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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21. 연중 제21주일                                       이사66,18-21 히브12,5-7.11-13 루카13,22-30

 

 

 

구원의 여정

-은총, 훈육, 좁은문-

 

 

 

"어서와 하느님께 노래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목청돋우세."

 

흥겹고 아름다운 초대송 후렴으로 하느님께 노래부르며 하루를 시작한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이런저런 단상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제 삶의 지론은 넷입니다. “1.기도하라, 2.공부하라, 3.일하라, 4.운동하라”입니다. 구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구원의 꽃자리요, 하늘 나라의 실현입니다. 문득 예전 21년전 써놨던 애송시가 생각납니다.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뒷뜰 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민들레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네”-2001.4.16

 

추호도 환경을 탓할 것은 없습니다. 묵묵히 제 삶의 꽃자리에서 하늘의 별처럼 살면됩니다. 제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평범하나 소중한 성인들입니다. 은수적 삶을 살며 휴식을 갖는 교구 사제가 잠시 수도원에 들려 성전 뒷뜰 잡초를 정리하며 묵묵히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저에게는 매일 운동중 하나가 걷는 것입니다. 걷는 것은 제 삶이자 기도이자 묵상이자 휴식이자 운동입니다. 정말 유일한 소원은 죽는 그날 까지 강론쓰는 것, 미사하는 것, 기도하는 것, 걷는 것 넷입니다. 요즘은 하늘비 얼마 내린지 얼마 안되어 불암산 계곡 흐르는 물이 맑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이렇게 사는 것이 잔잔한 기쁨이요 구원입니다.

 

“늘 한결같이 깨어 맑게 반짝이며 조용히 속삭이며 흐르는 시냇물처럼 사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영원한 현역으로 최선을 다한 행사였네요! 한결같이 맑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사세요. 사랑하는 형제님!”

 

몇분에게는 시냇물 사진과 더불어 윗 덕담도 선물했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루하루 평생, 평범한 일상을 깨어 반짝이며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처럼 사는 것입니다. 시냇물 맑게 흐르는 동안 시냇가 산책은 계속될 것입니다. 얼마전 써놓은 내적 다짐의 글, “무엇이든 적게, 작게”란 글도 생각납니다.

 

“무엇이든 많이가 아닌 

적게, 작게, 

적게 말하고,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쓰레기 적게 내고

하느님 안에서

작게 조용히 맑게 살고 싶다

무공해 관상적 삶을 살고 싶다.”-2022.8.16.

 

새벽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궁금해 보냈던 물음에 대한 신혼부부의 답글이 반가웠습니다.

“남편 혁주 잘 있나요?”

“엄청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잘 일하고, 잘 놀아서 몸무게 2kg 늘었어요.”

신혼부부의 행복한 구원의 삶에 마음 흐뭇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찍은 밝게 웃는 사진이 서로 닮았고 꽃처럼 예뻤습니다.

 

예전 하늘 나라 예화를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하늘 나라에 갔을 때, 세 사실에 놀란다는 것입니다. -1.“내가 여기 와 있네!” 구원의 은총에 놀라고, 2.“어, 저 사람이 여기 왔네!” 예상밖의 사람의 등장에 놀라고, 3.“어, 그 사람이 여기 없네!” 예상했던 분이 보이지 않아 놀란다-는 예화입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할까요. 어제 저녁 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이, 오늘 아침 성무일도 즈카르야 후렴이 일치합니다. 오늘 복음에 근거한 후렴입니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들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게 되리라.”

 

바로 윗 잔칫상에 자리 잡도록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구원의 문, 좁은문, 하늘문”입니다. 우리 삶은 구원의 여정입니다. 언젠가의 결정적 구원의 날을 내다 보며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서 구원의 하늘 나라, 꽃자리를 살면 됩니다. 제가 신자분들에게 늘 강조하는 충고도 생각납니다.

 

“결코 죽지 말고 끝까지 살아내십시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험하고 힘든 인생 광야, 이렇게 끝까지 살아냈다는 자체로 구원을 받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구원의 여정에 세 삶의 원리를 소개합니다. 

 

첫째, 삶은 은총입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조금 깊이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은총의 신비입니다. 하느님 섭리의 손길 안에 있는 우리의 삶입니다. 바로 제1독서는 예루살렘의 구원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 구원의 하느님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 하리라.”

