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여정 -무지의 치유와 구원-2020.12.12.대림 제2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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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대림 제2주간 토요일                                                 집회48,1-4.9-11 마태17,10-13

 

 

 

깨달음의 여정

-무지의 치유와 구원-

 

 

 

우리의 영적 여정은 그대로 깨달음의 여정입니다. 주님과 나와 이웃을 깨달아 알아 가면서 일치의 관계도 깊어지면서 점차 무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집니다. 깨달음의 은총이요 깨달음을 통한 무지의 치유요 구원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와 하느님을 잊고 지내는 망각이 정말 마음의 큰 병입니다. 깨달음을 통한 무지의 치유와 더불어 영육의 치유입니다. 참으로 영육의 건강을 원한다면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깨달음의 여정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소개되는 엘리야 예언자는 깨달음의 정점에서 하느님과 일치의 삶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신바람 나는 하느님과 일치의 삶을 보여주는지 엘리야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현존이자 하느님의 기적이요 하느님의 증거입니다. 이런 하느님과 일치의 삶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가 목표하는 소원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우리의 소원을 그대로 반영하는 오늘 미사중 화답송 시편 후렴의 기도입니다.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다시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주님 얼굴을 비추시어 날마다 새롭게 구원의 삶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늘 새로운 시작입니다. 배밭 곳곳에 쌓여 있는 무려 2500개의 비료 포대를 보면서 새삼 농사의 끝은 새로운 농사의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반복, 거룩한 반복입니다. 참으로 삶의 엄숙함과 진지함을 배웁니다. 

 

배 수확의 열매들 역시 은총의 산물임과 동시에 인간 노력의 산물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삶의 위대함은 이런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성과 지속성에 있고 이는 우리 정주의 삶의 위대함이기도 합니다. 이런 소소한 깨달음과 더불어 알게 모르게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일치도 깊어질 것입니다. 별난 기적이 아니라 엘리야처럼 주님과 일치의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그 삶 자체가 그대도 기적입니다. 

 

“그 무렵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 보냈다.”

 

참으로 주님과 일치의 삶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를 본 이들의 행복에 가득한 고백의 증언입니다. 

 

“엘리아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볼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정말 자랑스런 엘리야입니다. 구약에 승천한 인물이 셋인데 에녹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입니다. 주님과 일치의 절정을, 깨달음의 절정을 보여주는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이런 엘리야의 삶에 고무된 자의 다음 고백은 그대로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언젠가의 그날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과 일치의 삶을 살 때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을 보는 우리들이요, 사랑 안에서 잠들게 되리란 확신과 더불어 반드시 부활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확신을 선물로 받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예수님과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이런 엘리야의 재림임을 확신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정체를 밝히심으로 제자의 무지를 일깨우시는 주님이십니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고난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지의 병으로 인해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재림임을 모르고 제멋대로 다루었다는 고백입니다. 계속되는 무지의 악순환입니다. 무지로 인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요, 이어 구원자이신 메시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입니다. 지금도 무지와 탐욕에 눈멀어 자행되는 불의한 일들로 고통 받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말그대로 자업자득입니다. 참으로 무지로부터의 해방에 깨달음의 은총이 얼마나 절대적인 처방인지 깨닫습니다. 

 

한 두 번 깨달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깨달음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길뿐이 없습니다. 여기 깨달음의 여정에 필히 동반해야 하는 것이 끊임없는 기도와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무지의 병의 치유와 구원으로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며 우리 모두 빛의 자녀로서 살게 하십니다. 집회서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바치며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집회48,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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