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4.연중 제23주일                                                지혜9,13-18 필레9ㄴ-10.12-17 루카14,25-33

 

 

 

주님의 제자답게

-사랑,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 버림-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시편90;14,17)

 

시공을 초월하여 아주 오래 전, 오늘 제1독서의 지혜서 말씀에 공감합니다. 인간 누구나의 깊이에서의 실존적 체험일 것입니다.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 것 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합니다.“

 

흡사 “헛되고 헛되다”로 시작하는 코헬렛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예나 이제나 불확실해 보이는 인간의 본질은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답은 하느님입니다. 물음만 있고 하느님 답을 모르기에, 인정하지 않기에 끝없는 방황이요 비극적 불행한 인생입니다. 

 

주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주님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주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는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기에 우리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우리가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 모든 인간 문제의 결정적 답이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하느님의 지혜이자 우리의 주님이요 스승이요 영원한 도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인간답게 산다” 막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주님의 제자답게” 산다, 구체적으로 분명합니다.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주님은 가르침을 주시며 성령을 통해 부단히 깨달음을 선사하시어 끊임없는 자아초월의 여정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이르면서 점차 하느님을 닮게 합니다. 다음 어제 새벽 산책중 떠오른 “천복(天福)일세”란 고백시도 성령의 선물입니다.

 

“푸른 하늘은 바다

흰 구름은 섬

 

산(山)속에 살면서도

날마다

 

바라보는

바다와 섬

 

무수히 빛나는 바다의 별들

천복(天福)일세!”-2022.9.3.

 

마침 새벽 일찍 일어난, 피정 온 한 젊은 자매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과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 이게 인간입니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인간 신비의 비밀을 찾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과연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솜씨에 경이감驚異感을 체험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문득 아주 오래 전 써놓은 “정주(定住)”란 시도 생각납니다. 제 시는 한결같이 고백시에 속합니다.

 

“산(山)처럼

머물러 살면

 

푸른 하늘

흰 구름

빛나는 별들

 

아름다운 하느님

배경(背景)이 되어 주신다”-1997.8.12.

 

무려 25년전 오늘 지금 여기 불암산 기슭 요셉 수도원에서 쓴 시라는 생각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것이 영원 체험임을 깨닫습니다. 성령을 통한 깨달음의 은총으로 천복을 누리는 삶임을 알게 됩니다. 고맙게도 주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당신의 제자답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 “사랑하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 중심의 삶을 뜻합니다. 그 아무것도 주님 사랑보다 앞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마음을 다해, 갈림 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이웃에 대한 집착 없는, 자유롭게 하는, 생명을 주는 아가페 사랑이 가능하니 이 또한 주님의 은총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깊은 뜻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글자 그대로 친지나 자신을 미워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히브리어 어법상 “누구든 주님이신 당신보다 친지나 자신을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로 바꿔 읽어야 합니다. 제 행복기도중 한연이 떠오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이타적 순수한 아기페 사랑도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경지의 바오로 사도를 우리는 제2독서에서 만납니다. 옥중에서 얻은 아들 오네시모스를 종이 아닌 형제로 받아들여 달라는 필레몬에게 보내는 바오로의 간곡한 편지에서 그의 형제애가 빛납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아가페 형제애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가 잠시 그대에게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얼마나 정중한 사랑의 편지인지요! 바오로의 순수한 사랑, 형제애가 빛납니다. 바오로 사도가 누굽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자기 삶의 전부라 고백한 분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할 때 이런 아가페 형제애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예외없이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구원의 둘째 원리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도, 남의 십자가도 아닌 제 십자가입니다. 제 운명의 십자가, 제 책임의 십자가입니다. 누구의 십자가를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어차피 내 인생, 내 어깨에 지고 가야 합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라틴어 이며, 운명에運命愛라 칭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두 라틴어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살라”입니다.

 

천국의 열쇠와도 같은, 제 운명의 십자가, 제 책임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야 주님의 제자가 되고 비로소 생명의 구원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제 십자가를 가볍게 해달라 기도할 것이 아니라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십사,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해 주십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래야 제 십자가는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모두를 버려라!”

역시 평생 버림의 여정입니다. 불암산 요셉 수도원에 34년 정주하다 보니 쌓이는 것들이, 모아지는 것들이, 채워지는 것들이 점차 많아집니다. 반대로 하루하루 날마다 내 소유를, 소유욕, 명예욕등 온갖 끝없는 탐욕을 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또 이웃과 소유물은 나눠야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의 인생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역시 예외없이 “누구든지”입니다. 과연 날로 무거운 짐이 되는 인생입니까? 날로 가벼워지는 홀가분한 자유로운 인생입니까? 이 또한 똑같은 원리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포기와 버림이 아니라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자발적 포기와 버림이 뒤따를 때 삶의 무게는 저절로 가벼워지고 자유로워 질것입니다. 

 

참 보물이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갈 때 날로 깊어지는 주님맛에 세상맛은 시들해 질 것입니다. 세상 것들이 시시해져 버려 저절로 이탈의 사랑이 가능해집니다. 바로 이 셋이 주님의 제자답게 사는 구원의 길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 참내가 되는 생명의 길, 진리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말마디에서 보는 바처럼 예외없이 인간 누구에나 적용되는 구원의 세 원리입니다. 참으로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삶,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제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으며 날마다 제 소유를 버리고 나누고 비우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자유로워질 때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랑 실천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주님의 제자답게,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주님,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시편90,1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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