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9.월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예레1,17-19 마르6,17-29

 

 

 

“어떻게 살 것인가?”

-좌우명座右銘, 묘비명墓碑銘-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매일이 성인 축일이다싶어 참 고맙고 좋습니다. 가톨릭만의 자랑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 ‘삶의 등불’과도 같은 성인을 통해 파스카 예수님을 만납니다. 엊그제는 성녀 모니카, 어제 주일은 성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이자 천상 탄일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인 천상탄일입니다. 영성체후 기도가 이를 분명히 합니다.

 

“주님, 복된 세례자 요한의 천상탄일을 기리며, 저희가 모신 구원의 성체를 믿고 공경하오니, 그 구원의 열매를 미리 맛보게 하소서.”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을 맞이하니 지난 8월17일, 올해 9주기 기일을 지낸 정요한 수사가 생각이 납니다. 요셉 수도원에 정주중 떠난 첫 번째가 정요한 수사요, 두 번째가 올해 2주기 기일을 지낸 이바오로 수사입니다. 마치 공동체 수도형제들이 죽음을 향해 일열로 줄서있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정요한 수사의 죽음을 겪었을 때, 저절로 터져나온 세 마디 탄식이 생각납니다.

 

“아, 아깝다, 아프다, 불쌍하다!”

 

마침 정요한 수사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아마 선종 전해인 2012년쯤, 수도원 정문에 쇠기둥 십자가를 세워 놓았습니다. 제 졸저 2011년에 출간된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역시 정 요한 수사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쓴 글의 마지막 부분도 생각납니다.

 

“정요한 수사는 하느님께 참 많은 선물을 받았다. 이런 선물은 질투의 대상이 아닌 감사의 대상이다. 하느님께서 공동체에 주신 공동자산같은 선물이다. 많은 선물을 받은 수사들은 예외없이 자기 자랑을 할 줄 모르는 겸손한 사람들이며, 동료 수사들 역시 이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질투보다는 사랑을 보내며 자랑스러워한다.

 

어느 선배는 가끔 혼자말을 하곤 한다. ‘정 요한 수사같은 사람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것은 욕심이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지나친 선물은 주지 않으신다. 우리 요셉 수도원은 이미 너무나 부요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주셨으니까.”

 

이후 2년만에 정요한 수사가 선종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참 알 수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는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경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누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세례자 요한의 순교의 죽음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 지요?

 

마치 죽음의 잔치를 연상케 하는 마르코 복음의 장면입니다. 삶의 중심이 없는 악인들의 집합소 같습니다. 헤로데는 의롭고 거룩한 성 요한의 진가를 알았지만 우유부단하고 경솔했기에 헤로디아의 사주에 의한 그의 딸 살로메의 유혹에 빠져 참으로 어처구니 없이 성 요한을 죽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이 또한 우연이 아닌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우리 역시 성 요한의 순교의 죽음에서 크게 배웁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의롭고 참되고 올곧게 살다가 그렇게 죽어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복음의 배치도 은혜롭습니다. 

 

어찌보면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케 하는 성 요한의 죽음이지만, 예수님은 심기일전, 성 요한의 뒤를 이어 성 요한의 몫까지 사시려는 듯 주어진 사명에 몰두하십니다. 오늘 복음이 ‘죽음의 잔치’를 상징한다면 뒤이어 전개되는 복음의 장면은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생명의 잔치’가 펼쳐집니다.

 

오늘 미사중 감사송이 성 요한의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얼마나 파스카 예수님과 깊은 결속관계에 있는 성 요한인지, 새삼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살펴보게합니다.

 

“그리스도의 선구자 요한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인류구원이 다가왔음을 기뻐하였고, 태어날 때에 구원의 큰 기쁨을 알렸으며, 모든 예언자 가운데에서 그 홀로, 속죄의 어린양을 보여 주었나이다. 또한 그는, 흐르는 물을 거룩하게 하시는 세례의 제정자 주님께 세례를 베풀었으며, 피를 흘려 주님을 드높이 증언하였나이다.”

 

새삼 성 요한의 순교를 통해, ‘순교는 주님의 성체와의 결합이다’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성 요한에게 붙는 칭호도 많습니다. 금욕가, 순교자, 은수자들의 아버지, 마지막 예언자, 그리스도의 선구자등입니다. 무엇보다 성요한은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영성체송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는 고백처럼 한평생을 사셨습니다. 

 

이렇게 성요한이 한결같이 항구히 살다가 거룩한 순교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기도가 답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성 요한 역시 기도의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와 주님과의 깊은 친교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모든 이들에게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성요한은 물론 무수한 성인성녀들이 이처럼 기도를 통해 주님과 깊은 친교 관계를 누렸습니다. 살아 있는 성인이라 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다음 진솔한 고백을 통해 기도의 사람임이 환히 드러납니다.

 

“저는 아침마다 성무일도를 합니다. 저는 시편기도를 좋아합니다. 그러고 나서 미사를 거행합니다. 또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그런데 저녁 성체조배 시간이 참 좋습니다. 이때 분심도 들고 딴 생각도 하고 사실 기도하면서 졸기도 합니다. 이처럼 저녁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 동안 성체 앞에 머물며 성체조배를 합니다. 저는 또한 치과에서 기다릴 때나 하루의 어느 때든 속으로 기도합니다. 저에게 기도는 언제나 기억과 추억이 가득한 ‘기억의 기도’입니다. 나는 주님을 잊을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한시도, 단 한순간도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 영정사진에 이어 게시판에 붙어있는 “본인의 선종 상본에 남기고 싶은 성구를 기재해 달라는 알림”이 참 이채로웠습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것인가?”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그대로 좌우명이자 묘비명으로 여겨 영정사진과 함께 늘 지니고 살면 저절로 파스카의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이보다 좋은 죽음 준비도 없겠습니다. 기재되어 있는 몇분의 성구도 참 좋았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주님의 집에 가자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

 

그대로 선종 상본에 성구뿐 아니라 좌우명으로, 묘비명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는 기막힌 성구들입니다. 아마 이용할 수 있는 시편 화답송 후렴들도 무수할 것입니다. 문득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시편 성구도 생각납니다. 

 

평생준비가 죽음준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참 좋은 파스카의 삶에, 참 좋은 선종을 위해 날마다의 미사은총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하루 날마다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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