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0.7.19.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지혜12,13.16-19 로마8,26-27 마태13,24-43

 

 

 

하늘 나라의 삶

-농부이신 하느님을 닮읍시다-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자 제25회 농민주일입니다. 모두가 농촌을 배경한 듯한 복음의 하늘 나라의 비유도 기분 좋게 전개됩니다. 땅에 밀착된 농촌 환경의 삶이라면 비유는 훨씬 친근감있게 다가 올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말마디가 우리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농민주일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얼마나 농사와 밀착된 예수님의 삶이었는가는 무수한 하늘 나라의 비유들은 물론 요한복음의 포도나무의 비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다.”(요한15,1)

 

얼마나 정답게 느껴지는 말마디인지요.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어머니’라면,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직업이 ‘농부’일 것입니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이지만 만일 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머니가 되어 보는 것, 그리고 농부가 되어 봤으면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업농이나 산업농이 아닌 오래된 미래와도 같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배경한 소박하고 단순한 가족농의 삶이 바로 하늘 나라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삶처럼 생각됩니다. 참으로 급박하게 진행되는 세계화요 날로 위태해지는 하나뿐인 공동의 집 지구입니다. 산업화, 도시화, 사막화, 세계화 모두 농촌을, 지구를 황폐화시키는, 종말을 앞당기는 주범입니다. 세계화는 ‘사상의 식민지화’라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하고 싶은 것은 세상의 쓰레기화입니다. 참 심각한 쓰레기들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전 지구가 쓰레기장이 될 것 같습니다. 생태적 회개에 필히 따라야할 것은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는 것입니다. 한국은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1위입니다. 미국의 1인당 98kg보다 많은 132kg입니다. 전국의 120만톤이 넘은 쓰레기산들, 이렇게 계속 쓰레기를 만드는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이에 대한 지혜로운 일급비밀의 처방은 단순명쾌합니다. ‘조금 더 소박한 삶’이라는 불편함을 살아갈 용기입니다. 코로나19이후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전환입니다. 물질적 소비는 질박하고, 정말 삶에 필요한 교육과 문화의 관계는 풍요로운, 진짜 소박한, 진짜 평등하고 민주적인 삶을 열망할 용기입니다. 문득 불편할지 몰라도 하늘 나라의 행복한 삶을 위한 실천적 처방의 4s, 즉 simple(단순한), slow(느린), small(작은), smile(웃는) 삶을 권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삶이 진정 지혜롭고 겸손한 삶입니다.

 

코로나19 사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60만명, 확진자 1천400만명 넘었고 미국-인도-브라질-남아공은 '통제불능' 상태로 확산되고 있다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같은 짓을 되풀이 하면서 다른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음의 특징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단기적 이익추구,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은 항구적 성장 비전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 감염병도 이런 결과의 산물입니다.

 

하여 오늘 농민주일에 하늘 나라의 비유가 참 고맙고 반갑습니다. 농부 하느님을 닮아 오늘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인류사회의 뿌리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땅이며, 거기에 기반한 농업입니다. 생명농업은 지구와 인류의 희망입니다. 간디도 “인도의 참다운 미래는 근대적인 도시가 아니라 자립적인 농촌마을에 달려 있다.”설파 했습니다. 식량이 곧 생명이며 안보이자 미래입니다. 농업, 농촌이 살아야 땅이 살고 나라가 살고 지구가 삽니다. 

 

이런 작금의 긴박한 상황에 응답하여 참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할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 농부처럼 살 때 실현되는 하늘 나라의 꿈입니다. 바로 우리 하나하나가 하늘 나라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가 그 비결을 알려 줍니다.

 

첫째, “사랑하라!”입니다.

우선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한 식구인 아버지의 자녀들인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 인류의 비극이자 불행은 하느님 아버지를 잊었기, 잃었기 때문입니다. 참 중요한 평생공부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공부요 하느님 사랑하기요 하느님 닮기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나를 모르기에 무지한 인간입니다. 바로 오늘 지혜서가 고백하는 하느님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만물을 돌보시는 당신 말고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당신의 힘이 정의의 원천입니다.”

“당신은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당신은 오만한 자를 질책하십니다.”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당신은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평생학인이 되어 이런 하느님을 공부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를 가능하게 하는 분도 보이지 않으시면서 부지런히 끊임없이 일하시는 농부 하느님 덕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자체가 하느님 증명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사랑하면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사랑하라”에 곧장 이어지는 “기도하라”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성령께서 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기도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기도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간절히 절실히 기도해야 주님과의 관계가 날로 깊어져 하느님을 닮게 되고 하늘 나라를 살게 됩니다.

 

둘째, “지혜로워라!”입니다.

‘지혜로워라’에 이어 곧장 따라오는 ‘겸손하라’입니다. 지혜로운 이는 겸손합니다, 지혜와 겸손은 함께 갑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아갈수록 지혜와 겸손이요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근원적 치유제는 바로 지혜와 겸손입니다. 이런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찾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을 관상합니다.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 셋이 가르쳐 주는 진리가 지혜요 겸손입니다.

 

경솔히 손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함부로 건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건 결코 무관심의 방치가 아닙니다. 하느님 하실 일과 내 할 일을 알아 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겨자씨의 비유처럼, 누룩의 비유처럼, 하느님은 은밀히 작게 시작하십니다. 

