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파스카 예수님 -날마다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2022.4.7.주님 수난 성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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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7.주님 수난 성금요일 

이사52,13-53,12 히브4,14-16;5,7-9 요한18,1-19,42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파스카 예수님

-날마다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셨도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도다.”(필리2,8)

 

마지막 봉헌이자 순종인 거룩한 죽음입니다. 평상시 봉헌의 여정, 순종의 여정에 충실할 때 마지막 거룩한 죽음의 봉헌이요 순종입니다. 아주 예전 어느 목사님의 소원이 뭐냐는 물음에 드린 즉각적인 대답이 생각납니다. 

 

“잘 살다 잘 죽는 것입니다!”

 

대답하고 내심 만족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 물어도 똑같은 대답일 것입니다.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언젠가 갑작스런 선종의 죽음은 없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죽음 준비입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입니다. 오늘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이니 걱정안해도 됩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해도 충분합니다. 오늘부터 하루하루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이에 바탕한 다음 제 좌우명 고백시입니다. 묘비명을 하라면 두말할 것 없이 이 기도문을 택할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사부 성 베네딕도는 물론 사막교부들의 이구동성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삶도 분명 그러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수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평상시 삶이 잘 드러납니다. 참으로 의연하게 수난과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제1독서 이사야서에 예고된 주님의 종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의 네 번째 노래에 속합니다. 그대로 오늘 수난과 죽음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분명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 일부만 인용합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 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를 짊어지리라.”

 

“우리를 위하여” 바로 예수님의 삶을 요약합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을 닮는 길만이 잘 살다 잘 죽을 수 있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수난은 혼자 겪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난복음 후반부에 바로 우리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 잘 드러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시는 제자가 상징하는 바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입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바로 우리 모두는 성모 마리아의 자녀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바로 성모 마리아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야할 자리가 바로 우리 삶의 자리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두 임종어는 예수님의 삶을 요약합니다. 예수님께 묘비명이 있다면 이 두 임종어로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마르다.”

 

평생 하느님을 목말라했던, 목마르게 생명과 진리의 하느님 아버지를 찾았던 예수님의 삶을 요약합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진리에 따라 진리를 증언한 예수님의 전생애였습니다. 앞서의 빌라도와 나눈 문답이 생각납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평생 진리를 목마르게 찾았던 진리자체이신 주님과의 일치만이 우리의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해갈시켜 줍니다. 생명의 진리는 물과 같고 밥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미사를 통해 진리이자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셔야 살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임종시 진리자체이신 하느님을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또 하나의 임종어입니다.

 

“다 이루어졌다.”

 

진인사대천명의 삶의 고백입니다. 죽기까지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책임을 다했기에 예수님의 이런 고백입니다. 과연 평생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이루려고 노력을 다한 우리의 삶이었는지 뒤돌아 보게 합니다. 과연 나에게 주어진 주님의 뜻은 무엇이며 날마다 실행하려고 분투의 노력을 다했는지 살펴보게 합니다. 참으로 온전히 하느님 중심의 삶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기에 이런 주님의 고백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히브리서는 이런 예수님을 장엄하게 고백하며 우리 삶의 영원한 모델로 삼을 것을 권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합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바라보고 배우고 따라야 할 분은 십자가에 달리셨다 부활하신 주님의 종이자 대사제이신 예수님뿐입니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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