한한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청의 묘지 양쪽 입구에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죽지만 내일은 네가 죽는다’라는 뜻으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와 비슷한 말입니다.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는 규칙에서 수도형제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막수도자들 역시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품고 살았던 금언입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 때 온갖 환상에서 벗어나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삶을 삽니다. 일일일생,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삽니다. 바로 이렇게 사시며 우리 요셉 수도원 수사들의 전폭적 사랑과 신뢰를 받던 이 정우 바오로 수사님이 어제 만87세, 우리 나이 88세로 선종하셨습니다. 참 좋으신 주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래뵈도 팔팔합니다.”

 

88세 나이와 겹치는 발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이들어 몸은 노쇠해도 마음은 여전히 젊어 하느님 찾는 열정과 순수의 수도자임을 반영하는 말마디입니다. 참으로 공동체에 짐이 되지 않고 건강하게 선물처럼 잘 사시다가 선물처럼 가셨습니다. 선종의 죽음보다 공동체와 이웃에 더 좋은 가르침도, 선물도 없습니다. 수사님의 빈자리가 텅 빈 허무가 아니라 텅 빈 충만의 사랑처럼 느껴집니다. 

 

갑작스런 죽음이지만 복된 선종의 죽음입니다. 성 베네딕도 대축일(7.11) 다음날 주일에 선종하셨으니 주님과 함께 영원한 부활의 삶을 살게 된 수사님입니다. 지난 6.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에 영명축일 축하 인사를 받으며 환하게 웃던 수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침 방안에 의정부 교구 이기헌 베드로 주교님과 환히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니 살아 계신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사시게 된 수사님입니다.

 

“천진도사天眞道士!”

 

언젠가 수도형제가 붙여준 별명이 참 잘 어울리는 천진무구天眞無垢한 순수한 마음의 수도선배였습니다. 아주 예전 어느 깊어가는 늦 가을날 써놨던 ‘죽음’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바오로 수사님의 죽음에도 그대로 잘 어울리는 시입니다. 

 

-“땅위를 덮고 있는 고운 단풍잎들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귀환歸還이다 해후邂逅다 화해和解다 구원救援이다

‘수고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내 안에서 편히 쉬어라

들려오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음성’”-1998.11.10.

 

그렇습니다. 죽음은 허무虛無에로의 환원還元이 아니라 자비하신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목적지가 없는 무의미한 여정이 아니라 아버지 집으로의 귀가 여정입니다. 참으로 그림처럼, 시詩처럼 사시다가 고운 자취를 남기고 주님곁으로 가신 수사님입니다. 흡사 복음의 환대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그대로 응답한 듯한 선종의 죽음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도 우리에게 참 좋은 위로와 평화를, 힘을 줍니다. 우리 삶은 영적성장과 성숙의 여정이요 죽음도 마지막이 아닌 새 삶의 시작임을 깨닫게 됩니다. 새삼 우리도 삶을 추스르며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날로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 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2코린4,16-5,1)

 

그러니 믿는 이들에게 선종의 죽음은 축복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믿은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고해苦海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축제祝祭입니다. 참 좋으신 우리 주님은 이 거룩한 위령미사를 통해 이 바오로 수사님에게는 영원한 안식을 우리에게는 무한한 위로와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십자가의 신비로 저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성자의 파스카 성사로 저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삼으셨으니, 하느님의 종 이 바오로 수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빛과 평화의 나라에서 성인들과 한 가족을 이루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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