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8.연중 제33주간 목요일                                                        1마카2,15-29 루카19,41-44

 

 

 

영원한 롤모델 예수님

-예수님이 됩시다, 웁시다, 평화가 됩시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시편95,7.8)

 

지금은 웃어야 할 때까 아니라 울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지구를 위해서입니다. 비관주의,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가 되라는 게 아니라 참으로 제대로 제정신으로 투철透徹한 의식으로 세상 현실을 보고, 듣고, 살라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분노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득 변영로의 “논개”라는 시 첫 연이 떠오릅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맹목적 분노가 아니라 의노義怒와 같은 분노입니다. 정말 값싼 낙관주의는 혐오해야 할 것이요, 주님의 영적 전사로서 치열히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 같습니다. 집무실에서 호탕하게 웃는 예수님 사진을 치운지 오래입니다. 아무래도 복음의 예수님 분위기와는, 특히 오늘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시다”라는 제하의 복음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문득 떠오른 성규, ‘제7장 겸손에 대하여’라는 장에 나오는 주옥같은 구절들입니다.

 

“겸손의 열째 단계는, 쉽게 또 빨리 웃지 않는 것이니, 성서에 ‘어리석은 자가 큰 소리를 내어 웃는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성규7,59)

 

“겸손의 열 한째 단계는, 수도승이 말할 때 온화하고 웃음이 없으며 겸손하고 정중하며 간결한 말과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목소리에 있어서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다.”(성규7,60)

 

“겸손의 열두째, 단계는, 수도승이 마음으로뿐 아니라 몸으로도 자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겸손을 항상 드러낼 것이다.”(성규7,62)

 

“그러므로 겸손의 이 모든 단계들을 다 오른 다음에 수도승은 곧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이전에는 공포심 때문에 지키던 모든 것을 별로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지키기 시작할 것이니, 이제는 지옥에 대한 무서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하게 될 것이다.”(성규7,67-69)

 

얼마나 참 좋고 아름다운 겸손인지요! 모든 덕의 어머니이자 영성의 잣대인 겸손입니다. 예수님이, 베네딕도 성인이 그렇게 겸손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 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사랑에서 샘솟는 겸손이요 여기서 나오는 울음입니다. 새삼 자연自然스러운, 성聖스러운 겸손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인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겸손한 사랑, 겸손한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폭력의 악순환입니다. 아무리 동기가 옳고 좋아도 폭력적 방법을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마카베오서의 오늘 주인공 마타티아스의 극한 한계 상황에서의 반응을 십분 이해합니다만, 그의 폭력적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가 제단 위에서 그 자를 쳐 죽였다. 그때에 그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 제단도 헐어 버렸다.---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잡았다.’

 

정의와 공정의 목적 추구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폭력적 방법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새삼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무능해서도 안되겠지만 이렇게 마타티아스처럼 과격한 폭력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성규 겸손의 넷째 단계 말씀이 생각납니다.

 

“겸손의 넷째 단계는, 순명에 있어 어렵고 비위에 거슬리는 일 또한 당한 모욕까지도 의식적으로 묵묵히 인내로서 받아들이며, 이를 견디어 내면서 싫증을 내거나 물러가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서에는 ‘끝가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셨고, 또 ‘네 마음을 굳게 가지고 주님을 견디어 내라’고 하셨다.”(성규7,35-37)

 

겸손과 인내는 한 실재의 양면이요 궁극의 승리는 겸손과 인내의 사람에 있음을 봅니다. 바로 이점에서 마타티아스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어제 읽은 조선 최고의 성군聖君이라 칭하는 세종대왕의 일화도 생각납니다. 광화문에는 성군聖君 세종대왕과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나란히 있습니다. 다음은 ‘세종실록’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세종의 용인술, 신하들 재능 탈탈 털었다. 세종은 신하들을 절대 그냥 두지 않았다. 조금 심하게 말해 호호백발이 될 때까지 부려먹었다. 임금이 주야장천 근정전에 앉아 있으니 원로대신들까지 퇴근 후 집에 가서도 관복을 벗지 못했다.”

 

“세종의 총명함과 학문을 좋아함은 천성이었다. 수많은 신하의 이름과 그 사람의 이력, 그 사람의 가계도까지도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지 않았다. 한 번 신하의 얼굴을 보면 몇 년이 지나도 절대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아무개야!’하고 이름을 불러 주었다.”

 

“세종은 게으른 천재가 아니었다. 100-200번은 기본이고, 1100번이나 읽은 책도 있다. ‘주상께서는 수라를 들때도 반드시 책을 펼쳐 좌우에 놓았고, 밤중에도 그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세종은 ‘내가 궁중에 있으면서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가 있느냐.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것’이라 말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습니다. “천재 임금에 천재 정치가, 천재 관리, 천재 과학자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세종시대가 재림하면 얼마나 좋을까요”(주간경향;2021.11.24. 1453호 53쪽).

 

새삼 나라든 가정이든 사회 공동체든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공동체의 명운이 달린 지도자의 자질이자 리더십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입니다. 지도자 없다 탄식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가 예수님이, 예수님의 평화가,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예수님처럼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렐을 보고 안타까움에 울으시는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보고 울으십니다. 바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울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입니다. ‘평화의 실현’이자 ‘하늘 나라의 실현’인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평화에 이르는 지름길은 평화의 예수님과 하나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울으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감추어져 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 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다.”

 

바로 하느님께서 평화의 예수님을 통해 오늘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오늘 지금 여기 계신 평화의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 모두 하나하나 예수님이, 예수님의 평화가 되어 삽시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를 주소서, 평화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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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1.11.18 08:28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를 주소서, 평화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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