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앞에서, 주님 중심의 삶 -회개, 겸손, 진실- 2021.8.25.연중 제21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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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25.연중 제21주간 수요일                                                               1테살2,9-13 마태23,27-32

 

 

 

주님 앞에서, 주님 중심의 삶

-회개, 겸손, 진실-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과 마태복음 사이의 화답송 시편이 참 적절하다 싶습니다. 참으로 늘 깨어 주님 앞에서, 주님 중심의 회개, 사랑, 진실, 겸손의 삶을 살아야 겠다는 자각을 갖게 됩니다. 무지의 병, 무지의 죄, 무지의 악에 대한, 또 인생 허무에 대한 유일한 처방의 말씀이겠습니다. 화답송 시편은 139장 일부만 소개 되지만 1장1절부터 24절까지 읽을 때 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걸을제도 누울 제도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위를 익히 보시나이다.

---

당신 숨결 피해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오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님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새벽의 날개로 이 몸이 친다하여도,

저 바다의 먼 끝에 산다 하여도

 

거기에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 이 몸을 잡아 주시리다.”(시편139,1.2.3.7-10)

 

일부만 소개했습니다만 전장 24절까지 써서 게시판에 붙여놓고 자주 묵상하면  하느님 현존 안에 사는 영적훈련에 참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느님 시시티브이(CCTV)에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삶에서 이런 하느님이 빠지면 말그대로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어둠의 심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주님 앞에서 늘 깨어 있는 삶에는 위선과 거짓이, 허영과 교만이 끼어들 수 없습니다. 저절로 회개와 사랑, 진실과 겸손의 모범적 삶이 뒤따를 것입니다.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이 이런 삶의 모범을 통한 가르침이요 이런 삶을 통해 말없이 보고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삶의 전형적 모범이 제1독서의 사도 바오로의 일행입니다. 얼마나 주님 앞에서 투명하고 진실한, 당당한 삶인지 사도 바오로의 진정성 가득한 고백에서 잘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당신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그대로 ‘짐’이 아닌 ‘선물’같은 존재들이 바오로 일행입니다. 우리 자신을 비춰 회개로 이끄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안팎으로 하나된 언행일치의 진실하고 성실하고 절실한 모범적 삶이었기에 이들 바오로 일행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받아들인 테살로니카 신도들입니다. 바로 이런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이 참된 권위의 원천이 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인 삶이 오늘 복음의 일부 율사와 바리사이들의 안과 밖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삶입니다. 세상에 표리부동하다는 평가보다 치명적인 것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불행선언중 마지막 여섯 번째 일곱 번째에 해당됩니다. 율사와 바리사이들에 대한 불행선언이 궁극으로 의도하는 바는 우리의 회개입니다. 

 

바로 이들의 위선적 행태는 그대로 우리의 부정적 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깨어 있는 삶에서 떠난 업보가 이런 무지의 위선적 삶입니다. 말 그대로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죄입니다. 역설적으로 똑똑한 바보들입니다. 

 

주님 중심의 언행일치의 진실하고 겸손한 삶일 때는 “행복하여라”라는 행복선언이 뒤따르겠지만 주님을 떠난 자기 중심의 눈먼 무지의 삶에는 저절로 “불행하여라”라는 불행선언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주님의 심판 선언이 아니라 스스로 자초한 심판이요 철저한 회개만이 무지의 죄, 무지의 악, 무지의 병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불행선언은 우리를 향한 회개의 촉구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는 겉으로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그대로 때로 자신 안에서 이런 표리부동한 위선적 모습을 체험한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단한 회개를 통한 주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 진실과 겸손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참 무지의 병이 깊은 위선자들입니다.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참된 예언자이자 의인인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박해하는 악습을 반복하는 참 모순적 무지의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내로남불’이란 말을 아십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사자성어가 내로남불입니다. 이런 자기에게 한없이 관대하면서 타인들에게 한없이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이런 위선적 행태 또한 우리의 보편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 하나됨으로 우리의 표리부동한 위선적 무지의 병을 치유해 주시고 언행일치의 진실과 겸손의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결론하여 무지의 병의 최고의 치유제와 예방제가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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