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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5. 목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히브12,18-19.21-24 마르6,7-13


                                                                           떠남의 여정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강론을 쓰기 시작한 시간은 미국시간 2.4일 오전 12:30분입니다. 떠나는 설렘에 눈뜨니 아직도 한 밤중이지만 창밖 주님의 달빛이 방안을 환히 밝힙니다. 지금 심정은 42년전 34개월의 충실했던 군복무후, 만기제대할 때의 서운함과 설렘이 교차했을 때와 흡사합니다. 아마 형제자매님들이 이 강론을 읽으실 2.5일(오전 02:00-오후4:25분), 저는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을 것입니다. 출국 준비에 다른 때보다 5시간 일찍 올리는 강론입니다. 문득 홈페이지에서 읽은 '나르다' 자매의 글이 생각납니다.


-저는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는 오 은정 레오나르다입니다. 보통 주변 분들은 저를 그냥 '나르다'라고 부릅니다. 세례명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에 급한 성격으로 인해서 ‘날라 다닌다’ 고 해 ‘하늘을 나르다’라는 뜻이 더 강하답니다. 그냥 '나르다'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있는, 사랑스런 '나르다'라는 세례명인지요. '하늘을 나르다'라는 자유인의 뜻도 있지만 '사랑을 나르다'라는 천사의 역할도 있습니다. 저는 태평양 하늘을 날라 한국에 가고, 강론은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날라다 줄 것이니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떠남의 여정입니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날도 어제에 이은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떠남의 여정'이자 '탈출의 여정'입니다. 막연한 떠남이, 탈출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떠나 주님을 향한 여정이자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입니다. 


저에겐 '떠남의 여정'이지만 그동안 저를 기다렸던 분들에겐 '기다림의 여정'이기도 하겠습니다. 뉴튼수도원에서 마지막 떠나기 전 날인 어제도 행복했습니다. 주님이 마련해 주신 파란 하늘에 순백(純白)의 흰눈 은총으로 빛나는 대지(大地)가 그대로 환송(歡送)의 축제날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순백의 은총으로 빛나는 눈길을, 묵주기도를 바치며 걸어 호수에 갔다가 수도원 묘지를 다녀 오면서 약 1시간 동안 수도원 경내를 순례했습니다. 다녀 온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을 싸고 정리하면서 오늘 복음의 파견 받아 떠나는 주님의 제자들을 묵상했습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이보다는 훨씬 못 미치지만 뉴튼수도원에 올 때도 제 짐은 간편했습니다. 바로 내 집과 같은 뉴튼수도원의 환대(歡待)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주님의 '환대의 집'이라 일컬을 만큼 '환대의 영성'이 뛰어난 곳입니다. 여기서 받은 수도형제들의 사랑의 환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정말 아쉬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복음의 제자들이 저토록 무소유로 파견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곳곳에 산재해 있는 신도들의 헌신적 사랑의 환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불필요한 옷가지등 덜어낸 짐이 한 보따리 가득입니다. 늘어난 것은 수도영성에 관한 여기 성물방에서 구입한 여러 권의 책들인데 복음의 제자들은 이런 책들도 없었을 것이니 최대한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소유한 최고 무형(無形)의 자산은 말그대로 함께 했던 주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 주님의 나라에 갈 때는 책들도 필요없을 것이고 주님과 사랑의 우정관계 하나뿐이겠지요. 서운함도 있지만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떠납니다. 


-프란치스코 신부님! "감사합니다."-

극구 사양했지만 인정(人情) 많은 사무엘 원장이 꼭 필요한 곳에 쓰라고 용돈도 두둑히 주니 힘이 솟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환대 받다 떠납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환대의 자리'가 오늘 1독서에 장엄하게 묘사되는 시온산이요 천상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환대의 자리, 바로 여기가 '꽃자리'이고 위에서 말하는 모두가 해당되는 곳입니다. 이런 모두를 감지할 수 있는 주님의 환대의 절정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입니다. 성체성사의 은총이 주님의 빛나는 천상 예루살렘 환대의 자리를 지금 여기서 미리 맛보게 합니다. 어제 저녁성무일도의 시편 한 구절도 참 흥겨웠습니다.


"내 마음 다하여 주님 기리오리다.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하오리다."(시편138,1).

공동 시편성무일도 전례시간을 통해서도 천상 예루살렘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수도자들입니다. 한국에서의 예상되는 환대가 또 저를 설레는 기쁨으로 가득 채웁니다.


-立春大吉, 2월4일은 매서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시작되는 입춘입니다. 따뜻한 봄기운의 시작과 함께 가정에도 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강론 쓰는 도중 도착한 카톡메시지입니다. 봄 같은 환대를 받다가 한겨울 입춘날, '봄이 되어'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한국을 향해 떠납니다. 제 모원인 요셉수도원의 빠코미오 원장수사의 이메일 편지 역시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페북 사진에서 수사님께서 행복하게 지내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제 곧 다시 뵙겠군요.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형제들 다 수사님의 귀국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저의 귀국을 열렬히 기다리며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아마 충실히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성인들, 천사들 역시 우리를 열렬히 환영, 환대해 주겠지요. 복음의 환대 받은 제자들은 공짜로 환대를 누리지 않았습니다. 즉시 복음을 선포하며 축복의 주님을 나눴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바로 이렇게 환대에 보답했던 제자들입니다. 이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지요. 이런 제자들이 머무는 자리는 그대로 시온산이요 천상 예루살렘입니다. 저 또한 안식년이라 하지만 밥값(?)하는 마음으로 매일 충실히 강론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여기 뉴튼수도원에서의 환대에 응답하여 매일 산책하며 수도원을 위해 기도했고 모든 전례에 충실했으며 인터넷 강론을 통해, 또 카톡을 통해 주님의 집인 뉴튼수도원이 얼마나 놀랍고 좋은 곳인지 온 세상에 알렸습니다. 


정말 제 강론을 통해 회개의 복음이 선포되고 마귀가 쫓겨나며 많은 병자가 말씀의 기름으로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리 되리라 믿고 또 믿습니다. 아, 깨닫습니다. 알게 모르게 무수한 거룩한 형제자매들의 사랑과 기도 덕분에 뉴튼수도원에서의 성공적 내적순례여정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내 사랑하는 모든 형제자매님들께, 특히 아가타 영명축일을 맞는 모든 자매님들께 주님의 한량없는 축복을 빕니다. 


"어좌 한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우리를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묵시7,17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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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임받는나 2015.02.05 00:04
    신부님!!!! 뉴튼 수도원 자랑을 정말로 순수하게 해주셔서 글을 읽는 저희에게도 순수성이 느껴집니다.신부님 안식년은 참 의미가 있었고 보람도 있었고 그 힘으로 앞으로 날들도 힘차게 사시라고 하느님의 선물을 잘 알아듣고 따르고 감사하면서 히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아멘!!아몐!!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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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아빠 2015.02.05 05:50
    아멘! 신부님 말씀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영육간에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Welcome 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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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2015.02.05 07:20
    신부님~ 귀국을 축하드립니다.
    매일의 강론은 저의 영적인 성장에 필요한 귀한 양식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성인 사제 되시길 늘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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