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24.목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묵시21,9ㄴ-14 요한1,45-51
주님과 만남의 여정
-이야기(story)와 내용(contents)-
주님과 더불어 만남의 여정일 때 스토리와 컨텐츠, 기도와 영성의 의미충만한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여정에서 주님이 빠져 버린다면 기도도 영성도 없고, 스토리(이야기)도 컨텐츠(내용)도 없는 참 공허하고 무의미한 쓸쓸한 삶일 것입니다. 도대체 왜 사는가 아무리 물어도 답이 없을 것입니다.
어제 두 일간지 1면 톱기사와 첫째번 사설은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규탄이었습니다. <역사에 죄짓는 일본의 오염수 30년간 하루 500톤 방류, 길터준 한국정부>, <국제사회 우려 끝내 외면한 일본 오염수 방류 강행 규탄한다> 사설 제목입니다. 교황청 홈페이지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최악의 핵재앙”이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교황님의 어제 일반 알현 시간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호소도 절절했습니다.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전구에 사랑하는 우크라이나를 맡깁시다. 형제자매들이여!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은 너무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은 너무 잔인합니다! 그 많은 아이들이 사라졌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오늘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더욱 교회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성인들은 물론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사람이자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교회의 사람입니다. 성인들은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사랑하듯 교회를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성인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교회 사랑이었습니다.
소화데레사의 고백입니다.
“나의 성소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나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입니다. 교회 사랑은 우리 사랑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수호하며, 교회와 함께 걸어 갑시다.”
어제는 저에게 획기적인 날이었습니다. 어제 오후 참 많은 비가 내렸고 집무실에서는 오후 2시-4시 사이에 의정부 교구의 선교사목국 신앙 교육 담당자 사제와 함께 두분이 방문하여 “기도와 영성”에 대한 내용을 녹화했습니다. 서두에 밝힌 제 언급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안에는 기도와 영성이 녹아있습니다. 이런 삶에서 기도와 영성을 빼버리면 무엇이 남을까요. 참으로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 욕망만 남은 괴물같은 삶, 짐승같은 삶일 것입니다.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녹화방송후 함께 한 사제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스토리가 있어 재미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퍼뜩 마음에 와닿은 스토리, 이야기란 말마디와 더불어 컨텐츠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나 책을 봤을 때 도무지 스토리가 없고 컨텐츠가 빈약할 때 느꼈던 허전했던 마음을 잊지못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스토리, 이야기가 없고, 컨텐츠, 내용이 빈약하여 텅 빈 껍데기같은 삶이라면 그 삶은 참 재미없고 깊이없고 무의미하고 허무하다 생각될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바르톨로메오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의 특징은 주님을 따르는 스토리가 분명하고 사랑의 컨텐츠가 풍부했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성인들은 물론 우리 삶의 스토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이야기요, 우리 삶의 내용인 컨텐츠는 주님과의 만남과 더불어 나눈 풍부한 사랑의 일화들입니다. 그러니 스토리와 컨텐츠를 이루는 것은 주님과의 만남과 사랑뿐이요 믿는 이들의 삶에서 그리스도 주님이 빠진 삶이라면 참 허무하고 덧없는 삶일 것입니다.
우리 수도자들 삶 안에서 스토리와 컨텐츠를 이루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빠지면 정말 무의미하고 허무한 삶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이들의 삶의 스토리와 컨텐츠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되는대로 생각없이 살아 스토리가, 컨텐츠가 없다면 그 허무감 무의미함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대해 다음처럼 사랑을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주님을 사랑할 때 스토리도 컨텐츠도 분명하고 풍부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으로 하루하루 주님을 따르는 스토리를, 사랑의 컨텐츠를 축적해가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며 인생 허무와 무지에 대한 최고의 유일한 처방입니다. 이래야 충만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듯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두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교회의 비전이 아름답게 계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새 예루살렘 교회는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자 꿈이요 우리를 현세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새 예루살렘 교회는 우리의 본향이요, 우리의 지상 순례 여정중 마지막 도착지점입니다.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같았습니다...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영원한 희망이자 꿈인 새 예루살렘 비전이 더욱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만남과 우정을 추구하게 합니다. 우리가 물음이라면 주님은 답입니다. 주님을 모르면 우리는 영원히 미궁인채로 머물게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이 신선한 충격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회의하는 나타나엘, 바로 바로톨로메오는
“와서 보라”
는 필립보의 초대에 응답해 바로 주님을 만나는 순간 참 나를 발견합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주님을 만남으로 참나를 발견한 나타나엘 역시 즉각적으로 화답하여 주님을 고백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정말 참사람과 참사람의 만남이요, 순수와 순수의 만남이요, 나타나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자, 주님과 만남의 여정을 계속하게 한 원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이런 주님과의 우정의 성숙과 더불어 마침내 주님을 위한 순교로 삶을 마감합니다. 순교의 사랑이야 말로 성체와의 결합이요 사랑의 절정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고백한 나타나엘에 감격하여 큰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나타나엘뿐 아니라 주님과 만남의 여정에 충실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약속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참으로 주님과 만남의 여정과 더불어 우정도 날로 깊어져갈 때 우리 역시 주님과 천사들의 친교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은 주님과 만남의 여정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매일 미사은총이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해주시어 우리 모두 주님 중심의 스토리와 사랑의 컨텐츠 분명하고 풍부한 살아 있는 성경책 인생을 살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