 

참으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우리의 마음이, 말이, 미소가, 선행이 성장하는 하늘 나라의 겨자씨가 될 수 있고 공동체를 생명과 빛으로, 기쁨으로 부풀리는 하늘 나라의 누룩이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을 때 우리 하나하나가 하늘 나라의 겨자씨, 하늘 나라의 누룩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밀과 가라지의 하늘 나라 비유가 참 심오합니다. 세상의 축소판이 내 마음밭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어울러진 내 마음밭이 현실입니다. 밀만의 좋은밭의 유토피아는 환상입니다. 가라지 없는 밀만의 마음밭은 불가능하고 있다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가 있기에 영적투쟁이요 영적성장과 성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라지를 뽑지 않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밀이고 가라지입니까? 가라지인줄 알고 뽑아보니 밀이면 어떻게 합니까?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궁극의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평화로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면 좋은 영적훈련과 습관으로 선善의 밀세력을 강화하고 악惡의 가라지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가라지 악의 제거가 아니라 적절한 조화와 균형입니다. 악을 뿌리 뽑는다는 발본색원, 악순환을 초래할 것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습니다. 왕성하던 잡초들도 채소가 잘 자라면 저절로 약화됩니다. 하여 가라지 악의 세력이 자라지 못하도록 항구한 노력의 수행입니다.

 

셋째, “자비로워라!”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운 분이십니다. 방금 우리는 “주여 당신은 좋으시고 인자하시도다” 화답송을 통해 좋으시고 인자하신 하느님을 고백했습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무수한 시편 성구들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바로 이런 자비하신 하느님께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닮아갈 때 바로 실현되는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자비로워라’에 곧장 이어지는 ‘인내하라’입니다. 자비로운 사랑은 바로 한없이 기다리는 사랑, 인내하는 사랑입니다. 지극한 인내로 기다리고 견뎌내고 버텨내는 사랑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비가 그러합니다. 이런 하느님의 아버지의 모습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15장)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오늘 하늘 나라의 세 비유가 목표하는 바도 이런 기다림과 인내의 자비입니다. 바로 이것이 농부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이며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며 묵묵히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수확 때까지 끝까지 인내로이 기다리며 기회를 주시는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입니다. 농부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 모두 끝까지 기다리며 최후의 심판은 당신께 맡길 것을 당부하십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초대교회는 예수님 말씀을 더욱 실감있게 해설합니다. 과연 나는 가라지입니까 혹은 밀입니까? 심각하게 자문하게 합니다. 이건 회개를 촉구하는 충격요법의 표현처럼 들립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둘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여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자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사랑도 회개도, 용서도, 기도도, 찬미도, 감사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쉬며 살아있는 그날까지, 죽는 마지막 날까지 하느님 자비에 희망을 걸고, 하느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하지 말고 연옥같은 세상, 지옥같은 세상에서 회개의 삶을, 하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세마디의 임종어의 고백을 바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사랑과 기도, 지혜와 겸손, 자비와 인내의 삶을, 하늘 나라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20.07.19 15:42
    "죽으면 사랑도 회개도, 용서도, 기도도, 찬미도, 감사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쉬며 살아있는 그날까지, 죽는 마지막 날까지 하느님 자비에 희망을 걸고, 하느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하지 말고 연옥같은 세상, 지옥같은 세상에서 회개의 삶을, 하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82 사랑의 예닮 여정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이다-2020.9.10.연중 제23주간 목요일 ​​​​​​​ 1 프란치스코 2020.09.10 73
2081 참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 -하느님 중심의 초연한 깨어 있는 삶-2020.9.9.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09 71
2080 믿는 이들의 영적 족보 -전통의 뿌리, 정체성-2020.9.8.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9.08 71
2079 참나(眞我)의 꽃자리 삶 -순결과 진실-2020.9.7.연중 제23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07 73
2078 더불어 여정중의 공동체 생활 -사랑, 기도, 교정-2020.9.6.연중 제23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9.06 64
2077 비움의 여정 -텅빈 충만의 자유와 행복-2020.9.5.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05 65
2076 그리스도의 시종, 하느님의 관리인 -하늘 나라 축제의 삶-2020.9.4.연중 제22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04 77
2075 주님의 종 -섬김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한 사람-2020.9.3.목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540-604) 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9.03 61
2074 하느님 중심에 깊이 뿌리 내린 삶 -기도, 일치, 치유, 선포-2020.9.2.연중 제22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02 69
2073 참 권위의 삶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2020.9.1.연중 제22주간 화요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1 프란치스코 2020.09.01 68
2072 개안開眼의 여정 -끊임없는 주님과의 만남-2020.8.31.연중22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8.31 77
2071 참으로 삽시다 -사랑하라, 새로워져라, 겸손하라-2020.8.30.연중 제22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8.30 63
2070 삶과 죽음 -깨어 있어라!-2020.8.29.토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8.29 64
2069 진리의 연인戀人 -진리 추구의 슬기롭고 참된 삶-2020.8.28.금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8.28 61
2068 미래는, 희망은, 길은, 문은, 보물은 어디에? -주님이, 내가 미래요 희망이요 길이요 문이요 보물이다-2020.8.27.목요일 성녀 모니카(332-387)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0.08.27 72
2067 무지無知의 죄 -회개 은총이 답이다-2020.8.26.연중 제21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8.26 63
2066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삶 -지혜와 겸손, 안정과 평화, 성장과 성숙- 2020.8.25.연중 제21주간 화요일 ​​​​​​​ 1 프란치스코 2020.08.25 66
2065 하늘 나라의 희망과 삶 -관상과 순수-2020.8.24.월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8.24 70
2064 천국의 기적 -사랑, 찬미, 감사-2020.8.23.연중 제21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8.23 73
2063 주님의 제자弟子다운 삶 -주님의 영광榮光이 가득한 주님의 집-2020.8.22.토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8.22 5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06 Next
/ 106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