 

이런 하늘 나라 예루살렘을 앞당겨 살 수 있음이 바로 은총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실현된 예언입니다.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깨끗한 그릇에 제물을 담아 주님의 집으로 가져오듯이, 그들도 모든 민족들에게서 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으로 데려 오리라. 그러면 나는 그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사제로, 더러는 레위인으로 삼으리라.”

 

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서 이런 구원의 현실을 앞당겨 살면 됩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주님을 만나는 구원의 꽃자리, 예루살렘 하늘 나라입니다.

 

돌째, 삶은 훈육입니다.

삶은 훈련이라 해도 좋습니다. 세상에 우리를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은, 상처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나한테 있고 답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참으로 희망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시련과 고난을 지극한 인내의 믿음으로 참아 견디고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모든 시련과 고난을 주님의 훈육으로, 훈련으로 삼는 것이요, 비움과 겸손의 학습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다치지 않고 자아초월의 삶을 살 수 있으며 날로 주님을 닮아갑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 모두를 향한 히브리서 저자의 충고가 너무 고마워 대부분 그대로 인용합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들 채찍질하신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인지요. 겨울, 봄, 여름의 고난과 시련을 묵묵히 견뎌냈기에 가을 풍요로운 열매들이듯 우리의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도, 신망애信望愛의 열매도, 진선미眞善美의 열매도 그러합니다. 주님 주시는 삶의 훈육을, 훈련을 자발적 능동적 사랑과 기쁨으로 받아드리고 살았을 때 이런 풍요로운 삶의 열매들입니다.

 

주님 은총이 이미 전제되기에 이런 훈육과 훈련의 삶에 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훈육과 훈련, 시련과 인내의 과정을 통해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 앎의 관계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을 절대 모른다고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오늘 복음의 불행한 사람들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모른다.”

 

닫힌 구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이런 주님의 답변이라면 얼마나 절망적이겠는지요! 재차 주님과의 친분을 얘기하며 주님의 선처를 기대하지만 주님은 요지부동입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나에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주님과는 무관하게 자기뜻대로 살아 왔음이 분명합니다. 평생 열심히 살아왔다고 내심 확신했는데,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시니 얼마나 황당하고 충격적이겠는지요! 새삼 우리 삶을 점검케 하는, 참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사랑할 때 알고 아는 만큼 보입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사랑고백과 더불어 주님을 아는 공부에 늘 힘쓰시기 바랍니다.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일 것이며,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그러니 다음처럼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셋째, 삶은 좁은문입니다.

생각하면 세상에 태어나기도 좁은문이지만 우리 삶은 좁은문의 연속같기도 합니다. 날마다 통과해야 할 좁은문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할 것은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 은총에 감사할 때, 일상의 훈육과 훈련에 충실할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좁은문 통과도 수월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저에겐 하루하루 날마다, 오전 1시 전후로 일어나 2-3시간 강론을 쓰는 것이 하루의 좁은문 통과의 시작입니다. 잘쓰든 못쓰든 온힘을 다해 쓰는 좁은문 통과의 강론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제가 그러할 것입니다. 매일 강론 쓰기 33년 이지만, 쓸 때 마다 처음 쓰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강론이 그렇듯 삶의 어려움도 그러할 것입니다. 늘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좁은문 통과의 삶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날로 넓어지는 마음의 내적문입니다. 밖에서 볼 때 좁은문이지 주님과 함께 하는 자에게는 날로 넓어져 가는 마음의 문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과 성 베네딕도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이 마음을 넓혀 주시면, 당신의 계명길을 달려 가리이다.”(시편119,32)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길을 달리게 될 것이니, 주님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 아멘.”(성규, 머리말 49-50)

 

좁은 문, 구원 문의 비밀을 알려주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이 얼마나 고무적이며 백절불굴의 힘을 주는지요! 살만한 세상입니다. 연속되는 좁은문의 현실이지만 주님 은총으로 날로 넓어지는 마음에, 구원의 넓은 문이니 조금도 위축되거나 의기소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오늘 제2독서 히브리서를 통한 주님의 격려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히브12,12-13).

 

"구원은 오직 주님께 있사오니, 당신의 백성위에 복을 내려 주소서."(시편3,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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