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9. 연중 제3주간 목요일(뉴튼수도원 80일째)

                                                                                                                   히브10,19-25 마르4,21-25


                                                                        하느님 체험

                                                                -놀라움, 고마움, 새로움-


뉴튼수도원에서 지내기 벌써 오늘로서 80일째입니다. 매일이 놀랍고 고맙고 새롭습니다. 놀라움, 고마움, 새로움이 또한 하느님 체험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하느님 체험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뿐 아니라 진정 믿는 모든 이들의 고백입니다. 이런 하느님 체험 없이, 사막같은 인생, 사막같은 수도원에서 무슨 재미, 무슨 맛, 무슨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궁극의 대상인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희망이, 사랑이 기쁨의 원천이요 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몇몇 하느님 체험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1.어제는 작년 2014.3.25일부터 어제 2015.1.28.일까지 안식년 중의 강론을 대략 읽어보면서 하루하루 충실했던 제 강론에 제가 놀랐고 그 놀라움은 즉시 하느님께 대한 놀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의 성령의 은총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일일생(一日一生), 평생을 하루처럼, 평생처럼 살자는 제 원의를 이루어 주신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매일 강론을 쓰고나면 저절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2.얼마 전 여기 원장님과 제가 힘을 합쳐 곤경에 처해 있는 호주의 교포 젊은 부부를 도왔던 일도 저에겐 놀라운 하느님 체험이었습니다. 카톡을 통한 구원의 호소에 응답한 결과 자매님은 다음과 같은 답을 보내줬습니다.


"이렇게 빨리 도와주셔서 감사했고, 믿겨지지가 않아서 울컥했습니다.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셀수도 없을만큼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얼마나 되뇌이고 또 되뇌였는지, 게다가 하루종일 너무 감사함에 몸도 마음도 어찌나 떨리든지요. 오는 길, 가는 길에 주저 앉을 뻔 했습니다. 신부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더 기운내고 힘내서 하느님이 주신 이 모든 것들을 감사하겠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준 제가 더 기뻤고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기적에 감동했습니다.


3.공동전례와 공동식사 중 형제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사막같은 인생, 사막같은 수도원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하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위로와 힘을 받곤 합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하는 수도형제들의 이런저런 얼굴을 통해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기에 위로와 힘인 겁니다. 하여 사람은 하느님의 '살아있는 형상(living icon)'이라 합니다. 로마에서 교육 받을 당시 좋은 반응을 보였던 제 영어 강론 제목이 바로 'living icon'이었습니다.


4.며칠 전엔 문득 '생사일여(生死一如; 삶과 죽음이 하나)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삶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인지, 매일 단조로운 사막 같은 수도원에서 살다보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구분 안되고, '아, 이게 영원인가?' 마치 삶과 죽음이 하나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칫 삶은 무기력의 늪에 빠질 수 있고 '죽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막의 위험입니다. 하느님을 잃으면 동시에 자신을 잃습니다. 바로 하느님 현존 의식이 살아있음의 유일한 표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찾아 사막에 간 옛 수도승처럼 하느님을 찾을 때 비로소 지금 여기 깨어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사랑이요 믿음으로 또렷이 드러나는 사막입니다. 이런 깨달음 역시 저에겐 역설적 하느님 체험입니다.


5.삶은 이벤트가 아닌 평범한 일상이요, 이상이 아닌 현실입니다. 뭔가 '특별한(special)' 것은 영성의 표지가 아닙니다. 사막이 좋은 것은 이런 평범한 일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일시호일(一日是好日), 평범한 일상의 기쁨이 우리를 정화하여 환상이 사라진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때때로 물밀 듯 밀려오는 평범한 일상의 기쁨이 바로 하느님 체험임을 깨닫습니다. 


6.어제 저녁 샤워후 나왔을 때 눈덮인 수도원 광활한 앞뜰의 석양 노을이 너무 신비하고 아름다워 본능적으로 핸드폰의 셔터를 눌렀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한 하느님의 아름다움의 체험이 이렇게 마음을 놀랍고 기쁘고 설레게 합니다.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하느님의 놀라운 기적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바로 이런 놀라우신 하느님의 빛을 반사하고 나누는 것이 사랑이자 바로 복음선포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위에 놓지 않느냐? 너희는 새겨 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주님의 말씀도 있듯이 등불은 숨겨 두라 있는 것이 아니라 등경위에 놓아 어둠을 밝히라 있습니다. 하여 등경위에 등불을 놓듯이 저는 제 강론을 인터넷위에 놓아 주님의 빛을 반사하게 하고 동시에 주님을 나눕니다. 어제 읽은 영어주석 내용에 공감하여 몇 구절을 인용하여 나눕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나 지식은 결코 나만이 간직해야 할 '사적인 어떤 것(something private)'이 아니다.-


-좋은 가톨릭 신자는 미사에 참여하여 은총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나 모든 계명을 잘 지키는 이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믿음을 반사하고(radiates), 그의 관대함을 타인들과 나누는(shares) 것이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좋은 사람(a good person)'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도(an apostle)'가, '복음선포자(an evangeliser)'가, 또 그의 언행에 의한 '믿음을 나누는 자(a shareer of faith)' 되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의 삶에서, 우리는 '줌으로서 얻는 것이지 얻음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gain by giving, not by getting)'.-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심중을 그대로 대변하는 구절들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움, 고마움, 새로움을, 즉 복음의 기쁨을 나혼자 간직하고 누릴 것이 아니라 이웃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로, 주님의 진선미(眞善美)를 이웃들과 '나누는' 사도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어제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 저녁 성무일도의 후렴도 좋았습니다.

"하느님이 풍부히 베풀어 주신 지혜를 토마스는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도다.“

과연 주님의 영광을 찬란히 반사하는 나눔의 대가, 나눔의 성인, 하느님의 사람, 토마스 아퀴나스의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히브리서를 통해 우리를 격려하며 말씀하십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 주는 아주 현실적인 처방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히브10,21-25ㄱ참조). 


"주여,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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