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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30.연중 제22주간 화요일                                                         1코린2,10ㄴ-16 루카4,31-37

 

 

 

하느님 중심의 삶

-성령의 사람, 권위의 사람-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시편145,8-9)

 

수도원 자비의 집 복도를 지날 때 마다 읽어 보는 우리 수도형제들의 선종善終시 상본 성구를 볼 때 마다 기분이 좋아 자꾸 보게 됩니다. 정말 좌우명으로, 묘비명으로 삼아도 좋을 듯합니다. 이대로 살 때 오늘 강론 제목처럼, “하느님 중심의 삶-성령의 사람, 권위의 사람-”으로 살 수 있겠습니다. 아직 세 형제들의 칸이 비어있지만 다시 한 번 나누고 싶습니다.

 

1.“주님께 감사하라,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성무일도 금요일 초대송)

2.“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

3.“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1,21)

4.“항상 기뻐하시오, 늘 기도하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시오.”(1테살1,16-17)

5.“주 예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요한묵22,21)

6.“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시편122,1)

7.“주님은 나의 목자”(시편23,1)

8.“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

9.“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모두가 멋진 성구입니다. 참으로 마음의 중심에 새기고 살면 저절로 성령의 은총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 권위있는 삶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제 침방寢房이 잘 정리되니 창밖 불암산이 정면에 한눈에 들어오니 천복天福입니다. 저절로 나온 “소원”이란 짧은 고백시입니다.

 

“늘

바라보는 산

불암산

 

산처럼

살고 싶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 정주와 침묵의 불암산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입니다. “산처럼 살고 싶다”, 즉 “하느님처럼 살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청정욕淸淨慾은 얼마든지 좋겠습니다. 얼마전 수도회 피정지도시 매 강의전 마다 5분 정도 실행한 명상기도 수련시 간단한 언급도 생각납니다.

 

“호흡은 기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숨쉬는 기도입니다. 아람어 ‘마라나타’ 대신 ‘오소서, 주 예수님!’ 호흡할 때 마다 하시면 그대로 그리스도를 숨쉬는 것입니다. ‘오소서, 주 하느님!’ 도 좋고, ‘오소서, 주 성령님!’도 좋습니다. 이 기도를 습관화하다 보면 저절로 삼위일체 하느님 중심의 삶, 성령의 삶, 권위의 삶이 될 것입니다.”

 

어제 미사를 드린 어느 자매님이 봉투에 쓴 미사지향이 소박해서 좋았습니다.

 

“조금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겸손하고,

조금 더

배려하며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이런 좋은 지향의 노력에 항구할 때 이런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 항구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이런 겸손하고 소박한 참사람이 될 것입니다. 꼭 40년전 희랍어 시간에 들은 “권위”란 희랍어 어원을 잊지 못합니다.

 

“엑수시아(ex-ousia)”, 즉 존재로부터 나온 것이 권위라는 뜻입니다. 권위주의는 배격해야겠지만 참 권위는 인간 삶에 필수입니다. 권위가 실종된 혼란한 사회입니다. 노인은 많지만 어른은 없고,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없는 시대라 합니다. 권위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윗분이 권위있는 분으로 공동체의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조롱의 대상이 된다면 이보다 큰 불행과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존엄한 품위의 격을 갖출 때 권위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건 인위적으로 장식할 수 있는, 덧붙일 수 있는 권위가 아니라 안의 존재로부터, 인격으로부터 저절로 배어 나온 그리스도의 향기와 같은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권위있는 말씀으로 더러운 영을 쫓아낸 예수님이 그 모범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된 더러운 영은 더 이상 숨을 수 없자 자백하니 참 통쾌한 장면입니다.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의 부르짖음인데 실상은 마귀의 영의 자백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조용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마귀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고, 사람들은 몹시 놀라 고백합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그대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의 “참 권위와 힘”앞에 마귀의 영은 저절로 쫓겨나기 마련입니다. 지금까지는 삶의 중심에 마귀의 영이 자리 잡았었는데 주님을 만나 구마의 치유와 더불어 주님이, 하느님의 영이 삶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으니 바로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제부터 성령의 삶, 권위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입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삶의 중심의 주님을, 하느님의 영, 성령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매일 바치는 시편과 미사의 공동전례기도와 말씀의 은총을 통해 주님과의 일치를 깊이하여 성령의 삶을 사는 것이 유비무환의 지혜이겠습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이 고맙습니다. 그러니 세가지 영이 있음을 알겠습니다. 하느님의 영, 세상의 영, 마귀의 영입니다. 과연 어느 영이 내 삶의 중심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 대부분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영에 따라 살아가는 현세적 인간일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자칫하면 마귀의 영의 희생자들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보십시오! 마귀의 영들이 득실대는 세상같습니다. 무지, 교만, 탐욕, 음욕, 탐식, 낭비, 허영, 거짓, 혐오, 무시, 차별, 위선, 광신, 나태등 셀 수 없이 많은 마귀의 영의 소행들입니다. 에바그리우스가 말한 여덟가지 악덕들과 불교의 탐진치貪瞋癡(욕심,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이 모두 마귀의 영의 소행을 상징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마운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닌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영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일의 주님의 미사은총으로 살아 가는 우리는, 하느님의 영,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사람인 우리는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삼 미사은총이 얼마나 고마운지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 하나됨으로, 우리 안에 내재한 세상의 영, 마귀의 영을 일소一掃시켜 주시고 하느님의 영,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하느님 중심의 영적 삶을, 권위와 힘을 지닌 참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을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시편145,13ㄷㄹ-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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